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매주 엄마랑 이모와 함께 동네에 있는 작은 목욕탕을 다녔다.
엄마와 이모는 항상 목욕탕에서 혼자 오신 분들, 특히 어르신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서 혼자 오셨냐고 물어보시고 등을 밀어드리겠다고 했었다.
엄마나 이모가 모르는 분들에게 그렇게 말씀을 건네시는 모습을 볼 때면, ‘아, 또다.’라는 생각과 함께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괜히 모르는 척했다.
아마 엄마나 이모가 모르는 사람하고 말을 나누는 것이 어린 마음에 부끄럽고 불편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돌입하면서부터 점차 목욕탕을 안 갔다.
그냥 사람들이 그득그득한 목욕탕이 부담스러웠다.
근데 그것도 잠시,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친구랑 가거나 아니면 혼자서라도 사우나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목욕탕’에서 ‘사우나’로 간판들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애가 왜 그렇게 한증막에 들어가서 땀 빼는 것이 좋아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는 않지만, 한증막에서 20분~30분 정도 땀을 빼는 것이 내 한 주의 보상처럼 느껴져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사우나에 갔다.
이때부터였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불편해하던 일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도 모르게 하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아직 어린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나에 혼자 오신 분을 보면 나도 엄마나 이모가 하셨던 것을 똑같이 했다.
혼자 오셨는지 확인하고, 등을 밀어드릴 지 여쭤보고 열심히 처음 본 사람의 등을 문질러주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랑 이모랑 오랜만에 같이 사우나를 갔었는데, 엄마랑 이모도 여전히 혼자 오신 분들 등을 밀어주시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데 이제는 그 행동들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분들 여전하시네~’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성인이 되고 어른들이 그 행동을 왜 하시는지 이해가 되니, 어렸을 때와는 달리 여전하신 어른들의 모습에 뿌듯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다 한 10여 년 전부터 등 밀어드리는 일을 자체적으로 중단하고 있다.
어느 순간 등을 밀어드릴까요 여쭤봐도 괜찮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셨고, 한 번은 같이 간 분이 요즘은 어른들도 이런 거 불편해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 세월이 많이 지났고 그에 따라 이런 일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혼자 오신 분들의 등을 밀어드리는 일은 내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정을 표현하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달라진 것이었다.
시대에 따라 인식이 달라졌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일이라도 그에 맞춰서 달라져야 서로 오해도 생기지 않고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부터였다.
혼자 오신 분들을 봐도 눈길은 가지만, 굳이 등을 밀어드릴 지 여쭤보지는 않는다.
사실 혼자 사우나에 오신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부분까지 모두 고려하셨을 테니깐 내가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것일 가능성도 높다.
그러던 중 오늘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받았다.
혼자서 열심히 등을 문지르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시는 분이 다가오시더니 ‘등의 윗부분이라도 밀어드릴까요?’라고 물어봐주셨다.
내가 그 사우나를 그동안 100번은 넘게 다닌 것 같은데 정말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같이 간 일행이 좀 오래 자리를 비워 내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등을 밀고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분께는 같이 온 일행이 있어 괜찮다고 말씀을 드리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는 나는 하지 않는 일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자 나도 모르는 어느 감정이 ‘톡’하고 건드려졌던 것 같다.
그분 덕분에 어린 시절 엄마랑 이모와 함께 목욕탕에 다니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며, 집에 오는 내내 일행과 옛날 목욕탕 다니던 추억을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아직도 등을 밀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감사합니다.
덕분에 옛 추억을 잘 즐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