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갇혀버린 행복을 꺼내다
타이틀 이미지 : 세곡동 보금자리 집합주택 3단지 | 출처 : 대한건축사협회
“행복한 어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여러분도 쾌적하고 안락한 집에서 다정한 가족과 적당히 풍족한 일상을 누리며 사는 모습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20대 후반, 입사 초를 떠올려보면 회사 동기들과 만날 때마다 대화 주제가 거의 항상 연애나 결혼 얘기로 귀결됐던 것 같습니다. 갓 취업한 20대 후반 여자들에게 가정을 이루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주제인 것 같았어요. 동기 중 누군가가 소개팅을 할 때마다 상대가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토론하고, 연애 중인 친구들은 관계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서로의 진척 사항을 확인하곤 했죠. 그때 받은 느낌은 뭐랄까, 20대 후반의 여자들에게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일종의 행복 완성 프로젝트처럼 여겨진다는 것이었어요. “취업”이라는 조건을 갖췄으니, 이제 “결혼”이라는 마지막 조각만 더하면 완전한 행복이 완성될 것처럼 말이죠.
낮엔 일을 하고, 저녁과 주말엔 자신의 행복한 사적 생활을 채워줄 사람을 찾고, 그 사람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그 안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어쩌면 미혼 직장인들의 전형적인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보니 친구나 동료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일 테고요. 저도 결혼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 행복으로 향한 유일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걸까요? 영속적인 행복은 사적인 삶에서만 얻을 수 있는 걸까요? 왜 우리가 그리는 행복의 이미지는 이토록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는 걸까요?
최근, 이런 고민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행복의 이미지를 던져 준 책이 있습니다.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가 쓴 『탈 주택』, 이라는 책입니다. 2024년 프리츠커상을 받으면서 더 주목받게 된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은 언제나 건축을 통해 ‘사람을 연결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던 사람인데요.『탈 주택』이라는 책에서 그는 현대인의 행복의 이미지가 ‘사적인 집’ 속에 단단히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어서 그는 개인을 넘어 도시와 사회로 확장되는 행복의 이미지를 제안합니다.
책의 서문에서 야마모토 리켄은 현재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1가구 1주택’은 산업혁명 이후에 와서야 보편화된 것으로, 알고 보면 독특한 삶의 양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산업 혁명으로 인해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향상되었을 때 도시는 막대한 생산량을 감당할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국가는 좁은 땅에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 줄 수 있는 주거 양식을 도입했죠. 도시로 온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나뉘어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에 배치되었고, 남성은 돈을 벌고 여성은 가사를 돌보고 자녀(새로운 노동자)를 양육하는 분업 체계가 서서히 확립되었습니다.
그 결과 도시의 공간들은 ‘생산의 장소인 일터’와 ‘소비의 장소인 집’으로 철저하게 양분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가 만드는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행복이 ‘사적인 집’ 안에만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죠. 사회가 쥐어준 역할을 곧이곧대로 수행하는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일을 마친 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라이빗한 주택’은 행복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도시 노동자들에게 행복이란 점차 ‘집에서의 사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나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것이 곧 고된 노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죠.
(…) 건축가가 주택을 만들 때는 사생활을 누리는 장소로서의 주택이어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이런 주거 형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건축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부와 자녀라는 단위가 가장 적합한 생활 단위로 여겨졌다. 이는 성현상의 기본단위이며 자녀를 낳는 단위인 동시에 육아의 단위였다. 하지만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단위를 생활의 기초단위로 삼는 주거 양식은 커다란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 작은 단위 안에 모든 게 갇혀버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활의 모든 것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1가구 1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갇힌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갇힌 생활의 상징이 프라이버시 존중이다. (실제로 프라이버시의 어원에는 “갇히다” “격리되다”라는 의미가 있다.)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며, 이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 야마모토 리켄, 『탈 주택』, 안그라픽스, p29-30
이 내용을 읽다 보니 그동안 산업의 성격도 도시의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도시인의 삶의 구조, 도시인들이 그리는 행복의 이미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안락한 집”과 “화목한 가정”을 쫓으며 사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요. 정연두 작가의 <상록타워>라는 작품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상록타워> 시리즈는 광진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족들을 담아낸 사진 작품인데요. 사진 한 장만 봤을 땐 90년대 감성의 따스하고 흐뭇한 기분이 떠오르지만, 그와 비슷한 가족사진 수십 개가 나란히 나열된 모습을 보면 어쩐지 기괴한 느낌이 듭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행복이 집이라는 껍데기에 포장된 채 끝없이 양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 가운데서 무언가가 억압되고 숨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게 바로 야마모토 리켄이 말하는 ‘1가구 1주택’ 시스템에 갇힌 행복이 아닐까 싶었어요.
야마모토 리켄은 1가구 1주택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택이 외부로 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가구 1주택 구조 속에서 억압된 행복의 탈출구가 되어줄 공간으로서, 시키이(敷居)라는 개념을 제안하죠. 시키이란, 일본어로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표현하는 문지방”을 의미하는데요. 야마모토 리켄의 시키이는 ‘선적인 경계’가 아닌 ‘넓이를 가진 공간’으로, 사적인 영역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외부와 관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의미합니다. 주택의 프라이버시를 보존하면서도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는 타협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시키이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선이 아니라 공간적인 넓이다. 시키이는 외부로부터 사람을 맞이하는 공간이며 외부의 공간과 교류하기 위한 공간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외부의 공간(공적인 영역)과 내부의 공간(사적인 영역) 중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적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적 공간의 일부라는 것이다. 사적인 공간 안에 있는 공적인 공간이 시키이다. 응접실일 수도 있고 툇마루일 수도 있는 등 모양과 형태는 다양하지만 모두 외부로부터 사람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이다.
- 야마모토 리켄, 『탈 주택』, 안그라픽스, p35
야마모토 리켄이 '시키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사람들을 가족 바깥의 공동체와 연결시키기 위함입니다. 산업 혁명 이전의 가족은 공동체 내의 공동체였습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일차적으로는 가족 안에 속해 있었지만, 집 밖을 나가면 마을과 지역 같은 상위 공동체에서 또 다른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프라이버시가 극대화된 현대의 1가구 1주택 시스템 속에서 상위 공동체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집 밖에서 우리가 속할 수 있는 집단은 “이해관계 기반의 계약으로 맺어진” 직장, “추상적인 관리 시스템”으로서의 국가뿐이에요. 우리를 기능적인 존재로만 대하는 이런 집단에서는 우리 삶에 활기를 주는 자연스러운 커뮤니티를 경험하기는 어렵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키이를 만들어 왔습니다. '구마모토현 호타쿠보 제1단지'을 설계할 때는 대지 가운데에 집합 주택의 주민들끼리만 공유하는 넓은 중정을 배치했습니다. 도로에서 집으로 들어가고, 다시 집에서 중정으로 나오게 되는 구조로, 각각의 집이 중정에 대한 시키이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살게 될 '요코하마 시영주택 미쓰쿄하이쓰'를 설계할 때에는 대지의 구획을 잘게 쪼개고 사이사이에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치고 교류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이런 건축적 시도를 통해 그가 의도했던 것은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날 수 있는 '유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었죠.
그러나 아쉽게도 야마모토 리켄이 초기에 만든 시키이는 그가 생각한 것처럼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 공공 기관들의 행정적 관습 때문이었죠. 주민 관리 기관들은 중정과 같은 공적 공간을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했고, 그 결과 주민들은 결국 그 공간의 주인이 자신이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느끼기보다는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공간이라 느끼게 됐죠. 야마모토 리켄은 공적 공간의 활용 방식을 주민이 아닌 공공 기관이 정하려 하는 일본의 현실에 회의를 느꼈지만,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실험을 계속해서 시도해 나갔습니다.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지점은, 야마모토 리켄에게 한국은 꽤 좋은 실험의 무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판교 하우징(월든힐스 산운마을 2단지)과 강남 하우징(세곡동 보금자리 집합주택 3단지), 총 2곳의 집합 주택 단지를 설계했습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LH에서 진행한 국제 설계 공모를 통해서 진행되었어요. 야마모토 리켄은 한국에서 일하는 경험이 매우 좋았던 모양인지, 이 책에서 한국의 공공 주택 운영 방식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합니다. 사실 야마모토 리켄이 한국에서 일하며 일본에서 하지 못한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이 개방적이어서라기보다는 국내 건축가보다 외국 건축가에게 훨씬 너그럽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어쨌든, 그 덕분에 야마모토 리켄은 판교 하우징과 강남 하우징에서 자신의 건축 철학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둘 중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건 강남 하우징입니다. 강남 하우징은 고령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집합 주택입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1인 가구가 많이 사는 주택인 만큼, 이웃에게 활짝 열려 있으면서도 그것이 침해가 아닌 쾌적함으로 느껴질 수 있는 주택을 만들고 싶었다고 해요. 강남 하우징의 집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마주 보는 건물 사이에는 “커먼 필드”라는 이름의 중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정을 바라보는 현관문들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요. 유리문 안쪽에는 외부로 개방된 LDK(거실, 다이닝룸, 키친)가 ‘시키이’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 프라이빗한 침실과 발코니가 있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강남 하우징의 저층부의 옥상을 텃밭으로 조성했습니다. 그냥 정원을 주기보다는, 직접 주민들이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텃밭을 제공하면 커뮤니티의 활성화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죠. 이는 사실 요코하마 집합주택 당시 제안했던 아이디어인데 ‘모든 주민에게 완전히 공평하게 나눠줄 것이 아니라면 안 된다'는 반대에 막혀서 시도하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의 LH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주민들이 직접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텃밭으로 조성되었다고 해요. 이 과정 속에서 야마모토 리켄은 일본보다 한국이 주민의 주체성을 더 존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택의 프라이버시를 신봉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리 현관문이 달린 주택이 공개되자, 한국 언론은 야마모토 리켄에게 각종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투명 현관문’, ‘판교 미분양’ 건축가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생기기도 했죠. 하지만 야마모토 리켄이 지은 주택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준 ‘시키이’를 매우 잘 쓰고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판교 하우징에 주민들이 야마모토 리켄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고, 이에 직접 건축가가 판교 하우징을 방문하며 화답하는 일도 있었죠. 초반에 고정관념에 부딪치긴 했지만, 공간이 제공하는 새로운 생활의 가능성이 사용자를 끝내 설득해 낸 것입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강남 하우징을 설계한 후, 주택에 딸린 ‘시키이’에서 사람들이 각자 작은 가게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 어떤 커뮤니티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작게라도 경제 활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죠. 야마모토 리켄은 책 곳곳에서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위해 “작은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피력하는데요. 그래서 이 책을 쓸 때 나카 도시하루에게 공저를 요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카 도시하루는 한때 야마모토 리켄의 회사에서 일했던 건축가로, 작은 경제라는 개념을 자기 건축에 적극적으로 녹인 사람입니다. 그는 작은 경제를 “개인의 일이나 특기 등을 활용해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라고 정의했습니다. 전문성이나 수익보다는, 일의 즐거움과 인간관계에 더 포커스를 두는 개념이죠. “식당이 딸린 아파트”는 입주자들이 일상생활뿐 아니라 작은 경제 활동까지 영위하면서 지역 사회와 함께 공존해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된 소규모 집합 주택입니다. ‘식당’과 ‘공유 오피스’, ‘주택’을 결합된 ‘작은 경제의 건축’ 그 자체죠.
나카 도시하루는 이 건축물이 의도한 대로 잘 쓰이도록 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즉 사용 및 유지 관리 방안까지 직접 고안했다고 합니다. 건축물만 디자인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 자체를 총제적으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각자의 역할이 어떻게 전체적인 환경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 돈은 어떻게 도는지까지 대략 구상이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표현한 여러 다이어그램들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공간을 제대로 기획하려면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폭넓은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어요.
현대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창조해 보려는 건축가들의 다채로운 노력은 저에게 꽤 상쾌한 울림이 되었습니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물리적 '감각'으로 구현하기 때문에, 확실히 말이나 개념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완성도 있는 건축물을 구경하면서 그 안에 건축가가 담아내고자 했던 메시지, 이루어내고 싶었던 변화까지 읽히면 감각이 깨어나면서 마음이 매우 즐거워집니다.
특히 『탈 주택』에 소개된 프로젝트들은 신선한 라이프스타일, 새로운 행복의 이미지가 바로바로 연상되는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래, 우리에게는 커뮤니티라는 것이 있지, 커뮤니티라는 느슨한 소속감 속에서 얻는 활기찬 에너지가 분명히 있지” 하면서 그리운 감각이 살아나는 듯했죠. 이런 건축적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기까지 정말 수많은 부딪침과 설득의 과정이 있었을 텐데, 야마모토 리켄은 그런 힘든 과정을 겪더라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건축가는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다” 라는 그의 말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정말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
현재의 주택은 단순히 소비하는 장소일 뿐이다. 소비하는 장소란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장소이며 가족이라는 사적 집단만을 위한 장소라는 뜻이다. 주택이란 그런 사적 집단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장소인 것이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집단이 아무리 모여도 커뮤니티는 탄생하지 못하며, 실제로 탄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실만을 내세워 미래의 공간에서도 커뮤니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많은 (많은지 어떤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회학자의 미래 예측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왜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일까. 사회학자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조사하며 (때로) 그 결과를 그대로 미래에 접속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과거)에 근거하여 미래를 예상하려 하기 때문이다.
(중략)
사회학자는 과거를 조사하지만 건축가의 일은 사회학자의 일이 끝난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건축가의 관점에서 미래는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커뮤니티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공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 야마모토 리켄, 『탈 주택』, 안그라픽스, p203-205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4년 정도가 흐른 지금, 이제 세상이 만들어놓은 행복의 이미지에 휘둘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행복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항상 질문으로 남아 있죠. 그런데 『탈 주택』을 읽으며, 이 질문이 제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 어쩐지 즐겁게 느꺼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행복의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했고요. 저 또한 앞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이야기를 쌓아나가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미래의 행복을 쫓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직접 만들어나가고 있나요? 만일 만들어 나가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려지고 있는 행복의 이미지는 어떤 그림인가요?
참고 링크
Hotakubo Housing (1991) - Riken Yamamoto 홈페이지- Archdaily
Yokohama Public Housing (2000) - Riken Yamamoto 홈페이지
Gangnam Housing (세곡동 보금자리 집합주택 3단지) (2014) - Riken Yamamoto 홈페이지- 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
Apartments with a Small Restaurant (2014)
- Naka Architects' Studio 홈페이지
Local Community Area (Theoretical Projec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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