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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n 06. 2023

설계된 마찰, 의도된 절제 - 디자인 프릭션

마케팅 에세이 #. 1  마케터의 직업 윤리에 대하여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전, 어떤 내용인지 이미 본 사람들에게 직접 묻거나 인터넷을 찾아 스토리를 파악하며 이 컨텐트에 나의 비용을 소비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가늠한 뒤 소비를 결정하는 편인데, 결말을 미리 파악하고 보더라도 스토리 자체가 훌륭하다면 그 어떤 아쉬움도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보는데도 불구하고, 줄거리를 주위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중간 정도까지만 일러주고 결말은 직접 확인하라며 부탁하지도 않은 기대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로 마무리되는 경우를 꽤 겪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다는, 일종의 정보  선점에서 오는 기쁨을 드러내며 대화를 중단하는 상대가 제공하는 정보로는 불충분했고, 결말을 물어봄에도 왜 굳이 일러주지 않고, 그리 피어나지도 않을 기대 심리를 굳이 심어 주려하는지에 대한 의문의 감정을 느껴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아닌 영화의 결말까지 친절히 일러주는, 흔히 말하는 스포일러, 스포가 있는 영화 소개 사이트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서비스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컨텐트의 스토리를 가감 없이 끝까지 상세히 알려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요한 장면이나 스토리를 미리 다 인지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미가 검증되지 않은 컨텐트에 굳이 시간과 금전적 비용을 들여서 소비하고 싶지 않고, 혹시나 서전 정보 없이 컨텐트를 소비했을 때 느끼게 될 후회감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OTT 서비스에서 영화의 선정성, 폭력성 등을 수치로 표기하고 이미 본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만족스러운 서비스이다. 이러한 기능이 없다면 나는 이 OTT 서비스가 제공하는 컨텐트에 대한 사전 검증 없이 재미없는 컨텐트를 소비하게 될 때 느끼게 될 불편한 감정, 특히 시간적 비용에 대한 아쉬움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어 결국 별로 볼만한 것이 없는 서비스라는 생각에 OTT 서비스 구독 해지 할 수도 있다.


엄청난 투자를 감행한 컨텐트라 할지라도 투자액과 재미, 완성도는 완전히 별개의 것인 만큼 내게 이 컨텐트에 대한 가감 없는 사용자 후기와 컨텐트 내용의 성격을 수치로 안내해 주는 사전 서비스는 매우 유용하며 이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서비스에 대한 실망감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소비자의 이탈을 방지할 수 있는 일종의 디자인 프릭션, 의도된 마찰이라고 생각한다.


소개된 스토리를 읽어보고 흥미를 느끼더라도 선정성이나 폭력성 수치가 높다면 소비하지 않는다. 굳이 시간을 들여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까지 감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단기적 관점에서는 OTT서비스가 제공한 컨텐트 사전 정보로 인해 나는 현재 시점에서는 소비하지 않았으나, 어쩌면 후회했을 수 있을 소비를 사전 차단함으로써 OTT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다른 컨텐트를 대안으로 찾으며 더 오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로 남을 수 있다. 


모든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이 오래도록 그 브랜드를 생각하고, 좋아하며 소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일편단심, 이탈하지 않는 긴 인연을 만들기 위해 모든 브랜드들이 노력하지만, 더 긴 인연을 위해 과감히 지루함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 브랜드로 인해 느낄 피로감, 불편함, 또는 일종의 죄책감을 제한하고, 이러한 부정적 감정이 발생하기 전에 생성 자체를 방지할 수 있는 절제 장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 브랜드의 상품,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느끼게 된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상쇄하기 위해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무효화’에 대해 마케터는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게임 서비스 회사는 사용자가 더 오랜 시간 게임 서비스에 머물고 더 깊이 몰입하도록 서비스를 개발하지만, 그 사용자가 게임에 대한 중독 상태에 이르러 사회와 단절되고, 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비정상적 생활을 하는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지탄받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해당 사용자는 영원히 그 게임 서비스에서부터 이탈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도, 그 충성도 높은 사용자를 잃은 기업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결말일 수 없다. 그렇기에 게임 서비스 내에서도 일정 시간 이상 이용한다면 절제를 권고하고, 지나친 게임 집중도가 가져올 부정적 결과에 대한 인지를 전달하며 서비스 구성 내에서도 중독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디자인 프릭션을 설치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으로도, 사회의 장기적 발전으로도, 개인의 삶의 행복도에서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디자인 프릭션은 OTT, 게임, 소셜미디어처럼 감각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서비스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산업의 서비스에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회사는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는 월 소비액 이상의 지출이 감지되면 위험 신호를 보내줌으로써 과도한 지출을 방지하여 개인 파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부채 발생의 가능성을 줄여주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사용자의 소비, 지출을 제한하여 매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이다. 


기업에게 당장의 매출을 주지만 결코 긍정적이지 않는 과도한 소비 행태의 이용자에 대한 제한이 없다면 결국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영원한 이탈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해당 서비스에 대한 매우 넓은 범위에서의 부정적 인식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케팅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에 마케터는 나의 아이디어가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반드시 갖고 임해야 한다. 마케팅은 그저 무엇을 팔고, 확산시켜 기업의 매출을 상승시키는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든 활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고, 움직이며 결국 세상에 변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많이 사고, 오래 쓰게 하는 것에 대한 집중에서 더 긴 시간 소비자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긴 선의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설계되고 의도된 절제의 장치, 디자인 프릭션은 더 많은 브랜드에서 지속가능경영의 일환으로 반드시 취해야 할 미래 전략에서도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마케팅이 일상에 주는 영향력에 대한 책임감이고 소비자에 대한 존중감이며, 가장 기본적인 인간 존엄에 대한 윤리와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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