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종이 신문 보는 사람 있어요!!]

by 운옥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신문을 배달해 보았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배달된 신문을 확인하는 것이 내 하루 일과의 첫 시작이었다.

때로는 한자로 가득한 신문을 아빠가 읽고 계시면, 그 옆에 앉아 ‘아빠, 읽어줘!’를 끊임없이 외쳐 댔다.

그럼 엄마가 아침을 먹으라고 부르실 때까지 아빠가 읽어주는 기사를 듣고 있었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종이 신문은 나에게 있어 평범하지만 평온한 아침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이 있다.

일명 ‘종이 신문 병’

병의 구체적인 내용은 ‘종이 신문 배달해서 보고 싶어~’이다.

이미 한 5년 전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배급소의 연락처를 찾아 신문 배달을 요청했었는데, 안된다는 답만 받았었다.

당시에는 근처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은 배달해 주면서 왜 가정집은 안 된다고 하냐고 혼자 궁시렁거리다 일단락 났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냥 인터넷으로 구독해서 신문을 보라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내키지 않아 계속 종이 신문 타령만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또 ‘종이 신문 병’이 도졌다.

종이 신문 보고 싶다고 또 읊어 되니 보다 못한 옆에 있던 사람이 검색을 후다닥 해서 배달 신청까지 완료해 줬다.

내가 몇 년 전에 실패했던 지라 순간 믿기지 않았지만, 정말 다음날 우리 집 계단에는 신문이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종이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 종이 신문은 나의 삶을 조금 풍족하게 해주는 존재이다.


종이 신문을 읽게 되면서 평소에는 절대 찾아서 보지 않았을 분야의 기사들을 자연스럽게 읽고 있다.

매번 인터넷으로 기사를 볼 때는 특정 분야의 기사만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쉽게 빠지곤 했다.

하지만 어렵게 손에 넣게 된 배달 신문이기에 신문에 있는 모든 기사들을 다 읽으려고 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보게 되고 세상이 이렇게도 돌아가고 있구나 새삼 놀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세계 곡물시장과 커피시장 기사를 보고 관련 회사들의 주가를 찾아보기도 했고, 미국 관세로 인한 화장품 수출 타격 기사는 나로 하여금 화장품 회사들의 3분기 재무제표를 기다리게 하고 있다.


신문을 읽고 있으면 삶이 조금 천천히 흐르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종이 신문을 읽다 보면 내 어릴 적 향수가 느껴지면서 시간의 속도도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또한 기사를 읽는 방법이 달라진 것도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을 때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며 휙휙 넘기던 것을, 종이 신문은 손으로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고 종이 위 기사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읽다 보니 손 끝에 느껴지는 종이 때문인지 아니면 한 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한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의 속도가 살짝 늦춰지는 듯하다.

나 같은 경우는 신문을 볼 때 형광펜으로 줄을 긋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추가로 찾아보기도 해서 기사 하나 읽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다 보니, 조금 더 시간의 흐름이 여유 있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내 삶도 이 바쁜 현대사회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 속에서, 알고리즘의 축복으로 자의든 타의든 편향된 것들로 삶을 채우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종이 신문은 살짝 멈춰 서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삶을 확장해 주는 실제적인 이점이든, 삶의 속도를 늦춰주는 듯한 감성적인 이점이든, 신문사만 허락하신다면 계속해서 종이 신문을 배달해서 볼 생각이다.

나에게 있어 오늘의 종이 신문은 가벼워진 지갑에도 소비하는 명품 립스틱처럼, 바쁘게 흘러가는 내 삶 속에서 내가 누리는 작은 사치임을 알기에 그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 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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