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에게 1

조직개편 논란에 대하여

by 화상 바오로

요즘 우리 사회나 우리 직장의 갈등 양상을 보면, 쟁점을 명확히 한 뒤 논리를 갖추어 충돌하고 또 타협점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덴터티'(=way of life)를 부각시켜 접점 없는 싸움만을 벌이는 것이 눈에 띕니다. '추'와 '윤'의 갈등이 대표적이죠. 삶은, 혹은 살면서 맞이하는 여러 갈등은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서술되어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모호한 언어에 휩싸여 감정적 충돌로 사람들을 내몹니다. 종교적 갈등이나, 인종갈등, 남녀 갈등 등 아이덴터티에 무게를 둔 아젠다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리고 권력은 항상 모호한 언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데, 그 결과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권력투쟁 과정에서 소모되고 버려집니다.


최근 우리 회사 조직개편 논의를 보면 두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하나는 A 부문과 非A 부문 간 구분의 심화이고, 또 하나는 근거 없는 주장에서 싹튼 A 부문에 대한 혐오/부러움 또는 우월감입니다. A 부문과 非A 부문은 이제 마치 유신론과 무신론처럼 선명하게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자신이 속한 진영만큼 명확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사원 게시판을 보면 누구는 A 부문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축소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주장의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글 쓴 이들이 전문자료나 통계를 찾아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스스로의 아이덴터티를 확인하는 표현에 다름 아니며, 타인에 대한 혐오/부러움 또는 우월감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팀원들은 조직개편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발언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ex. "제가 B 프로젝트를 담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A 부문만이 아니라, 한 발 물러나 조직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ex. "조직개편을 이렇게 한다면 전사적 목표 달성에 도움이 (안)됩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표현을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십시오. 그 외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편, 요 며칠 사이 정치권에서 '꿀 빤다'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독재의 꿀을 빨았다거나 586 꿀을 빨았다는 발언들이 그것들입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두 가지 표현에서 공통되는 점이 있다는 것을 금새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어딘가엔 꿀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누군가는 그 꿀을 빨고 있다는 것이죠. 아마도 그 '어딘가'는 권력일 테고, '빠는 이'는 권력을 손에 넣은 이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꿀은 어떤가요? 꿀 자체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빨지 못하는) 꿀을 빨고 있는 상대방이 밉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꿀은 인간의 생리나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인간사회에 살면서 꿀을 욕하기는 힘듭니다. 꿀이 없으면 벌과 나비도 없기 때문입니다. 꿀을 먹지 않는, 금욕 수행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세상을 꾸려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직관리 측면에서의 꿀은 '인센티브'와 유사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조직관리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인센티브는 역시 승진(넓게 보면 인사)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에서 트러블이 생기는 지점은 어떤 식이라도 결국 인사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조직 구성원 간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 있는 조직개편에 대하여 특정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처해있는 인사와 관련된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순수하게 논리적인 논거를 펼쳐내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보지 않는 타인의 시선에서마저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승진이라는 인센티브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승진 때문이 아니야'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말에서 취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지만, 욕망이 결여되어 있는 논리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위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특히 이번 조직개편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언어 중 하나가 바로 '전문성'입니다. 분열의 언어이자, 당연함의 가면을 쓴 불성실한 언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번거로운 일은 하고 싶지 않아'라고 불만을 얘기한다면(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죠), 이는 조직관리 차원에서 다루기가 수월합니다. 번거로운 일의 많고 적음은 체크하기가 쉽고, 문제가 발견되면 추후 수정도 쉽습니다. 그러나 '전문성'이란 단어는 점검하기가 곤란한 아이덴터티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전문성'이란 단어가 가지는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비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문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승진 대신 전문가로서의 근무를 보장하는 커리어 트랙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들 잘 알겠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를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폐기되었죠. 이는 마치 '모 선배는/후배는/동기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데 월급을 받아간다'라고 비판하면서 직무급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처럼 날 선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한 개인의 주장은 대부분 욕망을 감추고 등장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자신의 욕망에 대하여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는 A 부문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시다. (물론 속으로는 '나만'이라고 속삭일 수는 있겠죠) 그리고 '우리 회사에는 A 부문 전문성이 필요합니다'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하지 맙시다. 개인의 욕망은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명을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설명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후자와 같은 발언에 대하여는 반박할 수 있는 논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무엇보다 이를 괘씸하게 생각하는 수백 명의 타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자처럼 얘기하려면, 수백 명을 상대로 논리 싸움을 하거나 사내 정치를 해서라도 맞설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은 이미 고수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협지에서 많이들 보아 왔겠지만 내가 고수를 몰라보고 괜히 싸움을 걸다가 덧없이 한 칼에 죽는 상황이 문제가 되지, 고수가 나를 몰라본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수는 고수를 알아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우리 조직에는 A 부문 전문성이 필요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욕망에 대하여 솔직해지자는 얘기가 욕망이 이끄는 대로 권력을 사유화해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과거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 하여 이제야 비로소 얻은 권력으로 현재를, 더 나아가 일체의 과거를 재단하려는 모습은 대단히 잘못된/비뚤어진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정치꾼들의 '전공'입니다. 그러나 그릇된 욕망의 발현은 586 꿀이나 독재 꿀을 얘기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모습, 매일매일의 업무가 행해지는 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 그리고 여기입니다. 자칫 과거에 매몰될 수도 있는, 스스로의 경험에만 기초한 사리판단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에게 스스로를 기울여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이 배신당한 시간에 시계를 멈춰버린 방에 갇혀 사는 '위대한 유산'의 미스 하비샴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하이에크는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표현을 차용한 바 있는데, 지금 상황에 참 잘 들어맞습니다: What has always made the state a hell on earth has been precisely that man has tried to make it heaven. 우리 모두 욕망에 대해 솔직하되, 나만의 천국을 구축하려 들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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