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화상 바오로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전무님을 모시고 일한 경험이 없습니다. 업무능력에 관하여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 점은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제가 전무님을 추억하는 이런 귀한 자리에 어떻게 초청을 받게 되었나 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담당하는 A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이사회 마친 후 전무님으로부터 소고기 얻어먹었다고 인사팀장 앞에서 촐싹대며 자랑을 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벌리기에 바빴던 저는, 마침 눈에 불을 켜고 송별사 할 이를 찾고 있던 인사팀장에게는 절로 굴러온 떡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제가 전무님 성대모사를 좀 하는데,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하나만 짧게 하겠습니다. (1분 넘어가면 인사부에서 통편집을 하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저, 전무님, 간만에 좀 좋은 거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의기양양)
"그래요... 자아, 제목이 S사 앞 해외투자자금 3천억 원 지원..."
"네! 마케팅 열심히 해서 신규로 하나 물고 왔습니다!"(눈치 보며 의기양양)
"그래요... 그런데 S사 앞 익스포져가 너무 급격하게 증가해서... 이게 좀 그래요..."
"네..."(어, 이건 아닌데?!)
"아니 아니,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고~"
"네... 담당 RM이랑 얘기해보고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좀 침울)
"아니, 뭘 어떻게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거죠?"
"아, 네... 그... 익스포져 관리를 꼼꼼히 해 나가겠다 뭐 그런 말씀입니다..."(많이 침울)
"그래요... 부서 실적도 달성해야 하니까... 그래요 그럼~"
전무님, 신규로 3천억 원 하는 거 쉽지 않습니다. 소고기 한 번 더 얻어먹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보고 드렸는데, "그래요 그럼~"은 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리고 A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으니까 소고기 한 번 더 사주세요!
이왕 말씀드린 김에 업무제안도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에 있어 전무님의 경험과 기억은 영국에게 대영박물관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저는 'AI 전무님' 제작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AI 전무님을 활용하여 이사회에서 전무님의 목소리를 영원히 듣고 싶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래요 그럼~"처럼 실무자에게 위안이 되는 말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무님.
--
* 파란색 글씨는 성대모사 부분
퇴임하시는 전무님은 업무능력 짱, 게다가 꼼꼼함과 기억력마저 짱인 분이시다. (애처가로 소문난 분이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시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이 분이 로봇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분 앞에서 '카더라' 또는 '그랬던 것 같은데요' 정도로 보고하다가 깨진 직원이 한 두 명 아니다. 그래서 처음 듣는 사람은 '그래요 그럼~'이 매우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최대의 칭찬에 가까운 발언이다.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 회사 임원 송별사를 거의 연달아하게 된 영광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인사팀장을 동기로 둔 까닭인데, 동기이자 형인 인사팀장은 출연료도 지급하지 않고 급하면 (급행료를 지급하기는커녕) 매번 나를 공짜로 갖다 쓴다. 엊그제 술 약속도 본인이 바쁘다면서 펑크를 냈다. 이쯤 되면 연예인 출연료 떼먹는 기획사보다 악질이라고 하겠다. 직장 생활하면서 인사팀장 엿 먹이는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