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시절, 사무실 옆에 새로 문 연 과일주스 카페가 밖에 크게 걸어둔 메뉴판을 보고 그 크리에이티브함에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신선한 홍시로 만든 감주스, 그 이름은 '어찌 감이'
어찌 감이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감탄을 느끼게 되리라는 자부심 넘치는 카페 사장님의 작명센스 앞에서, 내가 어찌 감히 마케터로 밥 벌어먹고살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반성을 했던 날이었다.
홍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도, 여기의 '어찌 감이'는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맛은 결국 느껴보지 못하고 그저 발만 구르는 다급한 밥벌이만 하다 마케터로서의 15년 생활이 끝났다.
뻔한 밥과 커피를 먹으며 뻔한 얘기를 하고 듣는 나날들이었고, 이제와 돌이키면 어찌 감히 그 따위 사람들에게 내가 짓밟히도록 두었는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으로 얼룩진 시간들이었다.
어찌 감이와 어찌 감히의 사이에서, 마케터 시절의 내가 있다.
아직 마케터이던 시절, 핫한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았다.
금요일 퇴근길에는 맥주를 한 아름 사들고 들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홀짝거렸다. 나의 주말은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후 4시까지였다. 직장인은 개그콘서트 엔딩곡이 나오면 우울하기 시작한다는데 난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다. 늘 만취 상태로 금요일 밤 잠들고 숙취로 토요일을 맞다가 매우 비생산적인 일요일을 대충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했다.
사람을 만나고, 말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해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실제의 나는 집에 칩거하며 책 읽고 라디오 들으며 홀짝홀짝 한잔 곁들이는 것을 좋아하는, 밥벌이하는 히키코모리였다.
스티브 잡스도 집에서는 턴테이블 들었다는데, 내가 그랬다.
먹고살기 위해 핫하고, 트렌디하고, 첨단과 최신을 말하고 추구하며 이용했지만 진짜 나는 낙향한 선비처럼 안빈낙도하며 난이나 치고, 시나 읊으며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뒷짐 지고 걸으며 봄에는 버드나무 잎사귀 스침의 바스락 소리를 듣고 여름에는 처마에 떨어지는 낙수물소리에 한잔 걸치며,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 인생을 빗댄 시 한수 읊다가 겨울 되면 군고구마 까먹고 만화책 보며 킥킥대고 싶은 한량을 꿈꿨다.
하지만 생계의 고단함은 한량도 갓생 살게 하는 법.
그때 일하는 느낌으로 본 드라마들 중에서 굳이 그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나와 같은 직업의 주인공이어서도 아니고 프랑스 빵이 진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고 해서도 아니고, 센강의 아침 조깅길을 화장실로 쓰는 파리 시민이 놀라워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 대사 한마디 때문이었다.
난 남이 한 말에는 상처받지 않아요.
차이와 차별을 넘는 고군분투로 성공하는 마케터의 삶과 로맨스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이런 통찰의 깨달음을 설파하는 드라마였다니.
스스로 나는 흠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해 왔고 지금 역시 그러하다.
그 흠이라 함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 그 능숙함이 부족하여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의 흠.
이를테면 숫자 1000 단위 이상이면 일단 긴장할 정도로 숫자 감각에 기민하지 못하는 흠.
그리고 또 하나의 흠이란, 내 인생의 보조출연자도 되지 못하는 지나가는 이들이 던진 상처에 어버버 하다 들어 맞고 파여버린 흠.
멘털갑 소리를 들으며 갓생 그 자체라 불리던 내게 어느 날 찾아온, '극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의사의 치료가 강력히 권고되는 수준의 우울증'이 말했다.
더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봐. 그리고 한참 있다가 나와.
그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 누구도 나를 누르지 않는데도 납덩이를 매달은 대형폐기물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숨이 끊겨 빨리 바닥에 닿길 바랐으나 꼬륵꼬륵 숨은 쉬어졌다.
내가 왜 여기서 가라앉느냐며 절망의 절규를 했지만 이미 늪 속이었고 그저 의미 없는 공명으로 소리가 웅웅 댈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왜 그토록 억울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남이 한 말에 상처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던진 상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쫓아가며 스스로 몸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피하고 도망치고, 내 몸에 맞고 떨어진 상처를 집어 들어 내던질 줄 알았어야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남의 말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나를 혐오했다. 상처받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배회와 방황의 떠밀림 끝에 늪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그 아픔은 이제 저릿한 신경통으로 남았지만, 내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내 눈앞에 없고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그제야 늪 안이 생각보다 살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데스노트를 태워버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상처를 던지려 하는 것이 감지되는 순간 내 인생에서 차단하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자세, 도피와 회피의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굳이 내 인생에 그런 사람들의 자리를 허하지 않기로 했다.
불의하지는 않되, 도망에는 재빠르고 비겁하기로 했다.
내게 벼락처럼 찾아왔던 우울증의 비구름은 지금 누구의 우주에 머물렀을까.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했듯, 그 흐린 우주도 변하고 또 바뀐다.
내 우주도 그렇게 몇 번의 바뀜으로 제법 평화로워졌다.
내 인생에 어찌 감히 아무나 들이겠는가?
어찌 감히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가?
어찌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