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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Jul 05. 2023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어 시작한 영어공부記 1

어느날 인생이 공부하라 소리 질렀다.

장래희망을 밥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적인 의미에서부터 생각하게 된 시점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꿈의 직업 ‘마케터’로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서른을 앞두던 시점.


막상 해보니 마케터는 전혀 멋지지 않았다. 지식노가다꾼에 불과했다.


고작 4-5년 정도 일해놓고서 뭔가 새로운 전환점을 만나고 싶다는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열정은 충만한 꿈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진학 후에는 지식노가다꾼에서 벗어나 전공 분야의 전문가이자 가방끈 긴, 뭔가 멋지고 세련된, 뭐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알을 깨고 나와 빛나는 날개를 펼치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뜬구름 같은 계획을 세웠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시작한 대학원에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토론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난 그 자체로 나름 즐거운 생활을 했는데, 대학원 졸업 요건 중에는 영어 공인 시험의 일정 점수 이상 또는 학교 자체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미 취업 전선에서 토익 기본 점수 요건 채우는 것으로도 굉장히 힘들어했던 터라 다시 한번 토익 시험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학교 자체 영어 시험을 보는 것을 택했다.


시험 범위와 문제는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 원서 중에서 한 챕터를 번역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부분이 나올지 모르니 전체적인 내용을 다 알아야 했다.


고등학교 때 학급 문고에 한 권 꽂혀있던 기억이 있긴 한데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던 책이라 호기롭게 원서를 샀지만 결국 몇 번 펼치기만 하다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수준에 적잔이 당황하며 국문 번역이 함께 있는 것으로 다시 구매하여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보았지만 결국 완독 하지 못한 채 시험을 맞이했다.


무슨 깡이었을까?


영어 독해는 잘 못해도 감으로 해석하여 그럴싸하게 ‘썰 풀기’ 에는 자신이 있던 터라 어느 정도 내용만 파악하면 되겠지 하는 오만방자한 자세로 시험에 임했고, 이 정도면 꽤 매끄러운 번역을 했다는 마음으로 시험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발표된 시험 결과.


친한 대학원 동기가 먼저 본인의 결과를 확인한 후 들떠 내게 연락했다.

‘누나 걱정 말아요. 나도 붙었는데 문제없지 뭐!’

‘앗, 너는 패스니? 내 결과도 한번 봐줄래?’

‘알겠어요. 학번 알려주세요.’


친구가 내 학번을 입력하고 결과를 찾는 소리에 이어진 적막.


불안한 예감이 뒤통수를 스쳤고 역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누나, 재시험 별거 아니래요..’

‘나 떨어짐?’


세세한 번역은 어려웠지만 대충 훑어보니 무슨 내용인지 느낌이 와서 그놈의 '느낌 아니까'를 시전 하며 거의 창작에 가깝게 시험지를 채우기는 했지만, 탈락이라니?


아니, 전체적인 흐름 이해가 중요하지, 단어 하나하나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아니 이 정도면 얼마나 창의적이고 재치 있으며 순발력 넘치는가?


이런 나의 잠재력을 알아주지 않는 감각 없는 학교에 섭섭함과 충격을 느끼며 애써 침착을 되찾고 성적 조회를 해 준 친구에게 물었다.


‘또 누구 떨어졌대?’


혼자 떨어진 것은 부끄러워서 패배 동지가 또 있는지를 물었고 머지않아 동병상련 신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시험을 치른 대학원생들 중 단 두 명.


나, 그리고 중국인 유학생.


단 2명만이 탈락한, 합격률 매우 높은 그 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어도 서툴렀는데 영어 시험이 웬 말이었겠는가.


그런데 난 대체 뭔가.


나는 중, 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이수하고 수능을 치러 정시로 대학을 갔고, 토익도 보았으며 취업 전선에서 토익 점수 제출은 물론 영어 인터뷰도 경험했는데 탈락이라니?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에 왔는가?

내가 이런 수모나 겪을 수준의 처참한 영어 실력이라는 말인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지 몰랐다. 하기사 취업 후 영어공부를 할 일이 없었다. 당연히 생활이나 업무에서 쓸 일도 없었다. 영어 세계의 천둥벌거숭이란 바로 나였다.


충격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았다. 이제 내가 나이 서른인데, 이렇게 영어계의 무식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기왕 이렇게 된 거 영어공부를 한번 시작해 볼까?


내 최고의 장점은 생각하면 바로 행한다는 점인데 그로 인해 시행착오도 있지만, 어찌 됐든 나아가긴 한다. 그래서 난 늘 말한다.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고,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이라고. 일단 해서 버티면 휩쓸려서라도 나아간다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영어공부를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나 집 근처의 '윤선생 영어교실'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갔다.


영어 실력을 키울 겸 해서 공부할 교재들을 사러 왔다고 방문목적을 밝히고 교재들을 추천받았다.


당시 추천받은 교재는 중학교 수준.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건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몇 권을 사들고 집에 와서 책상에 앉아 풀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너무 어려웠다.


나는 중학생 수준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나의 수준은 어디란 말인가? 난 그래도 대학을 나왔는데, 이 정도도 못 풀다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왕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의 두 번째 장점 중 하나는 단순하다는 것이다.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내려놓고 전문가를 따른다. 그때 나는 내가 따라갈 멘토, 전문가가 필요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불현듯 영어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은 개그맨 김영철이 생각났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전문 영어 강사보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 영어공부 비법을 담은 책을 냈다는 점에서 일단 친근감이 느껴졌고, 왠지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당장 알라딘에 접속해서 그가 쓴 영어책 ‘뻔뻔한 영철영어’를 샀고 배달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김영철도 했는데, 내가 왜 못해? 나도 그대로 한번 따라 해 보는 거야!'


2012년 3월 2일.


내 나이 서른,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망신감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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