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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May 22. 2023

남의 기쁨을 비웃는 자. 사악이어라.

우울증이 준 선물 - 인간손절

우울증 진단 후 바로 휴직 인가를 받았다.


당시 직속상사는 하루라도 빨리 진단서를 받아 휴직하여 자기 눈에서 꺼지라 채근했고, 갑작스레 찾아온 증세에 그다음 후속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회사 곳곳에 소문내며 정신병 걸린 년이 기어 들어와 아주 죽겠다고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 그럴듯한 성과를 빠르게, 반드시 보여야 상황 속 마케팅 팀장의 위치인 그녀에게 나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는데, 이 자원이 예고 없이 악취를 내뿜으며 처치불가의 상태로 전락하고 있으니, 그녀의 속 문드러짐도 조금은 이해했지만, 증세가 나타나기 직전에 그녀의 지시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그녀는 내가 단독으로 결재 없이 진행하여 회사의 손실을 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그때 나는 실어 상태였다.


그때의 나는 인식, 감정, 표현 모두가 마비된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던지면 던지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회사 밖으로 적법하게 나갈 수 있는 모든 절차가 끝나기만을 무력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증세가 원망스러웠고 이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괴롭다고 머리를 뜯는 내게 진단서를 내어주던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환자고, 이건 질병이니까
약을 먹으면 나아요. 치료받으면 나아요.


이해되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말이 그저 동정의 위로로만 들렸다.


불과 몇 개월 전 부푼 마음을 안고 첫 출근용 원피스와 업무용 카디건까지 새로 장만하고 들어왔던 회사 정문을 나설 때 나는 이미 알았다. 이 휴직이 곧 퇴직이 될 것이며, 아마도 나는 다시 이런 회사의 울타리로 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회사를 떠나고 치료가 시작되었지만, 생각보다 평온이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눈물만 줄줄 흘리며 갑자기 멈춘 일상처럼 숨도 멈추길 바라는 시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약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어느 순간 눈물이 조금씩 덜 나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욕구가 아주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내가 처방받았던 약은 감정의 파고를 잠재우고 헛생각을 사그라들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각을 없애고 있었다. 멍했다. 눈물도 멈췄지만 웃음도 멈췄다. 그렇게 나는 살아남았다.


나름 인정받는다고 믿던 마케터에서 우울증으로 천덕꾸러기 짓을 한동안 하다 재활용도 어려운 폐기물 처지가 되고 얼마간이 지나자 하나 더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알아서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 때때로 말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 말하기 위해 입을 떼는 것조차 귀찮아져 있었다.


점차 시간이 흘러 밖으로 나아가 보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나뭇잎 색이 달라져 있었다. 그즈음에 나의 소식을 알고 예전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가웠고 종종 소식을 주고받던 중 그녀가 좋아한다며 내게 아이돌 사진을 연달아 보내오는 것을 보고 이런 아이돌을 좋아할지 몰랐다고 농을 던지는 내게 그녀가 얘기했다.


'지금 정신이 온전치 못하셔서 그런가 본데요. 남의 취향을 이렇게 말하다니요? 어서 약 먹고 나으세요.'


나의 고통이 나의 약점으로 놀림이 될 수 있음이 바로 환기되던 순간. 그녀와 함께 일하던 시기에 흔히 말하는 '멕이는 짓'으로 힘들게 하던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내 안의 폐쇄된 공간 안에 들어가 혼자 있느라 잊고 있었다기에는 꽤 많았고, 그럼에도 누가 걸어준 말에 반가워했던 내가 한심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왔을 때 폰을 열어 연락처를 정리했다. 한철 안 입은 옷은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는 것처럼 의미 없이 내 폰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지웠다.


마음이 아팠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일상에 어느 정도 돌아와 다시 먹고살기를 위해 일을 찾던 중 돈은 크게 되지 않지만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인 어린이 영어 화상 강의를 시작했고 하루 종일 블라인드로 빛을 차단해 시간이 가는지도 전혀 모르는 생활을 한동안 하던 내가 다시 시계를 보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생활을 재개했다. 정말 작은 돈을 벌었지만, 회사를 가지 않는다는 기쁨 그 자체가 컸기에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 수업에 있던 어머니로부터 개인수업 제안을 받았다.


약간의 부수입이 더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나의 수업을 의미 있게 지켜보아 준 그 어머님께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평생 직장생활만 하다 끝날 줄 알았던 내가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는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에 오랜 친구에게 과외 수업 제안을 받았다고 이야기하자 그녀가 말했다.


'희한하네?'


축하한다거나, 신기하다가 아닌 딱 저 4글자에 놀라 되물었다.


'희한하다고..?'

'응. 희한해.'


그녀에게 나의 새 기회는 희한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10대 후반부터 20년 이상을 이어온 그녀와 더 이상 나는 연락하지 않는다.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위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게 된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기회를 만나 설레어하는 내게 비아냥의 어조로 답하던 '희한하다.'에서 그녀에 대한 감정이 탈색됐다.


남의 고통을 기뻐하는 자가 사탄이라면

남의 기쁨을 비웃는 자는 사악 그 자체이다.


절절한 인간관계는 없었다.


나는 우울증으로 그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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