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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운 Feb 22. 2020

정말 험난했던 임용고시

 기적 그리고 배움

시험은 새로운 목표가 된다.

시험은 나를 돌아보는 수단이 된다.

시험은 삶을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시험은 믿지 않던 것을 믿게 해 준다.


임용고시 D-1

나는 임용 공부를 계속 학교에서 했다. 임용시험은 1차와 2차로 나누어지는데 대부분 1차는 학교에서 준비를 한다. 원서를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내면 시험은 해당 지역에 가서 보게 된다. 임용고시 하루 전날 나는 내가 원서를 낸 지역으로 내려가야 했다.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가야 한다.


난 원래 차를 잘 못 탄다. 어릴 때도 1시간만 가도 울렁거려서 힘들어했다. 근데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차를 많이 타다 보니 괜찮아졌다. 택시만 제외하고. 택시만 타면 유독 울렁거림이 심했다.


시작은 택시에서부터

기숙사에서 짐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정리 요약본을 가방에 넣었다.

교문까지 나와서야 택시를 잡을 수가 있었다.

"터미널로 가주세요."

출처 unsplash, Jake Hills

우리 학교 앞은 버스가 정말 드물게 다녔다. 버스라는 옵션이 있었다면 버스를 탔겠지만 배차간격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터미널까지 버스로 40분은 걸린다고 했다. 택시는 어쩔 수 없었다.


몸이 굳어 있던 탓에 컨디션도 좋지 않았는데 그 날 따라 교통체증도 심하고, 차가 멈췄다 섰다를 반복했다. 내 속이 참아줄 리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냥 안 가고 싶다.'

울렁거리는 속과 답답한 가슴 그리고 몸살에 걸린 것처럼 몸에 힘이 없었다.

걷는 게 힘들고, 어지럽기도 했다.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얄미웠다.

'정말 큰 일을 앞두고 있는데 이래도 되는 거야?'

화장실에 가서 억지로 토를 해보려고 했다.

먹은 게 많지 않아 나오는 것도 없었다.


느낌이 왔다.

이대로는 정말 무리다.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달리 별 방법이 있겠는가.

지금 버스를 타지 않으면 시험장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죽더라도 시험장 앞에서 죽어야 한다. 억울하니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버스 탔어?'

'응.. 엄마.. 나 근데 갈 수 있을까 모르겠어. 속이 별로 안 좋아..'


버스를 타기 전까지 아주 조금 시간이 있었다. 나는 멀미를 하면 달거나 신 사탕을 찾아서 먹는다. 제발 낫기를 기도하면서 새콤달콤을 몇 개 샀다. 입에 한 개씩 넣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버스를 타기 전까지 속이 낫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에게 도전도 못해보고 포기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육대학교에 초점을 맞춰 입시를 준비했고, 그렇게 들어온 학교에서 4년을 보냈다. 오직 이 시험이 내가 4년 동안 존재했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임용고시에 대한 압박감은 심했고 무척이나 중요했다. 합격과 불합격 이 단 두 개의 통보만 있는 시험에 의연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출처 unsplash, Annie Spratt

우여곡절 끝에 탄 버스에서도 맘 편히 있지 못했다. 지금까지 공부한 걸 녹음해놓고 그걸 듣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걸 정리하고도 했다. 잠깐 잠이 들기도 했다.


난 버스에서 내리면 부모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혼자 자고 시험을 보러 또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엄마, 아빠가 시험 보는 지역으로 오셨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6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내 성격상 난 큰 일을 앞두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걱정되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끝날 때까지 그거에만 매진해야 한다. 부모님을 설득해서 밖에서 식사를 하고 오시라고 했고, 나는 그냥 방에서 누룽지를 조금 먹었다. 너무 굶어서 내일 시험을 볼 체력은 있어야 했다.


호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책상에 앉아 기도했다.

'할아버지 제발  도와줘.

 아프고 시험   있게 제발 도와줘.'




임용고시 D-DAY

아침까지 나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엄마가 집에서 챙겨 오신 전기 핫팩으로 배를 계속 감쌌다.

정말 심하게 멀미를 겪고 나면 며칠을 간다. 나의 몸을 원망하기도 했다. 시험장에 들어가면서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세요.'가 아닌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문제를 읽을 수만 있게 해 주세요.' 하며 기도했다.



1차 시험은 당일로 치러진다. 오전에 입실해서 점심쯤 끝난다. 핸드폰을 켜고 엄마 아빠랑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잉~'

문자가 왔다.


엄마의 문자였다.

딸, 잘해주는 모습에 엄마가 늘 고마워.

지금까지 해온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될 거야.

원래 버스 잘 못 타는 아인데, 세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그 긴장된 몸을 이끌고 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엄마가 미안해. 기차를 생각도 못했어. 엄마가 바보야.

.

.

.


또 눈물이 났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기차라는 옵션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절대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왜 엄마가 미안해해야 하는가. 엄마가 나에게 최선의 최선을 다해 주시는 걸 안다. 엄마는 시험을 보러 간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걱정되는 마음에 문자를 보내주신 것이다.


내가 눈물을 보이며 퇴실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 아빠의 마음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엄마 아빠가 보일 때 웃으면서 뛰어갔다. 한마디 하면서


기적인가 봐. 하나도 안 아팠어!


사실이었다.

다행히도 입실을 하고 바로 시험을 보지는 않는다.

수험생들이 진정할 수 있는 시간과 감독관들이 충분히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식은땀이 조금 나기도 하고, 몽롱하기도 했다. 내 정신이 내 몸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멍했다. 정신을 다 잡고 시험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기 시작했을 즈음부터 마음 따라 몸도 가라앉았다. 시험 시작 10분 전 종이 울릴 때 느꼈다.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내가 기도했던 것처럼 글자를 제대로 읽고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이어지는 시험시간에도 나의 배는 잠잠하게 잘 있어줬다. 물론 울렁거림은 살짝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마이쭈를 하나씩 먹으며 당을 채웠다.




임용 공부를 했던 1년 동안 길고 힘든 나와의 싸움을 해왔다. 크게 아팠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정신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왔다. 시험을 보기 위해 학교에서 택시를 타고 아침에 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앞으로 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로 연결시켜주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아주 안 좋은 컨디션을 겪을 수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기적은 있을 수 있다. 나처럼. 아직도 부모님이랑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잘게 쪼개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주는 것까지가 실력이라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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