매일 저녁 은우는 씻고 침대에 누워 엄마와 책을 읽는다. 한두 권 소리 내어 함께 읽고 나서 불을 끈 다음 조금 뒤척이다 잠든다. 그 뒤척임의 시간에 가끔 한 마디씩 마음의 소리가 나오는데, 약간의 잠기운과 어둠을 빌어 엄마에게속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이탈리아의 화가에 대한 책 한 권을 함께 읽고 불을 끄고 누워 있는데, 아이가 옆에서 내게 안기며 말했다.
"엄마 따랑해요(갑자기 혀 짧은 소리로). 엄마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보드라운 아이 팔의 감촉을 느끼며 오른팔로 아이를 살짝 안아주었다. 김희애 언니를 알 턱이 없는 일곱 살 남자아이가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싶어 넌지시 물었다.
"놓치지 않을 거야? 왜~?"
"엄마가 없으면...... 난 죽어요."
뜻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아이는 말 뜻을 제대로 알고 쓰고 있었다.
"죽으면 안 되지. 엄마도 은우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니까."
아이의 불안이 커지지 않도록 몸을 아이 쪽으로 돌려 양 팔로 작은 몸을 꼭 안아주었다. 그랬더니 좋다고 더 세게 안아 달라며 예쁜 미소를 짓는다.
아이가 웃는 순간 세상이 몇 초간 움직임을 멈춘다. 작은 두 눈은 무지개처럼 아치 모양이 되고 자그마한 입을 헤 벌리며 양 볼이 홈런볼처럼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그 얼굴. 아이들은 얼굴 근육이 굳지 않아서 가만히 있을 때와 웃을 때 전혀 다른 얼굴 모양이 된다. 말랑이나 클레이처럼 빚기 나름이다.
안겨 있던 아이가 "엄마 건강한가 봐야지" 하더니 한쪽 귀를 내 가슴에 대고 집중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를 댈 때처럼 편안하게 심호흡을 하며 순순히 협조한다. 몇 초 뒤 아이가 "엄마 심장이 엄청 느린데요? 콩~~~~닥 콩~~~~닥 이렇게 뛰어요!" 한다.
무슨 콩~~~밭~~~매는 아낙네도 아니고 심장이 그런 느린 장단으로 뛸 리가 없는데, 아이 귀에는 엄마 심장이 영 신통치 않은 듯하다.
"걱정 마. 엄마 엄청 건강해. 앞으로 더 건강해질 거야." 했더니 좀 안심하는 눈치다. 이번에는 귀를 내 배에 대고 뱃속에서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더니 고개를 들고 뭔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느닷없이 외친다.
"엄마, 똥이 거의 다 만들어진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분.또~~~~옹?????
그럼 그렇지. 우리 장난꾸러기가 웬일로 진지한가 했다. 아들 사랑을 느끼며 훈훈하게 흘러오던 감동의 물결이 갑자기 똥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나의 폭소에 은우의 양쪽 홈런볼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오늘도 은우는 엄마의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