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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n 06. 2023

혼자는 좋지만 진짜 혼자는 별로라..

마케팅 에세이 #3. 그래서 우리는 올영에 가나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정말 고대 그리스 시대의 말로 느껴지는, 주도적으로 혼자의 삶을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혼자의 삶을 즐기는 것이 그저 하나의 삶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30-40년 전, 부모님 세대가 청년이었던 시절만 하더라도 ‘혼자 사는 여자’, ‘혼자 사는 남자’란 어떠한 말 못 할 사정이 있거나 그 어떤 이성도 거두어 주지 않은 낮은 매력도의 사람 내지는 뭔가 큰 하자가 있는 이로 여겨져 대놓고 비주류 취급을 하며 동네 창피스러운 존재 또는 집안의 말 못 할 아픔이나 흠으로 여겨지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혼자 사는 삶’ 이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상전벽해라 하는 것일까?


어릴 적 학교에서 가족은 2인 이상으로 구성된 가장 작은 공동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오늘의 학교에서 가족이란 일단 한 몸 누일 곳 마련하고, 스스로 밥 해 먹을 정도의 경제력을 마련한 독립된 개인부터 가족으로 볼 수 있다고 배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는 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혈연관계의 집단이 아닌, 비혈연관계에서도 충분히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도 고독과 어느 순간 찾아오는 적막은 때로 무겁고, 싫은 것이 될 수 있다. 혼자의 삶과 진짜 혼자인 삶은 다른 것이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생활은 좋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의 이름 모를 잡초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어 꽃이 되는 존재, 우리 모두는 그것을 희망한다.


마켓컬리, 쿠팡프레쉬를 이용해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배달시켜 냉장고에 채워놓고 욕실에 치약이 떨어지면 일단 쿠팡 앱부터 키게 되더라도, 길을 가다 ‘올영세일’ 안내물이 부착된 올리브영의 쇼윈도를 보면 요새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쓰고 사는지가 궁금하여 매장 문을 밀게 된다. 늘 쓰던 것들을 쓰고 습관적 행태로 대부분의 일상용품 구매 하고는 있지만, 우리 집 문 밖의 사람들은 무엇을 쓰고, 먹고, 생각하며 말하는지가 궁금하여 사람이 있는 곳을 스스로 발길을 돌려 찾는다. 그곳에서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직원은 때때로 부담스럽고 귀찮지만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요새 삶을 엿보는 것은 재미있다.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에 대한 구매 채널 무게 중심이 이미 온라인으로 훌쩍 넘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탐색한다. 마케팅 교재에서 접하는 정보탐색의 의미는 더 이상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는 그것이 아니라 이것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에 대한 정보탐색으로 의미가 치환되었다.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접하고 실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쇼루밍 현상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매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온라인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 제안을 들이밀며 우리의 발걸음을 돌린다. 예컨대, 오랫동안 내게 성공의 상징인 보테가 베네타 백을 살 때 가장 싼 가격으로 가장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방법은 첫째가 당근마켓, 둘째가 구구스, 셋째가 명품 전문 온라인 몰로 가격적 합리성과 제품 양수의 편의성을 따진다면 백화점 명품관은 가장 마지막 순위이지만 성공의 상징으로 구매하고자 십수 년간 적금을 부으며 꿈꿔온 보테가 베네타 백을 지하철역 입구에서 ‘당근이시죠?’를 속삭이며 구매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생존 또는 생활 필수가결한 것이 아닌, 당장 필요 없는 것을 필요로 사는 것이라면 그것을 사러 가기 위한 준비부터가 구매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사러 이동하는 발걸음이 닿는 모든 풍경과 매장에 도달하여 직원의 안내를 받고 제품을 확인한 후 결제하여 장갑 낀 두 손으로 공손히 제품을 양도하는 매장 직원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귀가하는 동안, 손에 들린 큼지막한 쇼핑백에 닿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눈길까지도 구매의 연장이며 집에 와서 조심스레 쇼핑백을 풀고 직접 몸에 걸쳐 보며 나만의 오뜨 꾸뛰르를 펼치는 것도 역시 끝나지 않은 구매의 경험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구매는 그저 고르고 돈을 내고 돌아서는 것에 목적과 경험이 있지 않다. 그곳을 향하며 하는 생각, 그곳에서 마주하는 장면들, 그곳을 나와 내 생활로 온전히 이동하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연관되어 있다. 위에 예를 든 보테가 베네타 같은 명품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올영세일에 맞추어 들어간 올리브영에서 만나는 타인들의 선택, 무엇을 집어 들고 무엇을 사며 무엇에 집중하는지를 구경하며 직접 써보는 것, 사람들의 뒤섞인 목소리와 매장 내 음악이 만나 일어나는 소음도 외출 나온 하루의 한 장면이 된다.


혼자가 좋고, 고독도 적막도 다 좋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문 밖의 사람들, 삶에 대한 궁금함이 밀려드는 순간에 애초 혼자 살 수 없던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는 데 있어서 오프라인 매장은 매우 손쉽고 빠르게 욕구 충족을 해줄 수 있다. 온라인 매장들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우리는 합법적이며 저렴하게, 누군가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으며 본능에 충실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영에 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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