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며칠 전 G 부서에서 보내온 메일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메일 내용은 간단합니다. G 부서에서 관련 규정을 개정하기로 결정하여, 더 이상 우리 부서에서 매 분기마다 G 부서 앞으로 보내던 예외취급 공문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 자체는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하여 우리 팀 담당자도 기쁜 얼굴로 제게 이를 보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몇 달 전, 조금 특이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G 부서와 우리 부서를 포함한 몇몇 부서의 담당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그때에도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은 G 부서가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직원들도 제 의견에 동감하였습니다. 그러나 G 부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규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게다가 규정을 개정하는 대신 우리 부서에서 예외취급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언제까지 예외로 취급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G 부서 직원들은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의가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 부서는 G 부서에게 예외취급 요청 공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G 부서에서 먼저 규정을 개정하겠노라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저는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가능성은 G 부서 내부에서 ‘기획 수요’(즉, 내부 동인)가 발생하여 이 참에 규정을 개정하자고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고, 또 하나의 가능성은 외부 지적에 대응하는 차원(즉, 외부 동인)에서 어쩔 수 없이 규정 개정에 나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자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어, 뭐...”로 시작한 우리 팀원의 설명은, 아니나 다를까, 후자였습니다. 외부 감사인이 예외취급 공문을 들여다본 뒤, 규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냈다는 것입니다.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당장 문제 될 것이 없으면 굳이 문제 삼지 않는 업무처리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G 부서의 담당 직원은 한 때(지금도 그런가요?) 조직에서 촉망받던 직원이어서 그랬고, 이 메일을 받은 이들이 (갈참들이 아닌) 젊은 우리 팀원들이어서 그랬습니다. 별 것 아닌 해프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작은 것이 모든 것을 망치는 실오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 위, 위, 위, 위, 위, 위, 매일, 정확한 간격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 모든 회전엔 그렇지 빈틈이 없었겠지?... 처음엔 작은 모서리 하나였겠지. 소매에서 튀어나온 실밥 한 가닥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라. 뭔가가 그를 낚아챘겠지. 시작은 그렇게 작은 것이었을 거야. 그렇게 말려들었겠지... 어, 할 새가 있었을까? 어, 할 새도 없었을까?... 어, 만으로는 부족해서 어어어어어 그렇게 한동안 이어지고도 부족할 만큼, 그건 긴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길고 길어 누구의 생각보다도 긴, 이윽고 그가 그 틈을 다 통과했을 때 그건 더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거야.”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위, 위, 위, 위, 위, 위, 위 소리를 내는 건 공장의 톱니바퀴들 뿐만이 아닙니다. 책상 위 컴퓨터는 웅, 웅, 웅, 웅, 웅, 웅 소리를 내고, 회사 건물 밖의 냉각팬은 왕, 왕, 왕, 왕, 왕, 왕 울음을 토해냅니다. 똑똑한 우리 직원들의 두뇌회전 소리도 들립니다. 샥, 샥, 샥, 샥, 샥, 샥. 그런 똑똑한 이들이 직장생활에 익숙해지면 다 함께 위(we), 위(we), 위(we), 위(we), 위(we), 위(we), 위(we) 합창을 합니다. 우리(we)만 존재하며 나(I)의 목소리는 희미한, 그레고리 성가와 같은 단일 성부의 합창입니다. 내가 없는 우리들의 톱니바퀴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소리를 내는 존재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이 톱니바퀴에 대해서든, 실밥 한 가닥에 대해서든 죽음을 목도하는 것에 상응하는 예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최근 우리 팀에 전입한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건 외에도 우리 부서가 G 부서 앞 예외 요청 공문을 보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대한 충당금 적립과 관련된 것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특수 금융이라서 충당금 적립시 개별 평가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개별 평가는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하여 이 값을 금융지원액과 비교하여 그 차액을 충당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구조상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이 금융지원액을 상회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러니, 부실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개별 평가 방식으로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대한 충당금을 적립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집합 평가를 해야 하는데, 집합 평가는 예외취급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그때도 G 부서를 포함한 여러 부서가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속적으로 예외취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G 부서는 규정 개정은 곤란하니 현업 부서가 예외취급 요청 공문을 보내달라는 식으로 버텼고, 그 결과 지금까지 6년째 예외취급 요청 공문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런 업무관행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분명 외부 감사인이 뭐라고 하거나, 또는 이 업무에 해박한 이가 임원이 되어 시정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것입니다. 새로운 직원들은 이런 식의 예외취급을 분명 ‘직장 업무를 배워가는 것’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부서 간 책임전가의 결과를 ‘직장 논리’로 해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그럴 위치에 있지 않으니 부서 간 다툼에 먼저 나서진 않겠지만, 여러분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좋게 말하면 부서 간 협상의 산물 또는 리스크 안분의 결과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책임전가의 앙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 제1법칙에서 ‘모든 물체는 그것에 가해진 힘에 의하여 그 상태가 변화되지 않는 한 정지 또는 일직선상의 운동을 계속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관성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법칙의 무서움은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즉 관성계의 상대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정지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톱니바퀴 원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계기로 톱니바퀴가 탁 하고 멈추어 설 때 우리는 그제야 상대성의 원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심한 뱃멀미를 앓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죠.
이런 뱃멀미를 느끼게 되는 계기는 다양합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때가 될 수도 있고, 아랫 직원의 대찬 도전을 받는 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주인공의 처지에 스스로를 대입해 보다 갑자기 가슴이 일렁이는 때일 수도 있고, 출근길에 매일 보던 한강물이 어제 보았던 그 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차갑게 느껴지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흔하지 않은 낯선 세상의 문이 열립니다. 혹시 압니까? 모모만 볼 수 있었던 회색의 신사들을 볼 수 있을지? 기회가 마련되면 그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마냥 톱니바퀴에 매달리지 말고.
계속해보겠습니다, 이번엔 짧은 나의 얘기를.
저는 아주 가끔씩 담배를 피웁니다. 10대부터 20대까지 탐닉했던, 낙엽 태우는 냄새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담뱃잎 타는 냄새가 그립기도 하고, 검지와 중지의 뼈 마디 사이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나기처럼, 담배 냄새는 타인의 냄새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자주 피우다 보면 나의 냄새가 되어버려 피우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간만에 폐 속이 한참 동안의 한숨을 지펴 피워낸 하얀 연기로 가득 차면 저는 거칠게 콜록거리는데, 기침 사이사이 침에 배어든 달짝지근하고도 쓴 맛이 느껴질 즈음 찾아오는, 늘 마셔왔기 때문에 이제는 각성보다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커피를 마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익숙하고도 낯선, 그러니까 불안정한 불안감을 저는 반깁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위, 위, 위, 위, 위, 위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저는 급히 담배를 찾아 그 끝을 내 숨으로 붉게 물들이며 짜, 짜, 짜, 짜, 짜, 짜 하며 응수합니다.
가끔씩 제 목이 많이 쉰 날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날은 아마도 저의 톱니바퀴가 멈추어 선 날이었을 텐데, 제 목이 쉬어버린 것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나 나름의 방식으로 관성의 법칙에 도전한 대가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알아주면 고맙겠습니다. 나 또한 가끔씩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씩 많이 고민하는 여러분의 모습도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