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고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채소 가게에 갔다가 이제 막 70세쯤 되셨을 것 같은 여성분과 젊은 점원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여성분은 특정 물건을 요청했고 젊은 점원은 하고 있는 일이 있어 지금은 안 된다고 조금 날카롭게 응대했다.
그냥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여성분이 민망한 듯 소리 없이 웃으니, 젊은 점원은 ‘지금 재밌으세요?’라고 말했다.
그 점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옆에 있던 나까지 순간 민망해지면서 당황스러웠다.
이분의 웃음이 어떻게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이분은 점원의 대응에 무렴해서 상황을 부드럽게 넘겨보려고 웃으신 것 같은데, 이걸 이렇게 대받아치나 싶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점원한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곳의 물건을 팔아주기 싫으니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줄에서 나와 물건을 내려놓고 나가야 할까?
아니면, 내가 어떤 형태든 이 상황을 아는 척하는 행동이 여성분을 더 민망하게 만들지도 모르니, 그냥 모르는 척 있는 것이 나을까?
예전에도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드신 어른들께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도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너네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안 계시니?’였다.
이런 일을 몇 번 목격하다 보니 내가 부모님께 무조건 떼를 쓰는 것이 있다.
그건 집에서는 편하게 목 늘어난 티셔츠 입고 계셔도 되지만 집 앞 가게 가실 때라도 꼭 옷은 챙겨 입고 다니시라는 것이다.
내가 본 상황들 속 어르신들은 사실 행색이 그리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 옷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채소가게에서의 상황을 보면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오늘 채소가게의 여성분은 우리가 흔히 여사님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였기 때문이다.
아, 이제 어르신들은 뭘로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깔끔한 외관도 대책이 될 수 없고, 상대와 어르신들이 무슨 긴 대화를 나눠서 상대가 어르신들의 인지 수준에 따라 대응하는 것도 아니니 인지능력 유지를 위해 뭔가를 하자고 할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안다.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말이다.
어르신들의 경우 대부분 노화가 진행되면서 청력도, 인지 능력도 저하되어 대화를 할 때 상대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것이 많이 피곤하고 힘들 것이다.
나도 가끔 집에서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식인 나도 가끔은 짜증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싶다.
하지만 그래도 옆에서 젊은 사람이 나이 드신 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까지 그 서러움이 전달되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20대였던 때는 그런 상황이 오면 그냥 젊은 사람이 너무하다라는 생각에서 끝났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부모님이 그 어르신의 나이가 되어가셔서 그러는지, 아니면 이제는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느껴서 그러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서러움이 느껴진다.
그냥 나도 모르게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진 것이다.
사실 내가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상황만 모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매우 단순한 일들을 한다.
첫째, 최대한 부모님이 어디 가실 때 동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모님의 외부 일정을 모두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디를 가든 같이 가려고 일정을 조율하는 것을 보시면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지신다.
“엄마 바보 아니야. 엄마도 다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일 봐.”
이런 말씀을 들으면 혹시 내가 하는 행동이 부모님께 더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뜨끔할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상황에 따라 일부러 동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둘째, 작은 바람이 투영된 행동을 한다.
가끔은 누군가도 우리 부모님께 이렇게 작은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곤란한 상황이신 것 같은 어르신들이 계시면 살짝 거들어 드리거나,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고는 한다.
아마 자리를 양보해 주신 분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으실 수도 있으나, 엄마가 전철에서 누가 자리를 양보해 줘서 다리가 아팠는데 너무 고마웠다는 말씀을 하시면, 얼굴도 모르는 그분에게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가능한 한 어르신들께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다.
가끔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몸은 늙었는데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이라고
어렸을 때는 이해를 못 했다.
하지만 내 나이의 앞자리가 변해갈 수록 자연스레 그 말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60대/70대 분들은 컴퓨터의 도입, 핸드폰의 도입 등 신문물을 끝없이 받아들이며 소화해 온 존재들이다.
그들의 기본 인지 능력은 지금의 젊은 세대 못지않게 탄탄하신 분들이시다.
그냥 그렇다는 것을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