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 인간상, 그 씁쓸함에 대하여]

아니, 근데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야

by 운옥

예전에 국어시간에 고전 소설과 근대 소설의 차이점 중 하나로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배웠던 것을 기억한다.

고전 소설 속 주인공은 평면적 성격으로 좋은 놈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은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근대 소설로 넘어오면서 주인공의 성격은 정의 내리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근대 소설 속 주인공은 때로는 좋은 놈이었다가, 나쁜 놈이었다가, 또 때로는 그렇게 찌질할 수 없는 불쌍한 놈이기도 하다.

즉,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고전 소설과 근대 소설의 차이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달달 외웠던 것 같다.

나의 실제 삶과는 상관없이 시험에서 1점이라도 더 따려고 말이다.


당시 나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나에게 있어 인간은 그렇게 복잡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내 안에서 저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정의 내리는 것도 간단했고,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얘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이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분명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좋았다가 미웠다가, 싫었다가 고맙다가 아주 난리도 아니다.

동시에 나도 그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는 더더욱 누군가에 대해 입을 떼기가 어려워졌다.

나의 찌질함과 비겁함을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없는 특별한 마법에 걸려버렸다.


물론 나에게는 일관되게 나쁜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근데 이런 사람도 옆에서 보다 보면 모든 사람에게 다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가끔 보면 누군가에게는 어쩜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인물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욕을 하고 싶은데, 욕을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천사 같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욕을 해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본질은 평균 이하의 인간이면서 성인군자 코스프레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나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한쪽 눈을 감기도 한다.

그 사람의 복합적, 입체적 모습?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이다.

그 사람이 가족, 친구, 그리고 또 다른 관계의 누군가에게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있어 그 사람은 나하고 대면한 그 순간들로 정의 내리는 것이 맞지 않은가.

내가 왜 내게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이면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이렇게 나만의 최대한 단순화시킨 기준으로 그 사람을 정의 내려서, 내 속이 풀릴 때까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자가 치료’ 과정을 갖기도 한다.


제일 처음 입체적 인간상을 정의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그 사람은 이 사실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을까?

나는 국어시간에 ‘입체적 인간’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곤란함 없이 단순하고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지르면서 살 수 있었을까?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진리의 말씀인지 오늘도 감탄하고 있다.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은 누가 처음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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