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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충 Nov 13. 2019

브런치 작가는 설거지 안 합니다.

4년 차 엄마의 엄마타이틀 벗기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것들 있잖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아주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 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라는 단편소설의 한 구절이다. 실연당한 친구에게 건네는 차가운 위로의 말이다. 어느 날 대뜸 저 구절이 생각났다. 실연당한 사람처럼 세상만사 으아아악다죽어라를 외치고 싶은 날이었다. 거창한 일이 아닌 내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 기울일만한 일을 하고 싶어 졌다.




엄마라는 게 싫진 않지만 엄마 말고 다른 나를 찾고 싶다.


 지난 9월 첫아이가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하고 난 엄마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 한 일은 질끈 묶어 다니던 머리를 짧게 잘라낸 일이다. 지난 3년간 몸에 배어있는 아기 젖내를 씻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머리카락 좀 잘라냈다고 들었던 해방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난 여전히 엄마이고 그런 삶을 계속해나갔으니까.




 그래서 시작한 일이 글쓰기였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종이에 무턱대고 적어 내려갔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이 글로 쉽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냥 계속했다.

 몇 편의 글을 끄적거리다 보니 품고 있기 싫어졌다. 사실 나는 관종 중에 가장 악질이라는 내성적인 관종이다. 관심받기 싫지만 관심받고 싶었다. 이런저런 플랫폼들을 기웃거리다 브런치를 발견했다.

 여타 다른 플랫폼과는 다른 브런치만의 특색과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작가 신청을 호기롭게 했다. 초심자의 객기를 부렸다. 투박한 글과 그림이지만 가장 '나'스러운 에세이를 세편 보냈다.




4일의 기다림 : 나는 처음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무턱대고 작가 신청을 해두고 나서 다른 작가 신청 후기를 찾아봤다. 내가 뭘 한 거지란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내가 진짜 글 같지도 않은 멍멍거림을 보냈구나 싶었다. 아뿔싸 거리면서 보낸 글을 몇 번 수정했다. 수정해봐야 멍멍거림이 사람 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3-4일이 지나도 브런치 측에서는 답변이 없었다. 반포기 상태로 눌어붙은 호떡마냥 있던 차에 작가가 되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나는 원래 불량했지만 더 불량한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브런치에서 작가가 되었다. 그러자 설거지가 하기 싫어졌다.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매일매일 억지로 해오던 일이 설거지다. 그래 난 설거지가 싫다. 앞으로도 싫을 것이다.

 설거지뿐만이 아니다. 저녁 식탁에 반찬 가짓수가 좀 줄었다. 하루 두 번 하던 청소를 한 번만 한다. 불량한 엄마가 되었지만 나 자신을 찾은 기분이다.





 작가의 서랍 속에 있던 모든 글을 발행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첫 에세이를 끄적일 준비를 한다. 시작이다.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설거지가 하기 싫은 나 자신을 찾았다는 점.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 기울이려 시작한 글쓰기가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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