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시절 내내 생활기록부에 '취미는 독서, 특기는 글쓰기' 라고 적어내면서도 그걸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내외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하고, 시화전에 낸 내 작품이 표구되어 교실 벽에 걸려도 글쓰기는 별로 멋진 장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음악을 잘하면 전국노래자랑 같은 무대에도 올라갈 수 있고, 운동을 잘하면 친구들 앞에서 멋지게 슛을 넣어볼 기회도 있을 텐데...... 나는 왜 누구한테 자랑하기도 어렵고 보여주기는 민망한 글쓰기라는 것을 자꾸 하는지,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괜히 혼자서 번데기처럼움츠러들었었다.
대학에서도소설과 시, 희곡 등 문학창작 수업이 열리는 교실 문턱을 수시로 기웃거렸으면서도 막상 '작가'라는 길 앞에서는 머뭇거렸다.내게 그럴 만한 재능이 있을까 의심했고, 현실적으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무겁게 다가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꽁무니를 뺐다. 나는 그렇게 배짱이 없었다.
다시 무언가 글 비슷한 것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때가 이혼을 결심한 때였다. 노트북 앞에 앉아 내가 겪은 일들을 토하듯이 써 내려갔다. 수년간 명치 끝에 얹힌 채로 참아왔던 토사물들이 끝도 없이 밀고 나왔다. 몇시간을 꿈쩍도 안 하고 쓰고 또 썼다.
그러고 나니 다시 세상이 보였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글을 읽어보는데, 그 안에 있는 여자가 너무 불쌍했다.
"왜 그러고 있어! 당장 거기서 나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글을 쓴 내가 글 속에 있는 나에게.
가장 위태롭고 약해져 있던 그 순간에 나는 다시 글을 썼다. 글이라기보다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흩뿌려진 거친 스케치였지만, 결국 그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다보면 자꾸만 더 깊이 빠져든다. 잠시 숨을 참고 바닥에 닿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한 순간에 힘을 써서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면 위로 향하는 추진력을 얻게 된다.그 다음은 주변 수압이 낮아짐에 따라 폐 속 공기가 팽창하면서 없던 숨이 생겨난다. 기적이다. 마침내 수면을 뚫고 물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
내게 그날의 글쓰기는 내 인생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심해저에 닿았을 때 두발바닥에 온 힘을 집중해 튕겨 오르는 그런 결정적인 행위였다.
그 뒤로 이혼 과정 중에도 종종 일기를 썼고, 1년 차에도 틈틈이 썼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글을 남에게 보인다는 건두려운 일이었다.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성나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전남편이 본다면? 아이가 커서 본다면?' 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부터 앞섰다.
그렇게시간이 지나 이제 나는 이혼 3년 차가 됐고,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듯 편안해졌고, 마음에도 굳은살이 좀 배겨서 웬만한 빌런들은 귀엽게 보아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제 내가 쓰는 글들은 감정이 마구 뒤섞인 토사물은 아닐 것이다.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한 '언니'가 세상 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생생한 기록이 될 것이다.
- 엑스가 보면? 무슨 상관인가!
- 아이가 보면? 엄마 참 멋지다고 안아줄 거다.
이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한다. 그 대신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혹은 용기를 얻을 세상의 모든 '애니'들과 함께 글이라는 통로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