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선배는 식성이 좋다. 나는 J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 잘 먹는 것을 많이 먹는 것과 구별하지 못했다. 내게 잘 먹는 것은 한창 클 때 끼니마다 밥 두 공기씩 비워내는 나를 보시고 '아이구, 우리 손주 참 잘 먹네~' 하며 머리를 쓰담쓰담 하시던 할머니의 기특해하는 눈빛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머리가 꽤 굵어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고교시절 성악을 전공하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우람한 덩치는 이탈리아의 천재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띠를 연상시켜 나를 비롯한 동기생들은 그를 '밥'바로띠라고 부르곤 하였다. 그는 튼실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배에서 소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늘 엄청난 식사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경험상 잘 먹는 것은 평균을 상회하는 식사량을 보이는 것과 같은 의미였고, 잘 먹는 사람은 밥바로띠와 같은 몸매를 지닌 사람이었다. J 선배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J 선배는 참 잘 먹는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잘 먹어야 할 것 같은 (소주 친구) 삼겹살과 (소주 천적) 대구탕은 물론이거니와 뜨거운 훠궈에 곁들이는 바이주, 바이주는 맑다며 바이주만큼 고고한 백합 국물도 사랑하고, 레드와인과 잘 어울리는 뉴욕 스타일의 두툼한 립아이 스테이크도 즐기되, 다음 날엔 적당히 숙성된 회로 고깃기름으로 코팅된 위를 닦아낼 줄 아는 센스도 지닌 분이다. (물론 소주로 위 소독을 실시하면서 말이다) 하여 J 선배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나 또한 흐뭇해질 때가 많다. 불판에서 피어오르는 미세먼지로 뻑뻑해진 목구멍의 윤활작용을 위해 솜씨 좋게 손목을 젖혀 소주를 입속으로 털어넣을 때 입가에 피어오르는 미소는 싱그럽게 느껴질 정도이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연신 닦아내며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들이키면서 "커어~ 이제 좀 살 것 같네"를 연발할 땐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먹는 인심도 좋다. 다 같이 둘러앉아 낙지볶음과 해물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다 아무래도 조금 아쉽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모두가 예산을 생각하며 주춤거릴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석쇠불고기나 족발을 주문하는 그의 호방한 기세는 과연 쾌남아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의미로든 내가 잘 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로 인해 J 선배와 나의 대화는 늘 '먹을 게 없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화상아, 오늘 저녁 뭐하냐? 요즘 좀 뜸했었지? 애들 한 번 모아봐라." 요즘 뜸했을 리가. "어우, 지난주 금요일 포장마차까지 가셔서 국수 드셨잖아요. 저는 라면 먹었구요..." 여기서 물러나면 J 선배가 아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조금만 먹지." 이 문장에서 가장 의미없는 단어는 '조금만'이다.
오후 4시. 참신한 인사를 모시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다. 급박한 1대 1 맞춤 리크루팅이 실패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조국은 그대를 원한다'며 젊은이들의 입대를 호소해 보았지만, 역시나 입대에 응한 인사들은 저번에도 자리를 함께 한 상비군 4명이다.
"저까지 합해 5명 모였는데, 요 앞 굴국밥집 가시면 어떨까요? 그 집 전이랑 무침이 괜찮던데요." "에이.. 누가 거기 가쟤? 거기 먹을 거나 있대냐?"
긴급 상비군 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을 가지고 다시 한번 J 선배의 의사 타진에 나섰다. "아, 저녁에 좀 쌀쌀할 것 같은데 해물탕 드실래요? 아니면 보신 겸 민어탕은 어떠세요?" "엊저녁 국물 있는 음식 먹었는데.. 난 민어탕은 느끼해서 싫더라. 뭐 먹을만한 거 없냐?"
번뇌는 나의 몫이나, 나의 뇌는 음식 번뇌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 하여 이쯤 되면 검열을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던지게 된다. "걍 삼겹살 드실래요? 고기 먹은 지 좀 된 것 같은데요..." "야... 이 날씨에 삼겹살은 무슨... 옷에 냄새 다 배겠구먼. 이 근처에는 먹을 게 없나 본데, 복이나 먹으러 가자."
첨부터 복 먹으러 가자고 얘기하든가... 나는 신물처럼 넘어오는 볼멘소리를 삼키며 J 선배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역시 J 선배의 선택은 탁월했다. 이따금씩 가게 창문까지 도달한 굵은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와사비 간장에 찍은 바삭한 복어튀김을 베어 문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황홀했기 때문이다. 튀김기름이 느끼하게 느껴질 즈음 복불고기가 맵삭한 냄새를 풍기며 불판에서 익어갔고, 복불고기 매운 양념 덕에 탈 것만 같은 입천장을 차가운 소주로 식힐 땐 먹는 즐거움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럴 땐 또다시 하하호호 즐겁고, 마지막으로 복지리로 속을 든든하게 채운 나는 천하무적이 되어 그날 또한 J 선배를 모시고 포장마차까지 갔다. 그곳은 시지프스가 하루 종일 돌을 굴려 도달한 산꼭대기이다.
이튿날 아침. "야... 어제 많이 마셨지? 점심에 해장이나 하러 갈까?" "네... 머리가 좀 아프네요. 콩나물 해장국집 어떠세요? 며칠 전 신장개업 전단 돌리던데... 거기 한 번 가 보실래요?" "콩나물 해장국? 그 집 뭐 먹을 거나 있대냐?"
아... 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