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노트래블의 염대장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하고 험난한 작가를 한 명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더 현대 여의도에서 앤디 워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사실 앤디 워홀 전시에 버금가는 전시회가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서 진행 중입니다. 독일 미술의 자존심이며 미술사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주인공입니다.
유럽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특별한 전시는 3월 21일부터 7월 18일까지 전시가 진행되며 입장료는 무료!! 입니다. 다만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꼭! 사전에 예약을 하시길 바랍니다.
청담동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비통은 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로 프랭크 게리하면 현대 건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든 분이기도 합니다.
프랭크 게리 특유의 비정형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직선의 석벽 위로 돌출된 곡선 유리 루버, 마치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듯, 한없이 가벼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한국적인 느낌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굽이굽이 펼쳐진 성곽, 바람에 나부끼는 도포자락, 혹은 전통 무용의 우아한 움직임을 연상케 합니다.
이곳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는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저도 아직 일정이 안돼 못 가보고 기회가 되면 갈려고 합니다. 전시회에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이 작가에 대해 공부하고 정리하면서 여러분들께 소개하기 위해 이렇게 포스팅을 하네요~~ㅎㅎㅎ
1960년대에 복귀한 재현의 여러 흐름 중에서 훗날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릴만한 경향은 독일에서 일어납니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이 동독 출신의 화가들이었는데, 당시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그들로 하여금 동구의 재현 회화와 서구의 추상회화를 모두 거부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모던 이전'의 양식과 추상표현주의라는 '모던'의 양식을 지양하는 가운데, 그들의 작업은 자연스레 후에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릴만한 특징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리얼리즘과 추상주의를 모두 거부했던 동독 출신의 작가들은 크게 두 라인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지그마르 폴케, 다른 하나는 게오르크 바젤리츠와 안젤름 키퍼의 라인입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더 이상 독일만의 예술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리히터는 회화가 역사에 관한 진리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차라리 '사진'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가 그토록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더니즘'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이 그의 작업에서 수미일관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다양한 양식들이 등장합니다. 모더니즘 시대의 다양한 양식들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더니즘의 강령들은 저마다 '오직 내 것만이 진정으로 새롭다.'는 식의 베타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은 그와 다르게 '다원주의'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추구됩니다. 심지어 전통으로 복귀하면 안 된다는 모더니즘의 터부마저 포기합니다.
리히터의 작품 세계는 온갖 예술언어로 짜인 모자이크와 같았습니다. 거기에는 포토리얼리즘과 같은 사진적 재현이 있는가 하면, 구상성 배제된 회화적 추상도 있습니다. 추상의 경우에도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을 닮은 게 있는가 하면, 구성주의나 미니멀리즘, 색면 추상이나 모노크롬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습니다. 또 마르셀 뒤샹의 개념적 도발에 가까운 게 있는가 하면 초현실주의적 공간감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연상시키는 낭만주의적 풍경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끝없이 새로운 언어를 가지고 나타남으로써 그는 늘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예술 양식을 차용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그는 종종 '카멜레온'이라고 불렸습니다.
리히터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 매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즉 잭슨 폴록에서 출발한 미국의 추상 운동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추구한 것은 회화의 위축이 아니라 '회화의 갱신'이었는데, 현대미술이 회화의 영역을 떠나 '연극성'을 지향하던 시절에 리히터는 계속 회화의 전통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한편 모더니즘의 추상이 사진이 던져준 충격에 대한 회화의 반응이었다면, 추상이 생명을 다한 이상 사진과 회화의 관계 역시 재정립되어야 했습니다. 리히터의 전략은 추상과 추상, 혹은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넘어 양자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그림(picture)'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1962년 이후 리히터는 사진을 회화로 베끼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가 사진에 매료된 것은 회화와 달리 양식화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진에는 양식도 없고, 구성도 없고, 판단도 없다. 사진은 대상을 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카메라는 대상을 이해하지 않고, 그것들을 그냥 본다. 반면 손으로 그린 그림들은 일종의 시각적 종합이기에 현실을 왜곡시키고 특정한 종류의 양식화로 흘러간다. 그 결과 현실은 이미 알려진 것으로 상투화되고 정형화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1964년 이래 그는 '아틀라스'라는 이름의 사진첩을 마련해두고 거기서 골라낸 사진을 원작 회화의 밑그림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사진첩은 가족사진, 직접 찍은 스냅 샷,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진을 그린다는 점에서 워홀의 것을 닮았지만 워홀과 달리 리히터는 자신의 작품이 정말 사진처럼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포토리얼리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포토리얼리즘이 더 높은 해상도를 구현하려 한다면, 리히터는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그는 사진을 그릴 때 물감이 마르기 전에 표면 전체를 한 번 쓸어줌으로써 윤곽을 흐리게 만듭니다. 리히터를 포토리얼리스트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이 바로 '리히터의 블러'라고 불리는 이 흐르기 효과입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리히터는 포토리얼리즘 작업과 나란히 추상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즉 그는 포토리얼리즘의 구상과 모더니즘의 추상이라는 두 개의 극단을 동시에 공존하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리히터의 추상은 마치 추상표현주의 작품처럼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작품의 디테일을 찍은 사진에 토대를 둔 것입니다. 사진을 이용한 '복제 미학'과 추상회화를 이용한 '숭고 미학'의 두 흐름이 리히터에게서는 하나로 합해지는 것이죠.
리히터의 작업은 '포스트모던'합니다. 매체의 순수성을 부정하고 자신이 주체화하는 현실에 명확한 의미를 주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매체'의 측면에서 양식의 혼합주의는 그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구상과 서구 모더니즘의 추상을 모두 지양해야 했던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주제'의 측면에서 해석의 개방성은 두 개의 전체주의 체제를 경험한 리히터가 일체의 이데올로기를 혐오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사진의 형식으로 제재를 도입한 후 그것을 다시 흐릴 때 제재가 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제재가 없는 모더니즘은 동시에 지양됩니다.
이렇듯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프랑스의 앵포르멜, 독일의 표현주의 등등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작품 활동을 했던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너무나 위대한 작가이기도 하면서 우리들에게는 한 다발의 공부를 가져다준 멋진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너무 뜻깊은 전시회가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