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과 함께 만든 도서관, 헬싱키 오디(Oodi)

시민들은 디자인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by Unspoken

타이틀 이미지 © Iwan Baan



여러분은 혹시 다음 여행지로 찜해 둔 특별한 장소가 있으신가요? 저는 얼마 전 책을 읽다가 꼭 한 번 가봐야겠다 싶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오디(Oodi)‘라는 이름의 헬싱키 중앙 도서관입니다.

이 장소를 만나게 된 책은 장류진 작가가 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같이 갔던 친구와 15년 만에 다시 핀란드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장류진 작가와 친구분은 열흘 동안 핀란드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데요. 친구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초반부는 그냥저냥 흥미롭게 읽다가, 중후반부 헬싱키가 나온 이후부터 확 몰입이 되었어요. 작가님이 헬싱키의 디자인 세계에 매료되신 나머지 도시와 공간에 대한 묘사가 한껏 살아났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헬싱키에 관심이 생겼고, 그중에서도 오디 도서관에 가장 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표지 이미지 ©오리지널스,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2025).jpg 표지 이미지 ©오리지널스,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2025)
‘오디‘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준비한 100살 생일 선물‘로 불린다고 했다. 세상에, 나는 이 수식어만으로도 벌써 오디에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오디가 핀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설립된 도심 한복판의 공공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의 딱 하루 전날인 2018년 12월 5일 개관한 이 도서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심 속 공간'을 모토로 건축 디자인 및 설계부터 이름까지 모두 시민 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략)

이곳을 둘러보면서 '세상의 모든 도서관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가 바로 이 오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다소 민망하지만 오디에 가보면 절대 호들갑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가문비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오디를 멀리서 발견하고 나는 예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거, 바다 같지 않아?”
”바다? 바다 위의 배가 아니라? “
“응, 파도가 치고 있는 순간의 바다를 길게 한 토막 잘라둔 것처럼 보이지 않아?"

- 장류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오리지널스, p320-322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 Tuomas Uusheimo.jpg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 Tuomas Uusheimo


국가가 국민을 위한 선물로 준비한 도서관이라니, 시민 참여를 통해 만들었다니, 게다가 책을 짓는 작가가 ‘모든 도서관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무언가’ 가 있다고 인정할 정도라니,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해지지 않나요? 저는 이렇게 평소에 공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법한 분들이 어떤 공간에 방문해서 감동하는 장면을 마주하면,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생생한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어져요. 그래서 한 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도서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이죠.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것이 있었길래 이런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 이야기 속에서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선진국 핀란드의 생각 : 시민에게도 ‘디자인 주권‘이 있다



오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 저는 우선 핀란드라는 나라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시민들에게 선물로 줄 공간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겠다”라는 발상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 느껴졌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디자인을 전문가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깁니다. 시민들은 그들이 만든 결과물을 누리거나 소비하는 존재로 생각하죠. 그래서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하면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데리고 화려한 공간을 만든 다음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곤 합니다. 하지만 핀란드의 방식은 달라 보였습니다. 시민들을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기획의 공동 주체로 여기고, 공간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곳이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과정마다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제스처를 보였죠.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요? 디자인계가 시민들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시민들에게도 디자인 주권이 있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시민들이 스스로 디자인을 하는 건 어려울지라도, 적절한 프로세스를 통해 디자인에 관여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은 헬싱키가 2012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됐던 당시 주창했던 방향성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Open Helsinki - Embedding Design in Life”라는 슬로건 아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죠. 이때부터 핀란드는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도록,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더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시민들에게 내재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던 것 같습니다. (바로 직전인 2010년에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됐던 서울이 자하 하디드와 같은 스타 건축가를 섭외하는 등 도시 외형의 이미지 개선에 집중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2008년부터 기획되고 있었던 오디 도서관이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로서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시기가 바로 이때, 헬싱키가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었던 2012년입니다. 헬싱키가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사람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내세우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로서 오디 도서관이 그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참고로, 오디(Oodi)라는 이름 또한 시민 공모로 결정되었습니다. 2016년 말 네이밍 공모를 열어서 2600여 개의 아이디어를 받았고, 심사를 거쳐 핀란드어로 ‘찬가‘라는 뜻의 단어 ‘Ode’를 활용한 ‘Oodi’가 선정되었다고 해요. “시민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상징성에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이죠.

Visual Identity of World Design Capital Helsinki 2012 © Kokoro&Moi.jpg Visual Identity of World Design Capital Helsinki 2012 © Kokoro&Moi



시민 참여 프로세스 :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도서관 만들기에 참여한 방법


헬싱키 시는 비전문가인 시민들을 어떻게 도서관 기획 과정에 참여시켰을까요? 디자인 과정에서 사용자와 접점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별로 의견을 내는 서베이나 인터뷰, 다 같이 모여 논의하고 토론하는 워크숍도 있고, 이벤트성의 활동을 매개로 하는 캠페인도 있죠. 오디 도서관의 경우, 초기 기획부터 개관 직전까지 단계 단계마다 적절한 액티비티를 도입해서 수십 차례 시민들과 소통했습니다. 관련 사진이나 자료를 보았을 때 전반적인 톤이 굉장히 가볍고 유쾌해 보여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마케팅, 브랜딩 에이전시와 협업을 하기도 했더라고요.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다니, 시민들과의 소통 자체를 프로젝트의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Unel-moi!(Tree of Dreams) 캠페인
초기 기획 단계에는 새로운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꿈을 모으는 Unel-moi!(Tree of Dreams)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Unel-moi란, 핀란드어로 ”네 꿈을 들려줘!”라는 뜻이에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당신이 꿈꾸는 도서관은 어떤 곳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나무에 매다는 형식이었죠. “꿈의 나무”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약 10개월의 시간 동안 개방되었고, 결과적으로 총 2,300건의 아이디어가 수집되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단순히 시민들에게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진행된 게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도서관이 생길 것이라는 걸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이후 단계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었죠.

Unel-moi! (Tree of Dreams) 캠페인 © Kuudes.png Unel-moi! (Tree of Dreams) 캠페인 © Kuudes


참여 예산제(Participatory Budgeting)
헬싱키 시는 오디 도서관 기획 당시 핀란드 공공 프로젝트 역사상 처음으로 참여 예산제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참여 예산제란 시민들이 예산의 일부를 어떻게 사용할지 직접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배정된 예산은 약 10만 유로로, 전체 예산의 0.1% 정도밖에 안 되긴 했지만 첫 시도라는 것만으로도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이때 수집된 제안들 중 다음 4개의 아이디어 (Storybook Birthday Parties, Urban Workshops, A Place of Tranquility, Encounters with Authors)는 공개 워크숍에서 구체화되어 파일럿 프로젝트로 실행되었으며, 이후 오디 도서관 프로그램 기획의 큰 틀이 되었다고 해요. 이때 진행한 참여 예산제 모델은 이후 헬싱키 전체로 확대되어 OmaStadi라는 이름의 참여 예산 플랫폼 구축으로 이어졌고, 예산 규모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여 예산 플랫폼 Omastadi  httpsomastadi.hel.fi.jpg 참여 예산 플랫폼 Omastadi 홈페이지 화면 | https://omastadi.hel.fi



건축 설계 공모안 투표
헬싱키의 시민들은 도서관 건축 설계 공모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헬싱키 시는 도서관 건축 설계 공모를 열 때 시민들이 상상한 도서관을 설계안에 반영해 달라는 의미로 Unel-moi! 캠페인에서 수집된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참여자들에게 제공했습니다. 공모전에는 총 544개의 팀이 설계안을 제출했으며, 이는 전시회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자유롭게 작품을 관람하며 마음에 드는 안에 투표를 할 수 있었어요. 이후 후보안이 6개로 좁혀졌을 때에도 시민들은 도심 광장의 터치스크린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다시 한번 투표를 하고 의견을 남겼습니다. 최종 당선안은 전문가 심사를 통해 선정됐지만 시민들의 투표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며 중요하게 다뤄졌고, 그 결과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헬싱키 시는 최종 당선작 발표 후 시민들과 함께 하는 전시와 파티를 열어 모두가 함께 도서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감각을 이어나가기도 했습니다.

6개 후보안에 대한 시민 투표 결과


최종 당선안 선정 결과

당선 당시 투시도 © ALA Architects.jpg 당선 당시 투시도 © ALA Architects


시민 디자이너 커뮤니티 ‘Friends of Central Library’
헬싱키 시는 시민들을 대표하여 도서관 기획 업무에 직접 참여하는 ‘Friends of Central Library’라는 시민 참여 조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단발성 의견 수렴을 넘어 지속적인 형태의 참여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죠. 2014년 파일럿 형태로 처음으로 시도했고, 일반 시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95명의 지원자 중 28명을 추려 팀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도서관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과정 전반에 참여하면서 사용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히 니즈를 표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워크숍에 참여하며 도서관 서비스를 직접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식으로 깊이 관여했죠. 이 모델 또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현재는 ‘Library Tribe(Kirjastoheimo)’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헬싱키 도서관 네트워크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디 도서관 기획 과정에 도입됐던 시민 참여 프로세스는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애초에 꽤나 이상적인 비전을 갖고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할 수 있는 일을 이것저것 정말 다양하게 시도해 봤다는 게 느껴져요. 물론 오디 도서관을 시민들이 제대로 주도해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획과 설계의 중심에는 어디까지나 헬싱키 시와 전문 디자이너들이었고, 시민들은 그 과정 중간중간에 ‘초대된 손님‘처럼 참여한 측면이 큽니다. 그러나 그 초대를 정말로 성심성의껏 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집니다. 보여주기 식의 의견 수렴이 아니라, “함께 상상해 보자”는 정중한 요청이었다는 점이 분명히 느껴져요. 건축계에서 아직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때였던 걸 감안하면, 굉장히 선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 : 시민들의 이야기를 디자인 언어로 연결하는 기술


시민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실제 디자인에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양질의 의견들이라도, 너무나 다양한 의견이 무분별하게 펼쳐져 있다면 그 자체로는 디자인의 방향성이 되기 어렵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명료하고 구조화된 언어로 풀어내는 전문적인 번역의 과정이 필요하죠.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고 있는 분야가 바로 서비스 디자인입니다. 서비스 디자인이란, 사용자의 경험을 중심에 두고 물리적/비물리적 요소 전반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디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실제로 오디가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어요. 저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서비스 디자인 사례의 교과서, 오디 도서관


서비스 디자인의 핵심은 디자인의 대상이 사물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시각적·물리적인 결과물보다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 감정, 맥락에 초점을 두는 것이죠. 경험이 디자인 프로세스의 중심에 놓이면, 사용자와 디자이너 간에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깁니다. 사용자들은 공간의 디자인에 대해 바로 피드백을 하기는 어려워도, 자신이 원하는 경험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날것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그 니즈가 서비스 디자인을 통해 실질적 경험으로 구체화되면 이를 디자인에 수월하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비스 디자인은 ‘사람의 언어’를 ‘디자인 언어’로 번역해 주는 통역자이자 사용자와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구조적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디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오디를 설계할 때에도 여러 서비스 디자인 에이전시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Hellon이라는 스튜디오는 도서관에 방문하게 될 다양한 유형의 시민들의 경험을 ‘저니 맵(Journey Map)’이라는 도구를 통해 시각화했고, Palmu(현재는 Solita라는 회사와 합병되었습니다)는 로비 및 라운지 공간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옴니채널 경험’을 설계하여 사용자 입장에서 일관된 도서관 경험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또 Muotohiomo라는 업체는 가족 단위 방문자를 고려한 도서관 서비스의 구체적 시나리오를 개발했다고 해요. 이렇듯 다양한 관점에서 사용자 경험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디 도서관은 개관 이후 많은 방문자들에게 호평을 받는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스튜디오가 어떤 성과물을 냈는지도 소개해보고 싶었는데요. 웹 상에서는 마땅한 자료를 구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홈페이지에도, 오디 공식 홈페이지에도, 과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경험 시나리오나 저니 맵이 어떤 형태로 납품되었는지, 온-오프라인 경험을 통합하는 디자인은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이 되는지 등에 대해 힌트를 얻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내부 자료라 공개하기 어려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비스 디자인의 성과물이라는 게 애초에 웹상에 비주얼적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비스 디자인의 결과물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들의 성과를 느끼려면, 직접 방문해서 공간을 사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공 도서관의 새로운 모델 : 평범한 사람들의 창조성을 끌어올리는 공간

이렇듯 정성스럽고 섬세한 과정을 통해 기획된 오디 도서관은 핀란드 독립 101주년을 하루 앞둔 2018년 12월 5일 문을 열었습니다. 2008년 프로젝트가 공표된 이래 10년이 흐른 시점이었죠. 오디 도서관은 개관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가 정말 많다고 해요. 코로나 시기 방문율이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2023년에는 전년 대비 방문자수가 36%나 증가하면서 빠르게 회복했고 2024년 3월에는 총 방문객수 천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토록 끊이지 않는다는 건, 오디가 단순히 멋진 공간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래 보이는 오디 도서관 관장 Anna-Maria Soininvaara의 말처럼요.

“Oodi has clearly cemented its place in Helsinki and been embraced by the people. The visitor numbers indicate that there is a major need for a place like Oodi in Helsinki. Oodi was designed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opinions of Helsinki residents, and we are constantly developing our services in collaboration with our customers. People get what they need out of Oodi, which is why they come back here again and again.”

“오디는 헬싱키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고, 시민들로부터 받아들여졌습니다. 높은 방문자 수는 헬싱키에 오디와 같은 장소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오디는 헬싱키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설계되었고, 우리는 지금도 고객들과 협력하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디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때문에, 이곳을 계속해서 다시 찾는 것입니다.”

- Anna-Maria Soininvaara, 오디 도서관 관장


오디 도서관은 크게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층은 명확한 컨셉과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시민들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먼저 1층은 Kansalaistori라는 시민 광장과 연계되어 도서관 안으로 사람들을 들이는 전이 공간입니다. 건물의 형태도 광장을 부드럽게 품어내는 듯한 형상을 띠고 있어, 광장의 공적이고 활기찬 분위기가 건물 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내부에는 영화관, 레스토랑, 다목적홀 등 다수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편의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어요. 이곳의 담긴 의도는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머무를 수 있는 비상업적인(non-commercial)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1층에 들어섬과 동시에 헬싱키의 시민들은 가족 구성원도, 노동자도, 소비자도 아닌 그 자체로 존중받는 ‘나’가 될 수 있는 것이죠.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1F © Tuomas Uusheimo.jpg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1F © Tuomas Uusheimo


Urban Workshop 또는 ‘메이커 스페이스’라고 불리는 2층은, 시민들의 다채로운 창작 활동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녹음 스튜디오, 디제잉 부스, 합주 공간, 영상 촬영 스튜디오,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 재봉틀, 그룹 키친 등등, 각종 창작 행위를 위한 다양한 시설과 장비들이 마련되어 있어요.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장소다'라는 기존의 인식을 버리고 ‘사람의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장소’로 개념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야말로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곳, 이곳이야말로 건축보다는 서비스 디자인과 운영 역량이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민들이 정말 이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있을지, 그 분위기를 상상하고 싶다면 앞서 소개한 장류진 작가의 생생한 묘사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층은 이른바 ‘메이커 스페이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를 창작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열심히 만들거나, 표현하거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피어오르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 가득한 곳이었다.

3D 프린터에서는 처음 보는 제품들이 끝없이 차곡차곡 제조되고 있었고, 재봉틀로 옷이거나 옷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게임룸에서 게임을 만들 수도, 플레이할 수도, VR 체험 부스에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수도 있었다. 팟캐스트 키트가 마련된 레코드룸에서 방송을 할 수도 있었고,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녹음할 수 있는 합주실뿐 아니라 각각의 악기나 장비도 대여할 수 있었다. 다종다양한 일렉기타들이 벽에 잔뜩 걸려 있는 곳에서 악기와 장비 대여를 담당하는 직원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형적인 ‘고스 메탈’ 스타일을 하고 있어서 왜인지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물론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없었지만 말이다.

누구나 이곳에서 원하는 걸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모든 시설이 제약 없이 무료였고 심지어 태블릿 같은 경우 왼손잡이용 패드는 룸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공간을 만든다고 이야기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층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도서관이 더 이상 책을 보유하고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라 많은 정보와 지식을 토대로 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설계하고 구현한 듯했다.

- 장류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오리지널스, p322-324


urban workshop에서 사용/대여할 수 있는 시설들


마지막 3층에 오면 드디어 책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곳의 이름은 책의 천국, Book Heaven으로 마음껏 독서와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이에요. 책 읽기에 최적화된 조용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도서관의 이상향을 따르지만, 동시에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와 바이오필릭 요소를 접목되어 있어 현대적인 감성도 누릴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곳곳에 다양한 구성으로 마련되어 있고, 발코니(The Citizens’ Balcony)로 나가면 탁 트인 도시 뷰를 감상할 수도 있어요. 시민들은 이곳에서 오로지 마음의 방향만을 따라가면서, 내면의 창조성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3개 층 중 디자인적으로 가장 힘이 들어간 곳으로 ‘독서에 집중하는 공간’을 너머, ‘존재를 회복하는 공간’으로 디자인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3F Book Heaven © Iwan Baan.jpg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3F Book Heaven © Iwan Baan


오디의 공간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왠지 이곳에 방문하면 나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에너지가 부드럽게 차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른 것들은 잠시 잊고 나 자신의 창조적인 에너지에만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일 것 같아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만들어낸 도서관이 또 다른 세대의 창조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니, 좋은 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이 도시에 없기 때문에 모르고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디 도서관에 머무른다면 어떤 시간을 보내실 것 같나요?



북유럽 국가들은 아무래도 ‘디자인의 공공성’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를 한참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수준 높은 디자인 역량에 북유럽 스타일의 성숙한 민주주의가 더해진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디자인 역량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향상되고 있지만, 사용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여전히 깊이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서비스디자인 분야가 서서히 도입되고 있긴 하지만 경험을 통해 사용자에게서 이끌어내려는 반응이 ‘호감’이나 ‘매력’ 같은 단발적인 ‘자극’에 국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뭐랄까, 아직 ‘사용자‘를 ‘소비자’와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공간이나 제품, 서비스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버리니, 실제 삶의 질을 높이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은 자꾸만 후순위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오디 도서관의 기획 과정을 찾아보면서 시민 참여 프로세스가 자리 잡으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는 시민들의 디자인 리터러시입니다. 디자인 리터러시란, 디자인을 ‘읽고’ ‘이해하고’ ‘비판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디자인된 완성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자기 삶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역량이죠. 시민들의 디자인 리터러시가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도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서로 귀찮기만 한 소모적인 과정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고요. 아마도 이는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디자인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깊이 스며들고, 시민들 스스로 디자인과 비슷한 행위를 해보고 경험해 봐야 생기는 걸 테니까요.

또 하나는, 전문적인 서비스 디자인 기법입니다. 시민들의 참여 내용을 전문가들의 디자인 결과물로 연결 짓는 적절한 프로세스 또는 도구가 정말 필수적인 것 같아요. 이게 안 되면 아무리 시민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더라도 단발적인 이벤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용자의 의견이 디자인 단계에서 쉽게 버려지는 이유는 그 의견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의견을 다 존중해 가면서 실행으로 이을 수 있는 실질적 아이디어로 종합해 내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에요. 현업을 하면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는 터라, 오디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해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더 자료를 뒤져봐야 할 것 같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 주체가 되어 완성된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귀찮고 번거롭고 피곤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로써 오디 도서관처럼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 라고 느낄 만한 공간이 탄생한다면, 그 모든 지난한 노력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멀지 않은 미래에,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좋으니 저도 언젠가 꼭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집니다.


참고 링크
Oodi _ What is Oodi? / Service Design
Oodi _ Facilities / Floors
Oodi _ Oodi as textbook case of service design (2019)
Design Helsinki _ Helsinki Central Library Oodi

Co-Design;ヘルシンキの新中央図書館Oodiを市民とデザインする (2018)
Aalto University _ The work of democratized design in setting-up a hosted citizen-designer community (2019)
The visual identity of Unel-moi! campaign (2012)

The visual identity of the World Design Capital Helsinki 2012 (2012)

WDO _ Past Cities / World Design Capital Helsinki 2012
ALA Architects _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Archdaily _ 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2018)

Archdaily _ Helsinki Central Library Winning Proposal (2013)
Archello _ Käännös (2013)
Architectural Record _ Finnish Partnership ALA Architects Named Winner of Helsinki Library Competition (2013)


© Unspoken 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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