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필요악 동반자, 좌절]

by 운옥

나에게 있어 좌절은 나의 능력 수준을 알게 해주는 길라잡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형제들은 쉽게 해내는 것을 나는 못 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조금 더 커서는 학교에서 정갈하게 정리해서 나눠주는 성적표를 통해 좌절과 함께 내 능력 수준을 수치로 확인했다.

여담으로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 모의고사를 통해 전국 수준에서의 내 능력 수준도 친절하게 알려줬다.


사실 이런 류의 각종 성적표/결과표들은 대부분 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네 길은 거기가 아니야’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미친 듯이 외쳐댄다.


이런 씁쓸한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좌절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은 이제부터 펼쳐질 내 삶을 조금이라도 평탄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어머, 우리 애는 천잰가 봐~’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태어나지만, 학교 성적표나 엄마 친구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겪는 좌절은 공중에 둥둥 떠있는 발을 끌어당겨 땅에 붙일 수 있게 해 준다.

즉, 좌절은 내 분수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이 즐겁냐?

아주 특별한 이들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숨 막히게 괴로운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좌절을 통한 자기 확인 과정은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 있는 가능성의 문들을 하나씩 닫는 잔인한 과정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나의 한계를 확인할 때마다 나의 꿈은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한다.

꿈_버전 1

꿈-수정 1

꿈_최종 버전

꿈_진짜 최종

꿈_진짜 진짜 최종


이 과정을 어떻게 버텨 내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사춘기가 세게 왔다’로 표현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성장통’을 겪었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그리 유쾌한 과정은 아니나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좌절은 어떠한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난 때때로 좌절을 맛보며 내 인생의 진로를 조금씩 조금씩 수정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처음 겪을 때보다는 그동안 겪어왔던 좌절로 내공이 쌓여 아픈 것도 덜하고 좌절이 오면 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나름의 방법도 터득해 견딜만하다.

어렸을 때는 나의 한계를 직면하게 하는 좌절이 무섭기만 했는데, 이제는 단순하게 내 삶을 위한 필요악으로 인생을 함께 설계하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TMI 일 수 있으나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요즘은 좌절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자 가끔은 일부러 잘잘한 도전을 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도전은 내 인생의 경로를 180도 바꾸는 수준의 것은 아니지만 자잘하게 1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을 바꾸는 수준의 도전을 하고 있다.

이 도전에서 원하는 결과를 못 얻어 좌절을 해야 한다면 내 노하우로 대응하면 되는 것이고, 도전에 성공한다면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테지만 인생의 경로가 조금 달라지면서 조금 다른 풍경을 보상으로 얻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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