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태아 유전자검사 규제, 불합리하다

생명윤리법 50조, 기술이 있어도 선택을 막는 제도에 예비부부는 절규한다

by 연희랑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


사람이 만든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두드려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이 왜 열리지 않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작년 8월, 국민신문고에 청원을 넣었다.


유전성 신경계 질환인 PKD, 돌발성 운동유발 이상운동증에 대해


배아 태아 단계에서 유전자검사를 허용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결과는 반려.





그리고 올해 3월,

다시 발표된 허용 질환 목록에도


내 질환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일이다.





다섯 가지 기준이 공고되어있다.


image.png 정보공개 청구결과, 기존 공개 평가 기준에 검토 기준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이 기준들에 비춰보면


내 질환은 애매하다.



나는 10살 무렵 처음 증상을 느꼈고,


지금까지 약을 복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약을 먹으면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


치명적인 질환도 아니고,

중증 장애를 유발하는 질환도 아니다.



그래서 이해는 된다.


왜 이 질환이 허용 대상이 아닌지.






그런데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현재 기술로는

수천 종 이상의 유전질환을 검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법에서는

정해진 목록에 포함된 일부 질환만 검사할 수 있다.


목록에 있으면 허용되고,


목록에 없으면 불법이다.



열거해둔 질환만


검사를 허가하는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의학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아무리 개인이 원하더라도,


목록에 없는 질환은

검사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처음으로 질문이 바뀌었다.



이건 단순히


“내 질환이 심각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목록에 없는 질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의 문제 아닐까.



현재 기준은


“이미 심각한 질환”에 대해서는


배아 단계에서의 예방을 허용한다.



그렇다면,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유전될 수 있는 질환을 가진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다.


혹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 아래에서

선택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질문을 피해왔다.


“나는 괜찮으니까”


“살아가는 데 문제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막상


제도라는 기준 앞에 서보니,


이건 단순히 괜찮고, 괜찮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괜찮은 사람도,

선택의 순간에서는


같은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이건 정말

개인의 선택으로만 남겨두어야 하는 문제일까.



아니면,


기술이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는

최소한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열어두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향일까.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기준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선택권 자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아마 한 번쯤은 더 두드려볼 것이다.



이번에는,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기보다

문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를 묻기 위해서.




imag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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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 태아 대상 유전자 검사를 일부 질환에 대해 한정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은 부부를 범법자로 만드는


생명윤리법 50조 2항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배아 태아 유전자검사 규제는 불합리하다.

생명윤리법 50조 2항, 기술이 있어도 선택을 막는 규제에 예비부부는 절규한다.

이제부터 뜨겁게 되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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