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곡간 사정은 어떠세요?

by 운옥

참 신기한 것이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속담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아졌다.

속담이 딱 떠오르는 순간들을 만날 때면 내 안에서는 나도 모르게 ‘옛 어른들 말씀에 틀린 게 하나 없네’라는 뻔하디 뻔한 대사를 속으로 읊조리는 것까지가 한 세트로 자동 플레이 된다.


요즘 가장 자주 떠올리는 속담은 ‘곡간에서 인심 난다’이다.

예전에는 정말 곡간을 물질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남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내가 먹고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돼야 가능하다 정도로 생각했었다.


근데 요즘에는 곡간의 차원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일 관련해서 사람들과 불편하게 엮이는 경우들이 있다.

‘왜 일을 이렇게 진행하지 않는 거야’라든지 ‘이 일 가지고 지금 몇 번째 얘기해야 하는 거야’라는 경우를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건은 a로 처리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전에 가나다 자료 같이 줬잖아요. 이거 다시 확인해 주세요”

상대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면 일은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맘은 편치가 않다.

조금 더 부드럽게 얘기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꼭 집어서 얘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라는 후회를 종종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되돌아보면 대부분 나도 일에 치여 있을 때가 많다.

상대에게 어떤 어투로 말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말할 내용을 정해서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맘이 더 컸던 것이다.

가끔은 비슷한 얘기들을 동료나 후배들이 할 때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사실관계부터 따지고 들었다고,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고 자신을 탓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면 난 딱 한 문장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려고 한다.

“00 씨 인심도 곡간에서 난다고 했어. 00 씨 요즘 너무 바빠서 그런 것까지 챙길 여유 없었잖아.”


인심이 나는 곡간은 물질적인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내 마음의 곡간 상태에서도 비롯되는 것 같다.

상대의 처지가 어떤지, 이런 케이스를 다뤄본 적이 있는지,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내 마음의 곡간이 넉넉해야, 상대의 이런 상황도 함께 고려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요즘 왜 이리 싸가지 없이 말하지 또는 쌈닭 같지라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을 탓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마음의 곡간을 들여다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요즘 너무 바쁘게 쫓기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나도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지는 않은지.

혹시 나도 요즘 상황이 빠듯했다면 잠시 나에게도 곡간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

지금 이렇게 바쁜데 무슨 호강에 겨운 소리를 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잠깐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나와 함께 하는 상대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나를 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참고로 나는 ‘내 코가 석자야’라는 말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이 말은 상대의 사정은 없고 자신의 사정만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며 마무리 짓는 듯한 뉘앙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만 살 것도 아니고, 지금 수준의 나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곡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위로와 함께, 곡간을 더 채우고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곡간보다 조금 더 풍족한 곡간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곡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필요악 동반자, 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