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을 위한 想 @ 살아가는 날들 속에, 살아있는 하루
#1 뜬금없이 누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렇게 그리움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대책이 없다. 몇 날 며칠을 머리에서 맴돌고 마음 한구석에서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그립다 한들 모두가 같은 그리움일까. 그리움에도 종류가 있고, 강약이 있고, 색깔이 있다. 그것은 이유 없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조용히 자취를 감출 뿐이다.
거의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워 있어야 했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했던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지치니 몸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나 보다. 몇 년째 고생하게 만들고 있는 지병(持病)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좀 쉬어야겠다고 난리 치는 몸의 구석구석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다.
덩그러니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으면 틈을 주지 않고 찾아 든다. 아픔이 커지면 커지는 대로, 잠시 잦아들면 그런대로 순번을 정한 듯 끊이지 않고 스며 나온다. 늘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전혀 뜻밖의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꿈처럼 나타난다.
#2 차가운 생수를 몇 병이나 들이키고 누웠을 때, 가장 먼저 그리움으로 찾아온 사람이 있다. 오래전 떠났던 유럽 여행 길, 헝가리에서 민박집을 구하며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오십 대 초반의 작은 키, 그냥 어머니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사람. 옹색한 살림살이가 느껴지는 민박집에서 친구들은 불평했다.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그냥 미안해하던 그분은 아주 특별한 인연이다.
밤늦도록 길을 잃고 헤매다 몇 번을 민박집에 전화했었다. 다행히 88올림픽에 참가했다는 코치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민박집 근처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걱정되었던 아주머니는 제법 멀리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고, 우리를 보자 눈물부터 뚝뚝 떨어뜨린다. 당황스럽고도 미안할 뿐이다. 손을 꼭 잡고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해도, 좀처럼 눈물이 잦아들지 않는다. 저녁은 드셨냐고 하니, 아직 못 먹었단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물 속으로 미소가 스친다. 그 뒤로 ‘정’이란 말은 아무 때나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에 새겼다.
겨우 하루를 그 집에서 묵었을 뿐인데, 다음 날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온 아주머니는 또 눈물로 인사를 한다. 여행의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함의 의미로 모두가 사진을 찍었다. 주소도 받아 적고, 꼭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돌아오자마자 입원을 해야 했고, 여러 가지 힘겨운 일들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결국 때를 놓치고 말았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봄비가 내리던 23년 전 삼월이었다.
#3 별로 좋지 못한 기억들로만 가득했던 로마에선, 반가운 웃음을 전해준 또 다른 아주머니를 만났다. 기차역에서 표를 구하느라 분주한데, 한국 사람이냐며 말을 걸어오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반가와 한다. 주한 미군으로 군산에서 근무했단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받은 휴가로 딸과 여행 중이란다. 마치 잘 알던 고향 사람을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듯, 테르미니역에서 우리는 한 동안 난리를 피웠다.
불친절과 속임수가 몸에 밴 로마 사람들의 경이로움(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만난 로마 사람들은, 책에서 보았던 조심해야 할 사람들 그 자체였다). 카타콤에서 느꼈던 기독교인으로서 뭉클했던 감동. 영화 속의 로마 유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을 때의 황홀함. 길거리에서 호떡처럼 파는 잊지 못할 피자의 맛에 대해 짧은 시간 많이도 얘기했다.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던 것들을 그렇게 마음에 담았다.
영어에 유창한 친구가 딴에는 중간중간 끼어들며 통역을 자청했지만, 로마에서의 좋지 못한 기억들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성토하는 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통하는 데는 민족도 언어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경험으로 알았다. 기차를 타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떠나야 할 시간, 사진 한 장 주소 하나도 주고받지 못한 채 섭섭함을 나누며 헤어졌다. 평생을 살아가며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짧은 만남의 사람들이다. 가끔 그리움으로 그들이 찾아올 때면, 군산을 가보고 싶어지는 것은 바로 그 만남 때문이다.
#4 그 할머니는 작은 가게의 주인이었다. 나이는 일흔이 조금 넘었고, 하얀 백발에 작은 안경을 쓰신 것이 동화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할머니의 가게에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주머니칼을 팔았다. 흔히 스위스 칼이라 부르는 유명한 빅토리녹스의 제품부터, 온갖 종류의 크고 작은 칼들이 할머니의 상품이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오래도록 얘기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 할머니가 그랬다. 그래서 선물을 산다는 핑계로 좀 더 머물고 싶었다. 받을 사람의 이니셜을 일일이 새겨준다니 족히 30~40분은 있을 수 있었다.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동안, 삶의 느낌으로 남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쁜 찻잔에 끓여 건네주던 따뜻한 홍차 한 잔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흔적이다.
십 년 넘게 가고 싶어 안달했던 그곳. 레만호가 있는 제네바에서 또다시 레만호를 찾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준 할머니. 봄비 속으로 그곳을 등지고 떠날 때, 언젠가 다시 왔을 때 뵐 수 있도록 오라 사시라고 했다. 빙긋 웃으며 고맙다고 하시던 그분은 아직 그렇게 거기 계실까. 그렇게 돌아와 8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 번도 다시 갈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면 더욱 커지는 그리움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5 누가 뭐래도 군대에 간다는 것이 때로는 말릴 수 없는 도피가 될 때가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그때.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학교를 휴학하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그 도피의 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깊어가고 지겨울 만큼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기다림에 지치지 않기 위해 배낭을 꾸려 지리산을 찾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깊은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반갑다. 눈이 눈답게 쌓이고, 걷지 않으면 견지치 못할 만큼 추운 산속에서, 해 질 녘에 만나는 산장은 행복 그 자체다. 그해 겨울 노고단 산장이 그랬고,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그랬다. 산에서는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누구나 친구다. 같은 산에 왔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속에 늘 산을 담고 살기에 만나기 전부터 친구다.
메이지 대학 산악부원이라던 그 친구는 누군가 건네준 대선 소주 몇 잔에 금방 얼굴이 붉어졌었다. 일본과 한국의 산에 대해, 고스톱 규칙에 관해 얘기했던 것 같다. 그 이상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생생하다.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람이라도, 항상 다시 만나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산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렇다. 다만, 그 만남이 있게 해준 산과 티끌만큼의 의심도 없이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그 만남의 순간이 소중하고 그리울 뿐이다. 15년 전, 그 겨울의 지리산은 그렇게 그리움을 안고 간간이 찾아오는 친구를 만나게 했다.
#6 그립다고 아무나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치끝이 저미어 오도록 그리움이 찾아 든다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간직하고 마음에 쌓아둔 채 살아야 할 그리움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기억이 아니라 추억인 까닭이다. 머리에 남겨진 시간이 아니라, 마음에 스며있는 삶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래서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이 많은 그리움들을 위해 현재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작은 인연으로 추억될 수 있는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그리움이 쌓이도록 아주 작은 여유가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첫 번째 작은 여유가 주어지는 날. 서해의 작은 섬을 다녀오려 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려 한다. 아무 것도 눈에 걸리는 것이 없는 바다 한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 바다가 들려주는 그리움의 단상을 한번 들어 보고 싶은 까닭이다.
어쩌려면 이 그리움의 시작은 미래에 만나게 될 운명 같은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위장한 채, 실제로는 미래에 만나야 할 누군가를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 "그" 때문에 많이 아프고 괴롭고 힘들고 그럴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속에 이렇게 큰 그리움의 파편들이 떠다닐 수 없다.
“그리움은 과거가 남긴 흔적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오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