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분장을 할 때면 이 일이 딱 누구의 일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이럴 때면 누가 이 일을 할 것인지 관련자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일을 할당하는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납득이 갈 만한 방법은 이 일과 관련도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맡거나 종합해서 최종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사람이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경우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에게 일이 떨어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빌런’이라고 칭하고 있다.
어느 조직에나 빌런은 존재하기 때문에 빌런을 만나 ‘이게 맞아?’라는 생각과 함께 천불이 나는 마음을 붙잡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흔하디 흔한 경우이다.
나라고 이런 경우를 피해 갈 수는 없다.
사실 ‘빌런 피해자 모임’이라는 것이 있다면 총무 자리 정도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당했어도 수준 높은 놈에게 당하고 싶다는 것이다.
빌런 짓에 당하고 나서 일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상황 복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저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이 그 행동을 했을 때 처음부터 입도 못 떼게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정말 제대로 고급진 스킬을 가진 놈에게 당했다면 ‘이건 어쩔 수 없었어. 누구라도 나와 같았을 거야’라는 생각에 덜 억울하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이런 복기도 필요 없는 경우이다.
빌런이 정말 하수에, 눈에 뻔히 보이는 수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저런 사람을 상대로 끝까지 붙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됐다, 내가 하고 만다’하고 지나가야 할 것인지 말이다.
끝까지 붙는다면 나도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고, 그냥 내가 하고 만다 하고 지나가면 저 사람은 고생 안 하고 이번 일을 남에게 털었다고 좋아할 것 같아서 그 꼴이 보기 싫다.
내가 빌런에게 이런 바람을 갖게 된 것은 오롯이 나에 대한 평가와 관련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나 하나만 변수로 이뤄지면 좋겠지만, 실제 평가가 이뤄지는 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나를 둘러싼 상황과 상대에 대한 부분도 변수로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짜증 나는 상황을 유발하는 빌런에 대해 요구 사항이 생기게 된 것이다.
즉, 빌런에 대한 요구는 빌런이 아닌 내 자존감과 자존심을 위한 것이다.
어차피 칼에 찔릴 거라면 무림고수에게 당하는 것이, 동네 유치원 일진한테 당하는 것보다 더 ‘있어빌리티’ 하지 않은가.
그 일을 돌아봤을 때 조금이라도 덜 짜증 나려면 ‘졌지만 잘 싸웠다’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러려면 빌런이 어느 수준 이상의 빌런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탁한다.
빌런 짓을 하는 것은 내가 막을 수 없지만 제발 그 수준을 높이기라도 해서 당하는 사람의 자존감이라도 배려해 달라.
'졌지만 잘 싸웠다.'
'난 진정한 고수와 싸웠다.'
최고의 수준은 상대가 너무나 대단해서 내가 당했으나 내가 당한 줄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의 경지를 범인(凡人)에게 기대하는 것은 힘드니 적당히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만이라도 자신을 갈고닦아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빌런이 당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도의적 차원의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