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제대로 배운 전공자들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내가 하기에는 너무 어려울까요?’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 작곡에 대해 지레 겁먹고 ‘작곡은 천재들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자주 묻는다. 그렇다면 천재라고 칭송받는 모차르트의 예를 함께 살펴보자.
1815년, 독일의 <<일반 음악 저널>>(General Music Journal)은 모차르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공개했다. 편지에서는 모차르트가 자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 악상이 가장 훌륭하고 풍부하게 흘러나오는 시간은 완전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할 때, 전적으로 혼자 있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예를 들어 마차를 타고 있을 때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할 때 그리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다. 이 모든 상황이 내 영혼을 불태우고, 방해받지 않는다면 그 악상은 저절로 확장되고 체계가 잡혀 윤곽을 드러낸다. 그래서 전체가 비록 길다 할지라도 내 머릿속에서 거의 완성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나는 마치 멋진 그림이나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나는 상상 속에서 각 부분들을 잇달아 들을 뿐만 아니라 전체를 한꺼번에도 듣는다. 악상을 적는 단계에 이르면 그 기록 과정은 무척 금방 끝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과정이 이미 완료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 종이에 옮겨 쓴 내용이 다른 경우는 드물다.”
위에 말들을 종합해 본다면 모차르트가 쓴 유명한 오페라, 교향곡 등 그 수많은 곡이 그가 전적으로 혼자 있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완성된 상태’로 그에게 찾아왔다는 뜻이다. 그 수많은 명작은 상상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이루어졌고 그 후엔 기록하는 일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한 위조문서이다. 이 사실은 모차르트 전기 작가 오토 얀(Otto Jahn)이 1856년에 처음으로 증명했으며 이후 다른 여러 학자들이 그 사실을 확증했다. 모차르트가 실제로 그의 가족들, 그 외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실제로 창작했던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재능이 특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걸작들은 상상을 통해 완성된 상태로 그에게 오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Leopold Mozart)의 헌신과 집착으로 만들어진 ‘노력형 작곡가’이다.
그는 먼저 작품의 개요를 정하고 이를 수정했으며 곡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에는 머리를 쥐어짜기도 했다. 하던 일을 제쳐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 다시 작곡하기도 했고 피아노나 하프시코드가 없으면 작곡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작곡을 하는 동안 화성법이나 관현악법을 많이 생각하며 이론과 기교를 곡에 대입했다. 물론 타고난 재능과 일생에 걸친 연습 덕분에 빠르고 능숙하게 작곡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작곡 과정은 바로 ‘노동’ 그 자체였다. 그 편지는 위조였을 뿐만 아니라 명백한 거짓이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당신은 음악을 좋아하나요?”라고 질문을 해보자. 분명 음악을 즐겨 듣는 타입이 아닐지라도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누구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좋아한다. 우리가 삼시세끼 밥을 먹듯,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듯, 의식주의 한 부분처럼 음악을 항상 틀어놓고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인간에게 음악은 삶의 한 부분이며 음악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른다거나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에는 부끄러워한다. 층간소음의 영향으로 요즘에는 힘들 수 있지만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머리를 돌리며 노래를 하는 것은 쉬운데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토록 두려운 것일까? 우리는 대부분 샤워할 때나 술에 취해 코인 노래방에 동전을 넣고 마이크를 잡을 때만 노래할 용기를 낸다. 혹은 관광버스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 부르기를 시켜도 부끄러워하며 그 시간이 넘어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하나가 당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토록 노래하기가 부끄러울까? 그 이유는 문화를 지배하는 커다란 선입견과 관련이 있다. 음악성에 대해 예외적인 극소수만 지닌 천부적 재능이라는 선입견 말이다. 음악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고 음악교육은 어린 시절에 시작해야 하며, 성인은 손가락이 굳어서 악기를 배워봤자 잘 연주할 수 없다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만 해야 할 운명이라는 선입견 말이다.
이 모든 선입견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만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아있고 수많은 논문들과 기록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음악성은 인간이 갖추고 있는 가장 기본 능력이며 우리 모두가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연주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작곡이라는 창작행위는 더 이상 전공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이야기해보자.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예술의 전당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고급 연주복을 입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있는지 살펴보자. 아마 대부분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수많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찾아가 보면 청년부터 노인까지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워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갖고 왔던 굳어진 선입견을 깨 주는 감성들도 많이 다가올 것이다.
물론 오케스트라는 합창단보다 아마추어의 폭이 좁다. 개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다른 악기들과 지휘자의 합을 맞춰야 한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기 때문에 당신이 악보를 놓쳐버려도 다른 악기들은 그대로 진행된다. 이러한 환경에 연습 초반에는 멍해지고 멋쩍은 상태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만 있다면 이런 시련을 겪고 난 후 다양한 악기의 다채로운 음향과 함께하는 음악활동이 당신의 삶을 휘감을 수 있다. 인생에 한 번쯤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작곡에 대한 열망도 좋다. 작곡은 음을 창작하는 행위로 창조성을 드러낸다. 작곡은 창조성의 으뜸이다. 모든 음들이 완전한 형태로 나에게 찾아오는 마법은 없다. 영감이 번쩍이는 순간을 바라는 것보다 오로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인내심을 갖고 가야 한다.
전문적인 작곡법보단 자신의 스토리와 감성을 토대로 작곡을 하여 사람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들었다면 이제는 평범한 인생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나의 삶에 대해 작곡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할 것이다. 물론 다양한 경험이 작곡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내가 겪었던 상황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각도와 여기저기 듣고 읽었던 수많은 간접경험.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 오히려 실제 경험처럼 생생히 듣는 이에게 전달할 수 있다.
명성황후 OST 중에서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라는 음악이 있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명작으로 남았다. 수많은 역사 드라마의 음악이나 뮤지컬 넘버들에서 요즘 접할 수 없는 전쟁 장면들,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작곡가가 직접 경험하고 연주가가 연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음악은 마법이 아니다. 음악은 노동에서 나오고 학습될 수 있다. 모차르트가 음악적으로 ‘성숙한’ 나이를 21세로 보면 그는 오히려 늦깎이로 분류될 만하다. 그의 아버지가 시킨 교육을 감안할 때, 그는 1만 시간의 연습을 아마도 사춘기 전에 마쳤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