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사 1

꼬라지오 아반띠

by 화상 바오로

안녕하십니까? 양아들입니다. 당신은 "그런 아들 둔 적 없는데?"라고 하실 순 있겠지만, 어쨌거나 저는 조직에서 양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별명을 갖게 된 것은 당신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매각방식 해외 PF 구조조정 건이었던 S국 J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J 프로젝트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글로벌 구조조정의 백미, 그것도 우리 조직이 주도하는 딜 클로징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당신을 정의하는 단어는 아마도 '전문성'일 것입니다. J 프로젝트를 마무리짓자마자 새롭게 골칫거리로 부상한 이집트 E 프로젝트는, 리더십 없이 조각조각 갈라진 사업주들과 이들을 상대로 버티는 EPC 대기업의 힘겨루기 속에서 하마터면 프로젝트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고철 덩어리로 팔려나갈 수 있는 상황 속에 놓여있었습니다. 코너에 몰린 닥터 하이칼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대주단에게 고함을 치는 상황에서도 당신은 평온하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직하고 있는 사진에는 대책 마련을 위해 대주단 관계자들 모두가 당신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 웃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외국인들입니다. 이는 당신이, 당신 주위에 모인 이들의 최대공약수인 PF 전문성과 최소공배수인 넉넉한 웃음으로 모두를 아우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사한 상황은 마치 맡겨놓은 돈을 내놓으라는 것처럼 생떼는 쓰는 U국 석유부 장관과의 미팅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장관이 "Mr. Yang, we need your institution's support. We need this money to... to underpin this country's economic development"라고 강변할 때, 당신은 당황하지 않고 "Hmm... I understand, but I have to say, um, you know that in this what the* difficult financial environment..."로 응수하셨습니다. 오호라... 답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한 저는 O국 P 프로젝트 담당자와의 면담 시 당신의 전략을 써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사업주의 핏발 선 눈을 견디다 못해 저는 웃음기를 싹 거두어들이고, 재미없고 융통성 없는 은행원의 자세로 복귀하고 말았습니다.

* 이 분은 영어로 대화하는 도중 'what the'를 자주 사용하셔서, 내가 식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Y님, 조금 전 약 3분 30초 정도 말씀하셨는데, 'what the'를 정확히 서른네 번 쓰셨습니다"라고 목숨 걸고 직언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은 대인배였음에 틀림없다. 이를 받아들여 이후로는 'what the'의 사용을 현저하게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제가 가장 사랑한 당신의 전문성은 정책대응 능력이었습니다. 직원들이 "Y님, 기재부로부터 갑자기 내일 아침까지 저가수주 방지대책 초안 작성 요청이 왔습니다"라고 사색이 되어 당신 방에 뛰어 들어가면, 당신은 "거 2015년 해외건설 조선업 부실방지를 위한 정책금융기관 역할 강화 방안에 대부분 나와있어"라고 말씀하셨고, "아이고 Y님, 금융위 요청으로 업계 의견 수렴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합니다"하고 우는 소리를 내면, "그래? 그럼 내가 해건협 C 처장한테 전화 한 번 해줄까?"라고 도와주셨습니다. 지시는 명확하고, 가이드는 든든했습니다. 다만 제가 "이 많은 자료를 언제 누가 다 작성해야 할지 걱정입니다"라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씀드리면, "그거 니가 해야지, 누가 하냐?"라며 항상 쾌활하게 답하셨습니다. 이는 제가 항상 쾌활할 수만은 없었던 까닭입니다.

한편, 진정 고수가 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가 친화력입니다. 당신께서 이전에 "야, 솔직히 말하면 너 결혼할 때, 나 너한테 축의금 안 했다"라고 하셨고, 제가 버릇없게도 "아, 괜찮습니다. 저도 당시 당신을 잘 몰랐습니다"라고 했을 때 당신은 정말 큰 목소리로 껄껄 웃으셨습니다. 저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이 너털웃음이야말로 당신 친화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웃으실 때 초승달 모양으로 변하는 눈도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보고를 받으실 때엔 상급자의 자세가 아니라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동료의 느낌으로 대화를 주고받으셨습니다. 소파 끝에 걸터앉아 같이 한숨을 내쉬고, 보고자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시는 말씀도 간간이 내뱉으셨습니다. 이로서 확신감이 생긴 보고자들은 보다 또렷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Y님. 업무능력이 출중한 선배들이 하나둘씩 조직을 떠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의 한켠에는 언제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움으로 아쉬움을 보듬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퇴임하시는 당신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다독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는 조금씩 나이가 드는지라 선배님 한 분 한 분은 직장 상사라기보다는 제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나무와 같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께서 퇴임하시면 저희 본부 직원들은 동네 어귀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학기가 바뀌어 새로운 선생님을 맞는 초등학생처럼, 당신의 바통을 이어받으신 S님께서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한 번 흔들린 마음의 여진은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박경리 작가가 썼듯, 졸업식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마냥 학교에 남아있고 싶어 우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은 항상 걷는 자만의 것이며, 걷는 동안만의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Y님, 나아가시는 길에 항상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꼬라지오 아반띠! 이 말은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후배 화상 바오로 드림.


직장 생활을 하며 누군가의 송별사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퇴임할 때 내게 이런 송별사를 낭독하는 후배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