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승인서를 작성할 때 채권보전장치에 대하여 기술하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승인서에 PF방식에 의한 채권보전이 이루어진다는 정도만을 간략히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업무관행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여신관리/기업 구조조정 업무의 생소함입니다. 여신취급 시 담보를 취득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차주의 채무불이행시 담보권을 행사하여 채권을 회수하는 것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타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에 대하여 강제로 집행하는 법적 절차를 포함하게 됩니다. 이는 담보의 ‘공격적인 ‘ 성격1)에 해당합니다. 국내에서 이 업무와 관련 있는 가장 중요한 법적 근거는 통합도산법2)인데, 대부분은 직원들은 학창 시절 민·상법 정도만 수강하지 통합 도산법까지 수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생소한 업무일 것입니다.
나아가 기업 구조조정 업무는 기본적으로 적대 의지를 가진 상대방과의 법적, 감정적, 때로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업무입니다.3) 이는 구조조정 초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저강도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기피대상 업무가 됩니다. 과거 수출입은행은 기업 구조조정시 수출채권에 대한 별제권4)을 바탕으로 대형 기업 구조조정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였고5), 수신기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주거래은행이 될 수 없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는 문화가 존재했습니다.6)모 선배는 한 발 더 나아가 ‘수출입은행은 그런 거 하는 곳이 아니야’라고 얘기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 업무는 기업 신용평가 및 여신 업무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수출입은행도 IMF 사태 및 대우조선 등 대형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 구조조정 업무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었고, 과거 일개 부서에 불과했던 ‘특수관리여신실’이 현재 ‘기업구조조정단’으로 확대 개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무는 여전히 직원들 사이에서 ‘어려운 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 또한 수출입은행의 여신 취급 특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수출입은행 여신의 대부분은 신용대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해서, 시중은행처럼 예금과 상계시키거나 부동산 담보 등을 강제집행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재고자산 양도담보 설정을 통하여 일부 채권 회수율을 제고한 경험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라고 보기 힘듭니다. 해서, 차주가 부도를 내는 경우 수출입은행은 많은 경우 빈껍데기에 불과한 차주를 상대로 채권회수에 나서게 됩니다.7)수출입은행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EDCF, 그리고 남북협력기금8)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세 번째는 PF 방식의 채권보전 수단의 한계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관련 규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 규정은 PF 방식의 채권보전 수단으로, 차주가 발행하거나 작성한 어음 또는 채무증서를 받고, 다음 각 호에 대하여 저당권 설정, 질권 설정, 양도계약 체결 등 채권보전장치를 취득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1. 차주의 자산(설비, 건물, 토지, 현금, 채권 등으로 장래 취득분 포함)이나 수익금
2. 거래 관련 계약에서 정한 차주 권리
3. 차주가 발행한 주식 또는 차주에 대한 사업주의 대출채권
4. 차주의 보험금 청구권
5. 사업 소재국 정부 또는 사업주의 사업 지원 보증이나 확약
6. 그밖에 채권보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
실무에서 처리해야 할 방대한 작업과 비교할 때 매우 간소하게 작성되어 있습니다. 채권보전장치 관련 규정 외 다른 규정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러한 간소함은 서로 다른 법률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업소재지국의 특성 및 PF 거래의 특수성 등을 규정으로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취득한 담보는 정규담보로 취급되지도 않습니다. 완공이 된 프로젝트의 경우 설비, 건물 및 토지 등에 대한 저당권이나 예금 질권을 정규담보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가치평가의 어려움9), 강제집행의 어려움10), 관리의 어려움11) 등의 이유로 계속 첨담보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PF 담보가 ‘공격적인 성격’으로서의 담보 성격은 크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PF 거래에서 굳이 담보는 왜 취득하는 것일까요? 다음 절에서 영국법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를 현실에서 이행하기 위해서는 담보물이 시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어야 하며, 담보물에 대한 가치도 상당 부분 확정되어 있어야 하며, 대주단이 제삼자 동의 없이 담보물에 대한 처분이 가능해야 합니다.
2) 정식 명칭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로, 회사정리법, 파산법 및 개인채무자 회생법을 통합하여 2006년 4월 1일부터 시행된 법률입니다. 한편, 기업구조조정을 보다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2023년 10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동 법은 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 ‘이 법은 기업구조조정 등에 관하여 다른 법률(「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제외한다)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 별첨 <(에피소드) 개도국 PF 프로젝트에 default가 발생하면 벌어지는 일>을 참조하세요.
4) 별제권은 파산절차에 의하지 않고 행사할 수 있습니다. 별제권의 대표적인 사례가 확정일자를 받은 주택임차 보증금, 임금채권 등이 있습니다.
6) 물론 국책은행이 아국 기업에 대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갈 경우 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도 있습니다.
7) 이러한 ‘약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수출입은행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가 바로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신기능이 없어(즉, 별도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채무자 동태파악 등을 하기 힘든 국내 여신업무와는 달리,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는 능력 있는 직원들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인프라를 따로 갖출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8) 두 경우 모두 차주가 국제법상 주권국가의 정부입니다.
9) PF는 그 자체로 매우 독특한 자산이라서, DCF(discounted cash flow) 방식을 제외한 나머지 방식으로 해당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기 매우 곤란합니다. 한편, 무비판적으로 DCF 방식을 활용할 경우, 자산의 가치는 항상 차입금의 가치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그게 PF 금융 그 자체의 정의이기도 하니까요)
10) 수출입은행의 업무 특성상 개도국 앞 지원 비중이 높은데 개도국의 경우 PF 방식의 채권보전장치를 수월하게 강제집행할 수 있는 법률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회원국에서 획득한 재판 결과를 다른 회원국에서 수용케 하는 뉴욕 협약 등을 고려해 소송 또는 중재 판결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이를 언급할 경우 대부분의 대주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시간, 비용뿐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제삼자 앞 대출금을 매각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충당금을 쌓은 후 최대 채권자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수동적으로 동의/부동의 하는 방식으로 재빨리 업무태도를 바꿀 것입니다.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국가경제의 핵심 역할을 하는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하여 대주단이 손쉽게 강제집행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11) 예컨대 DSRA 금액은 6개월마다 계속 변동됩니다. 또한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 DSRA를 차주가 운전자금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경우 fixed charge가 부인될 수도 있습니다.) Fixed charge 및 floating charge에 대한 설명은 다음 섹션 주석을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