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쭈시니 답하겠습니다. 사실 의외로 민감한 이슈이기도 하고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상당수이기 때문에(그러니 난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간 묻는 말에만 답해 왔습니다. 그러나 앞장서서 의견을 밝히지 않았을 따름이지, 제 생각을 밝힐 것을 요청받은 경우에는 항상 분명한 입장을 얘기해 왔습니다.
... 네, 저는 그 얘기들이 다 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를 말씀드리기 전에 개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프린스턴 대학 철학과 프랑크푸르트 교수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개소리’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기가 좀 뭣하니, 이를 ‘BS’로 대체하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러시아어 과외 교사인 파니아 파스칼은 편도선 수술을 하고 난 후 그에게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치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에요." 그러자 비트겐슈타인은 매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철학자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그가 왜 이와 같은 사소한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혐오의 대상은 사태의 진상에 대한 무관심(=언어의 부정확한 사용)이며, 진실을 교묘하게(혹은 예술적으로) 회피하는 발언, 즉 BS였던 것입니다. BS가 혐오의 대상인 것은 BS의 동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BS의 가장 큰 동기는 헛소리를 지껄임으로써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쉽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듯 보입니다.)
작가는 요즘과 같이 회의주의가 만연한 시대,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잘 알지 못하는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성실하게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주관성에만 의존하는) ‘진정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BS라고 하면서 말을 맺었습니다. 노철학자의 마지막 일침은 매서웠습니다. 저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호소하던 이들의 얘기들을 떠올렸습니다 - 네, 그 얘기들의 대부분은 BS란 것입니다.
... 제가 왜 그 얘기들을 BS라고 생각하는지는, 위 BS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명확합니다. 앞서 BS의 가장 큰 동기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선배님이 언급하신 그 얘기들이야말로 현재의 업무관행에 대하여 개선의견이 제기될 때마다 그러한 개선 의지를 꺾기 위한 논리로 작동해왔기 때문입니다. 보다 찬찬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BS는 다음과 같습니다: “PF(project finance)는 너무나도 독특해서 일반화하여 말하기 어렵습니다.”
독특하다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르다는 것은 비교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니, 그 비교의 대상은 아마 CF(corporate finance) 일 것입니다. BS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문외한에게 매우 고상하게 들리는 PF의 특징 몇 개를 들어 CF와는 특별하게 다르다고 말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적 차이에 더하여 산업별 차이, 지역별 차이 등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엄숙한 얼굴로, 혹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PF는 케바케(case by case)’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분명 양자 간 업무 처리 프로세스상 차이가 존재하지만, ‘너무나도 독특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PF는 ‘단일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차입금 상환의 재원과 채권보전장치로 하는 금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CF에서도 (다양한 개별 사업들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의) 현금흐름을 중요하게 보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금융계에 자리 잡은 관행입니다. 그러므로 CF가 PF에 비해 단순하다고 치부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CF 취급 시 매우 게으른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특수한 금융기법이라도 금융의 기본 속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통분모의 크기는 생각보다 꽤 큽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의 차이는 사과와 딸기의 차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 기술적으로 서로 다른 면이 꽤 존재하기 때문에, 사과와 딸기를 한 바구니에 담기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독특하다’고 얘기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이 이 독특한(=어려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고 뽐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습니다.) 아, 이렇게 거들먹거리고 싶어하는 이들을 그나마 낫습니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떠벌리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독특하다는 BS보다 더 심각한 BS는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BS입니다. 이는 후자가 ‘왜 PF에 대하여서는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하지 않느냐’(혹은 왜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 노력하지 않느냐)와 같은 질문에 대한 변명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PF 책마다 반복되는 핵심 내용들이 존재합니다. 또, 감리 담당 부서에서 발간한 PF 가이드라인 또한 이들 PF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과 유사합니다. 이처럼 주위에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참 민망하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날카롭게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면, 이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발언을 거둬들이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핑계로 댑니다. 다 좋은데, 그렇게 하려면 조직과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현실적인 제약사항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에게서 도전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된 BS를 통해 확보된 고착화된 업무관행은 그들이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조직으로서 우리 회사의 경쟁력은 결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습니다’ BS는 ‘너무나도 독특해서’보다 훨씬 고약한 BS입니다.
두 번째 BS는 다음과 같습니다: “PF도 모르는데, PF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나요?”
매우 논리 정연한 얘기 같습니다 - 알파벳도 안 배웠는데, 영어 작문은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그러나 PF와 PF 구조조정은 알파벳과 영어 작문 간의 선형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BS의 약점입니다. 이 약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CF는 해봤으니까, CF 구조조정은 잘할 수 있겠네요?”
대우조선 구조조정이나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경험해 본 이들은 아마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구조조정의 어려움은 계약구조가 복잡하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잡한 내용들은 회계법인/법무법인 등 자문사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금융인들의 일은 정리된 정보를 바탕으로 채권 회수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구조조정 업무의 실질적인 어려움은 관련 당사자의 수에 비례합니다. 당사자가 많다는 것은 거부권을 지닌 이들이 많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예컨대 구조조정 결과에 따라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규모 구조조정은 대부분 정치적 이슈로 비화합니다. 정치적인 이슈가 되면, 그 건은 소위 '전국구'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관련 당사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는 구조조정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게다가, '구조조정의 어려움'과 '채권 회수율의 극대화'가 반드시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에 비해 PF 구조조정의 당사자는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PF 자체가 단일 자산에 대한 금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외 자산에 대한 구조조정은 위에서 언급한 실업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피고용인들은 우리 국민도 아니며, 그 수도 매우 적습니다.)
나아가 영국의 파산법은 PF 자산에 대하여 administrative receiver를 선임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Administrative receivership은 자신을 선임한 선순위 담보채권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법정관리인과 유사한 administrator는 모든 채권자의 이익을 공정하게(fairly & equitably)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PF는 일반적인 CF 대비 매우 강력한 구조조정 수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동성이 풍부하며 법과 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는 시장 매각도 상대적으로 손쉽게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Chapter 11이나, 영국의 Scheme 등과 같은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 방안을 논외로 하고) 이 receivership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양허성이 높은 채무재조정을 하거나, 아니면 속절없이 망하는 거죠. 그 과정이 고통스럽긴 합니다만, 큰 줄기의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해당 업무 담당자가 느끼는 고통은 그래도 참을만한 것이 됩니다. 예컨대, 전쟁 중인 예맨 소재 PF 사업의 구조조정을 뭘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PF 구조조정의 업무의 어려움은 ‘PF’가 아니라 ‘구조조정’에 있습니다. BS를 하는 이들도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PF 구조조정을 누가 하고 싶어 하겠냐는 얘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이야말로 기존 BS를 새로운 BS로 무마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취미로 하는 것은 아닐 텐데,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인가요? 물론 구성원들의 욕망을 읽고, 다독이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BS가 일상인 이들은 조직 구성원들 모두가 PF 구조조정 업무를 맡기 싫어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후 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합니다. 그들은 향후 이와 관련된 논의가 개시되면, '그럼 자네가 해보시든가(난 빠질테야)' 라고 손사래 치며 자리를 피합니다.
... 선배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선배님의 개혁의지를 높이 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십시오. BS에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선배님, BS는 조직 전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악입니다. 조직을 숙주로 삼고 있는 진짜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단칼에 내려칠 것은 단칼에 내려치시고, 시가지 전투처럼 거점을 확보해나가며 전진해야 할 것은 철저하게 하나씩 처리하십시오. 일을 시작하시려면 철저하게 대비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선배님도 얼마 가지 못해 저들의 포로가 될 운명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