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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n 06. 2023

월마트는 보따리를 쌌고 코스트코는 눈물 보따리를 흘리고

마케팅 에세이 #2. 월마트를 무너뜨린 피키 코리안

유튜브를 열면 세계 곳곳의 도시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케이팝에 맞추어 아무나 등장하여 춤을 추는 쇼츠 영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케이컬처의 힘은 실로 대단하여, 이미 우리에게는 90년대 초부터 이미 세계화를 외치던 대통령이 있었음에도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체감되지 않던 세계화,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제 일상으로 마주하고 있다.


미국에서 만들었던 코스트코 멤버십을 서울 양재 코스트코에서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생활,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지금의 생활이 외국으로 이식되었을 때 치열한 면역억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적응할 수 있고 외국의 것, 생활이 더 이상 신기함과 동경의 대상이 아니며 차이보다는 비슷한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것, 혹 다른 점이 있더라도 ‘아 그렇구나.’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는 단순 수용의 태도.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 이미 깊이 파고든 다국적 기업의 경영 전략에도 그대로 흡수되어 전 세계 어디에 진출해도 기업의 대표적 이미지와 문화는 지키되, 미시적인 부분에서의 접근과 적용에 있어서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케이팝 아이돌이 외국인 멤버를 포함하여 구성하더라도 한복을 입고, 한국어를 말하며 한국 아이덴티티를 반드시 드러내는 것과 그 결이 같다고 본다. 글로벌 진출의 전략은 거시적인 색의 유지와 미시적인 붓터치의 융통성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최고의 기업 순위 10위권내에 늘 자리하는 월마트는 한국에서 실패했다. 그 이유를 국내 대기업 유통체인들의 안정적인 점유율과 소비자 선호도에서만 찾을 수 없다. 이미 한국 대부분의 산업은 레드오션이고, 레드오션 속에서도 끝없는 경쟁을 한다. 이제는 빨갛다 못해 블랙이 될 지경에 이른, 경쟁 자체가 일상인 한국 시장에서의 실패는 한국 시장 구조와 체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 소비자들의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통찰력 부족에 의한 것이다.


월마트와 유사한 창고형 할인 매장을 내세운 코스트코는 서울 내 주요 점포가 세계 매출 순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성공했고, 상하이 지점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 양재점은 세계 1위 매출로 창업자인 제임스 시네갈이 세계에서 가장 물건이 많이 팔리는 점포가 서울 양재점을 생각할 때마다 감격스러워 눈물이 난다고 할 정도로 한국 마트 시장에서 '코세권' 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입지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월마트는 사업 시작 후 10년도 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떠나야 했으나, 한국에 대한 감사의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는 코스트코의 30년 가까운 승승장구. 이 둘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월마트는 1998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9년 만에 모든 영업권을 매각한 뒤 완전히 한국에서 철수했다. 내리는 월마트 간판 위로 올라가던 이마트 간판의 보도 사진을 보며 ‘역시 이마트’라는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의 승리감에 도취되기 보다는 한국 소비자에 대한 기본적 학습도 하지 않고 오만하게 사업을 시작하더니 역시 망하는구나, 하는 '지피지기' 안한 골리앗의 당연한 실패를 그저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세계 유통 업계의 최고 인재들이 모여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월마트의 한국 시장에서의 실패 사례는 바로 유통을 둘러싼 거시적 환경,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이해와 실행의 완벽한 부족에 의한 것이다.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한 1998년은 한국 국민들이 IMF 체제 아래에서 매우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시기 었고, ‘사장님이 미쳤어요!’로 대표되는 ‘가격파괴’ 마케팅이 모든 업종을 뒤덮으며 전 국민이 ‘부자 되세요.’라는 자기 암시적 광고를 듣고 보며 말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할 때, 월마트의 대표 슬로건  ‘매일매일 저렴하게(Everyday Low Price)’는 당시의 한국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 이유는 마트를 찾아 상품을 구매하는 경험에 대한 미국과 한국 소비자의 판이하게 다른 태도에 있다.

첫째, 한국인에게 쇼핑은 일종의 오락이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마트에서의 쇼핑이란 단순한 생필품 구입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나가 시식을 하고 먹거리와 생활용품을 구입하며 생활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는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다. 카트를 밀며 마트를 누비는 시간이 일종의 힐링이자 즐거움인 것이다. 주부는 먹거리를 사고 아이들은 게임기 코너를 찾으며 아빠는 전자기기나 공구 코너를 찾아 즐거움을 찾는다. 여기서 저렴한 가격 경쟁력은 마트가 제공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 그 이상의 만족을 원하며 이것이 구입하는 가격에 비용으로 얹힌 것이 아니라 마트라면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화장실 설치나 과일 담기용 비닐봉지 제공과도 같은 기본적 요소로 인식이 되는 것이다. 당시 경제 위기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한국 소비자들에게 마트 쇼핑은 고단한 일상을 잠시 잊고 1+1이라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집어들며 소비의 즐거움을 가족과 만끽하는, 예상 이상의 예산을 쓰고도 두둑한 장바구니만큼의 심리적 포만감으로 기쁘게 귀가하는 소중한 시간인데 월마트는 싼 가격에는 집중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즐거운 경험에 있어서는 철저히 무지했다.


둘째, 한국인은 *세권을 원한다.

 월마트는 도심 외곽에 위치한 저렴한 부지에 창고형 큰 매장을 지어 비용을 절감하고, 대량으로 상품을 소싱하여 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구조였다. ‘아주 좋은 상태의 상품’은 아니지만 훨씬 싼 가격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 수 있던 배경에는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집과 거리가 먼 곳이라도 소유한 자동차로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운전이 곧 기본 일상인 미국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한국의 마트는 주택이 많고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위치한다. 스타벅스가 가까운 곳을 뜻하는 스세권처럼, 한국인의 생활 중심인 집과 가까운 곳이 선택 1순위가 된다.


셋째, 친절은 기본 옵션

 월마트는 싼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직원 배치를 최소화하며 높은 수준의 서비스가 아닌, 단순한 제품 정리, 계산, 재고 관리 정도로 그 역할을 제한했으나 한국은 저렴한 물건을 사도 친절한 태도를 기본으로 여긴다. 같은 물건의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좋은 서비스를 위해 백화점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이민 초기, 주요 업종인 한인 슈퍼마켓이 성공할 수 있던 이유 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늦은 시간까지도 서서 고객을 맞이했고, 거스름돈을 반드시 손님의 손에 직접 얹어 주는 배려 깊은 태도였다는 말처럼, 한국인에게 손님은 나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 손님은 왕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친절 기본 원칙이 월마트에는 부재했다.


넷째, 쇼미 더 머니! 쇼미 더 프레쉬!

 한국의 마트가 매우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는 바로 먹거리. 얼마나 더 신선하고 품질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는지가 매출을 좌우한다. 그래서 한국 유통기업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좋은 농장을 미리 선점하는 것이다. 월마트는 공산품을 저렴하게 공급하였지만 한국인이 선호하는 신선하고 좋은 먹거리의 독점적 유통에서 부족했다. 생활용품은 인터넷으로 사더라도 채소, 과일, 고기, 생선은 직접 나가 눈으로 보고 사는 한국인에게 있어 식품 구색에 있어 부족했던 월마트는 마트 직원이 눈앞에서 떠 준 생선회를 사들고 곧장 집에 와서 바로 소주 한잔을 하고 싶어 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있어 물리적 거리감 뿐 아니라 먹거리 신선도 경쟁력이 떨어져 시간 들여 가보아도 살게 없다는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칙칙한 곳에서 돈까지 쓰고 싶지 않다.

 한국인에게 쇼핑이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는데, 즐거움을 찾기 위해 간 마트가 무채색으로 일관된, 어두컴컴한 창고형 마트의 내부 디자인은 입장에서부터 일단 소비자의 마음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창고란 한국인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쌓아두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월마트가 내세운 창고형 할인마트는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싸게 파는 곳이라는 인식이 아니라 성의 없게 쌓인 그다지 특이하지도 않은 물건을 조금 깎아주는 곳 정도로 인식된 것이다. 오히려 월마트의 그런 쌓아두기식 VMD는 '싼게 비지떡' 이라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똑같은 물건이라도 보기 좋게 배치하면 마음이 슬그머니 움직이는 한국인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코스트코는 창고형 할인마트 아이덴티티를 고수하지만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환한 조명 아래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진열하고 배치된 직원들의 설명을 들을 있으며 다른 층의 푸드코트로 내려가면 마치 미국에 온 듯한 분위기에서 아주 저렴하게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고 미국과 똑같이 무한으로 탄산음료를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코스트코의 먹거리는 싸고 신선한 것으로 인기가 높은데 이 같은 식품 경쟁력뿐 아니라 다른 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코스트코의 피비 상품 커크랜드를 구입할 수 있다는 차별성이 같은 미국에서 왔지만 두 기업의 성패를 갈랐다.


한국에서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월마트는 세계 탑 기업 순위에 드는 대기업으로 글로벌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작은 시장이었지만, 사회문화적 학습이 되지 않은 섣부른 경영이 철저히 외면받을 수 있는 사례로 남은 것은 월마트에게 ‘우리도 실패할 수 있다.’는 학습 효과를 준 순기능도 있는, 의미있는 실패라는 생각을 한다.


소비자를 합리적 존재로 보는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반증하는 여러 연구를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소비경험을 돌아볼 때 소비는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


외국인 CEO가 한국에 부임하면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한다는 인터뷰가 생산직 직원들이 입는 공장 잠바를 입고 사람좋은 미소를 띠는 사진과 함께 마치 정해진 양식 같은 기사로 매체에 소개된다. 여기에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고, 이제 한국 사람 다 된' 이라는 꾸밈말은 어김없이 들어간다.


대체 이런 보여주기식 인터뷰를 왜 하며, 경영에만 집중하기도 바쁜데 왜 삼겹살과 소주에 익숙해지려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다시 생각하면 월마트의 실패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주말 저녁 마트를 가면 어김없이 파는 냉동 LA갈비 판매 사원은 전달력 좋은 완벽에 가까운 발음으로 소리높여 말하며 갈비를 포장해 준다


'소주잔 반컵 정도 물을 붓고 후라이팬에 넣거나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훨씬 맛있어요!.'


월마트는 김장철에 마트에 배추를 쌓아놓고 직접 소금을 뿌려가며 절임배추를 만들며 판매하지 않았고, 여름이면 쌓아놓은 수박 중 좋은 것들을 골라 썰어놓고 지나가는 고객에게 권하며 아기에게는 특히 큰 조각을 손에 쥐어주는 넉살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았다.


좋은 품질의 것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얻은 것이 팔린다. 그것을 간과하면 월마트 그 이상의 거대 기업도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대기표를 뽑아가며 명품을 사려는 행렬은 줄지 않고, 사장님이 미쳤다는 외침 역시도 함께 존재한다.


월마트에게는 이렇게 싸게 해주었는데도 사지 않고, 싼 가격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이해할 수 없는 뻔뻔함으로 무장한 것처럼 보였을 한국 소비자들의 별스럽고 까다롭던 소비 행태는 결과적으로는 가격, 서비스, 경험이 모두 결합된, 유통기업이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 품질을 글로벌하게 상향 평준화 시켰다.


가장 한국적인 마음과 행동이 이끌어낸 글로벌한 성장 경쟁력, 그것이 결국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패션감각이 좋을 뿐 아니라 인성까지 뛰어난 케이팝 스타가 되었고 웃기면서 슬프고, 재미있으면서 감동적인 케이컨텐트로 발현되었다.


그렇다. 한국인의 소비는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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