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에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잔 모로(1928~2017) - 종래에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연기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글 김나희(클래식음악평론가) 2017-09-13
잔 모로
1928년 1월 23일 파리에서 태어난 잔 모로는 1947년 배우 출신의 유명 연출가로 당시 아비뇽페스티벌을 이끌던 장 빌라르의 작품을 통해 데뷔했다. 이어서 코미디 프랑세즈에 들어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장 빌라르와 함께하기 위해 그가 새로 설립한 TNP(Theatre National Populaire, 국립민중극장)로 적을 옮겼다. 루이 말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그의 대표작들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와 당시 큰 스캔들을 일으킨 <연인들>(1958)에 출연한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모데라토 칸타빌레>(1960)에 출연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92년 <바다를 걷는 나이 든 여자>로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1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 오슨 웰스, 엘리아 카잔, 베르트랑 블리에, 조셉 로지, 로제 바딤, 테오 앙겔로풀로스, 빔 벤더스, 앙드레 테시네, 뤽 베송, 프랑수아 오종 감독 등 프랑스를 넘어 수많은 감독들과 함께했다. 잔 모로는 배우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특유의 목소리와 대체 불가능한 감수성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감독으로도 두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2001년 문화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간 첫 번째 여성 회원이며, 2005년에는 앙제 지역에서 페스티벌을 시작해 젊은 감독들의 데뷔작 연출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유럽, 할리우드, 해외 합작 프로젝트 등 가능한 한 모든 통로를 통해 영화에 출연하며 살아 있는 역사가 된 배우였으며, 그녀의 존재가 그 자체로 영화라는 것을 모든 영화인들이 알고 있었다. 잔 모로는 “우리는 모두 자유의 나라에 살고 있으며, 이 자유의 나라는 바로 영화입니다”라고 말했던, 영화의 영광과 자부심, 승리를 스스로 증명한 존재였다.
(지난 7월 31일 잔 모로 작고 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언론들의 추모 기사와 지난 인터뷰 기사들이 계속 쏟아져나오는 중이다. 그 내용을 파리에 있는 김나희 클래식음악평론가가 1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했다.-편집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이렇게 바 안에 들어가는 것, 이런 장소 모두 참 익숙해요.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이 자주 이런 바 안에 있었죠. 루이 말 감독은 저와 음악에 대해 자주 말했어요. 우린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자주 들었죠.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찍는 도중 마일스 데이비스와 연락이 닿아서 루이 말은 전화로 영화 스토리를 말하고 ‘우리가 촬영을 거의 다 했으니까 음악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마일스는 작곡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죠. 그래서 루이는 이제 편집본이 나오면 그걸 보고 음악을 만들어주면 된다고 했어요. 결국 샹젤리제 거리 부근의 스튜디오에 마일스 데이비스가 왔어요. 샹젤리제 마리냥 영화관이 있었고, 거기에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마리냥의 가장 큰 관이었고요. 마일스는 그와 함께할 뮤지션을 다 고른 상태였어요. 우리는 영화를 보여줬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일스는 루이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딱 봐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먹을 것들을 찾으러 갔어요.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를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다음에는 계속 거기 함께 있었어요.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진 그 녹음 세션을 다 지켜봤어요. 마일스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으니까요.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없었죠. 마일스를 위해 영화를 멈췄다가, 다시 틀고, 또다시 틀었어요. 한꺼번에 다 녹음되지 않았던 터라 그랬죠. 마일스는 한 주제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냈고, 그 테마를 바탕으로 곡이 이어져서 나왔어요. 그래서 다시 영화를 틀었고, 또 멈췄고, 또 마일스가 즉흥연주를 만들어내고, 다시 곡이 이어져서 나오고…. 그렇게 영화 한편 전체의 음악이 완성된 밤이었어요. 저는 그 순간을 지켜보면서 마치 손님 접대를 하는 여주인처럼 모두를 위해 음식과 마실 것들을 가져다 날랐어요. 창작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하룻밤 사이에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본능적으로 이미지에 맞춰 즉흥적으로 탄생된 음악들은 유일한 무엇이었어요.
저에게 어디에서부터 연기가 시작되는지 묻는다면,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거예요. 우리가 읽어야 하는 대본, 어떤 시선, 내면의 감정, 일상에서는 절대 입을 일 없으나 영화에서는 입어야 하는 특별한 의상들, 거의 모든 것에서 시작돼요. 카메라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스탭들 혹은 함께하는 배우들과의 물리적인 거리, 촬영 당시의 춥거나 더운 날씨일 수도 있고요. 그게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정의 내릴 수가 없어요. 이런 정의할 수 없음이 결국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요. 저는 한번도 주의 깊게 어떻게 인물에 몰입했는지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고, 매번 영화마다 달랐어요. 한번도 같은 적이 없더군요. 의심의 여지없이 배우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연기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와닿는 그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전혀 아는 거 없이, 뭐 하나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게 되는 것 없이 그냥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필름에 다 담기고 인화되니까요. 그 모든 것들이 관객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다 의미를 지니는 무언가가 되니까요. 감독이 나서서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겠다고 의도한 거죠. 그가 렌즈를, 배우를, 그 영화에 접근하는 특별한 그만의 측면들을 다 선택했고요. 이런 날에는 카메라를 이렇게 움직이고, 또 다른 날에는 어떤 색을 강조하고, 다르게 움직이고요. 어느 순간 우리는 주의력을 잃게 되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있던 길의 중간에, 가던 길을 돌아 나와버려요. 더이상 그 인물이 아니게 되는 거죠. 이게 ‘춤’의 느낌을 줘요. 인물이 입체적으로 변화하죠.
저는 단 한번도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낸다거나 트레이닝을 한 적이 없어요. 목소리는 바로 저 자신이니까요. 저처럼 변화무쌍하고 자주 달라지죠. 제가 우울해하거나 화가 나 있거나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한다면 제 친구들은 전화기 너머에서도 바로 알아요. 제 목소리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 그거 아세요?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고, 목소리라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자 한 인간의 어떤 측면이죠. 흔히들 눈이 영혼의 거울이라고들 하잖아요. 목소리는 감정이 비치는 현상이에요. 우리가 이런 면을 다 인식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거죠. 만들어진 가짜 목소리로는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아요. 정치인들을 보면 알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와 만들어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정말 놀라워요. 만약 정치인들이 배우가 된다고 가정해보죠. 그들은 어떤 역할도 소화해내지 못하고 바로 잘릴걸요. 만들어진 목소리로만 말하니까 어떤 것도 우리의 내면까지 와닿지 않을 거예요. 거짓된 목소리는 정말 끔찍하죠. 그거 아세요? 설령 투박하더라도 진실함은 결국 통해요. 거짓은 우리가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위대한 배우들이 가진 그들만의 힘이 있다면 바로 이거예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의 진정성이요. 결국 다 통하고 설득력을 갖게 하고야 마는 그 지점이죠. 그게 어떻게 통하는지, 왜 설득력을 갖는지 설명할 수도 없고 왜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 그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빨려들어가고 그렇다고 믿게 돼요. 그게 손짓일 수도 있고,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일 수도 있고, 특유의 몸짓이나 눈빛일 수도 있어요. 목소리의 높낮이, 그 목소리에 담긴 어떤 음악 때문이거나 그 순간의 호흡이나 숨소리, 윙크나 슬쩍 움찔대는 거, 어쩌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것들 때문에 가능하죠.
<연인들>
빌리 홀리데이는 정말 특별한 가수였어요. 조셉 로지 감독과 만났을 때 제가 직접 빌리 홀리데이를 선택했어요. 당시에 저는 브르타뉴 지방에 샤토 드 빌로라는 성을 한채 빌려서 지내고 있었어요. 그곳은 모두가 꿈꾸는 그런 성은 아니었고, 아름다우면서도 사람들을 겁먹게 한달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어요. 조셉 로지라는 이름을 당시에 저는 잘 몰랐고, 그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었어요. 그가 브르타뉴로 와서 저와 함께 일주일을 보냈어요. 그는 계속 다음 영화의 주 무대가 될 바에 대해 말했어요. 그 일주일은 거의 미친 시간이었어요. 우리는 거의 같이 시나리오를 썼어요. 제가 끝없이 아이디어를 꺼내놓았어요. 여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아이로 태어나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녀의 첫 성경험은 어땠는지,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내내 빌리 홀리데이 음악을 들었어요. 그때 제가 빌리 홀리데이를 듣기 시작한 지 5년쯤 되었을 때였고, 완전히 반해 있었으니까요. 결국 영화 <에바>(1962)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빌리 홀리데이를 넣기로 했어요.
빌리 홀리데이는 뭐랄까, 식물과도 같은 가수예요. 그녀는 음악의 바깥에서 존재하고 있는 다른 가수들과는 완전히 달라요. 뿌리를 내리는 식물처럼 그 안에서 살죠. 사랑의 고통과 잔인함, 그녀가 살아냈으므로 알고 있는 것들을 노래로 다시 꺼내놓아요. 그녀 스스로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 그랬을지도.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완전히 뒤흔들고 지나가요. 그렇게 사랑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기억을 환기시켜요. 그 앞에서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노래들 자체가 완전히 첫눈에 반해버리는 과정과 고스란히 닮아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더이상의 것이 필요 없어요. 그 자체로 사랑을 이해하기에 충분해요. 우리가 어떤 노래에 반하듯, 서로가 서로를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스쳐서 지나가버리죠. ‘유혹’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말이에요.
그녀가 다른 가수들과 구별되는 지점을 두고 미국에서는 다들 토치송(Torch Song)이라고 말했어요. 토치, 우리의 심장을 불태워버리는 사랑의 고통, 그걸 꺼내놓는 게 미국 재즈 특유의 어법이었죠. 그게 그녀가 취했던 마약, 술, 삶의 굴곡진 지점들 때문에 더 강조되었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완전히 부서져버렸달까. 약에 흠뻑 취해 있었거나 아니면 금단증상에 시달릴 때였나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서져 있던 시간이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죠.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이니까. 그게 우리를 갈가리 찢고 지나가요. 심장과 영혼이 찢겨나가는걸요. 그 순간을 그저 음악으로만 듣는 데도 고통이 전해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져요. 그런 노래를 불렀던 그녀가 느낀 고통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요. 그래요. 우리는 그 고통이 지나간 흔적을 지켜보는데 그치는 거니까 모두가 그런 고통을 경험할 필요는 없어요. 바로 그거겠죠.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는요. 엑소시즘(악령 퇴치)이 된달까. 생의 고통을 미리 경험해서 쫓아주는 역할이랄까. 그렇게 찢겨짐과 파멸의 가장 극단에 가닿는 사람, 환각과 광기, 고통을 가장 멀리까지 가서 경험하는 사람,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따라다니는데 대체 왜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경험하고 묘사하는 사람, 우리 내면에서 감정적으로 뭔가가 마구 폭발하고, 우리의 존재를 할퀴고 상처내서 우리가 피흘리는데, 그런 걸 대신 경험해주는 역할을 해요. 마치 엑소시즘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예요.
<에바>
배우가 된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걸 받아들이는 거죠. 그 값을 치르고요. 배우가 되어 누리는 만큼의 대가겠죠. 저는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어떤 순간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자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걸 설명은 못하겠어요. 정말 신비로운 과정이죠. 이걸 설명한 단어도 없고, 그 과정도 이성적으로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제가 표현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배우들은 타인에 의해 평가를 받아요. 외모에 의해, 우리가 한번 배우가 되겠다고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우리의 목소리에 의해, 성격으로, 그리고 한순간,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을 관통해서 새로운 누군가가 되죠. 그러니까 아무 역할이나 마구 해서는 안 돼요. 제가 지금 돌이켜 20살의 저를 떠올리면 지금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게 보여요. 20살의 잔 모로는 제가 분명하지만, 더이상 제가 아니에요. 어쩌면 배우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비슷할 것 같아요. 10살에 어땠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 현재의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우린 지금 설명할 언어가 없는 걸 자꾸 말로 하려고 하네요.
하녀 역할도 해봤고, 속물의식에 젖은 젊은 여자 역할도 해봤고, <줄리에타>(1953), <여왕 마고>(1954) 같은 작품들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이미 소화했었죠. 노래도 불렀고, 아직도 그 노랫말이며 노래를 불렀던 생 제르망 데 프레 부근의 바도 다 생각이 나요. 사람들은 저에게 함께한 위대한 거장 감독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상대적으로 좀 덜 유명한(위대한) 감독들과의 작업은 언급하지 않는데 사실 저는 그 모든 역할들을 다 기억해요. 저에게는 감독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다 똑같이 소중했죠.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찍고 나서 저는 루이 말과 함께 <연인들>을 찍었어요. 그때 이미 트뤼포에게서도 연락을 받았죠. 저는 루이 말을 알기 훨씬 이전에 이미 오슨 웰스를 알고 있었어요. 1951년 코미디 프랑세즈에서 만났어요. 그는 나와 함께 작품을 하고 싶어 했죠. 그가 에드워드 7세 극장을 맡으면서, 그는 제가 코미디 프랑세즈를 관두는 김에 <오셀로>(1952) 속 데스데모나를 맡아줬으면 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영화의 성공으로 쉽게 감독들을 만났고, 역할을 제안받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연극을 할때부터 영화 감독들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보러 왔었으니까. 제가 연극으로 시작한 걸 잊지 말아야죠. 저는 사실 영화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우선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많이 보지도 않았어요. 영화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어요. 무대 위 여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고전 속 여주인공 역할을 꿈꾸면서요. 사라 베르나르(여신 사라로 불리우며 빅토르 위고의 뮤즈이기도 했던, 유럽 역사상 가장 길이 남을 전설의 여배우) 같은 그런 전설로 남은 여배우요.
연극은 이미 저희 부모님에게는 너무 험한 예술이었죠.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특히 파리에서 가톨릭의 영향으로(프랑스의 종교 중립은 1905년에 선포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연극배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성당에서 성인이 세례를 받거나 신부님 앞에서 결혼을 할 수도 없었고,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어요. 영화는 너무 새로운 장르라 연극보다도 못한 평가를 받았어요.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그림을 콜라주화한 것에 불과하게 여겨졌고요.
<줄리에타>
누군가는 제가 손쉽게 음악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은 일상이 음악에 둘러싸여 있거나 거의 듣지 않기도 하고요. 음악이 우리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나요? 사실 제가 음악에 방해받을 때마다 놀라고는 해요. 그래도 음악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어요. 천상에서 내려오는 것같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요. 일상에 지쳐 있다가도 갑자기 어떤 음악 하나로 완전히 구원받는 기분이 들고는 하잖아요. 그건 음악이 가진 진실함에서 기원해요. 진실함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어요. 어떤 노래의 가사들은 고스란히 ‘시’가 될 때가 있어요. 그 시로 인해 음악은 더욱 특별해지고 위력을 갖죠.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말할 때 그녀는 마치 시를 쓰듯 그렇게 말했어요. 정말 경이로운 사람이었죠.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매우 놀라운 존재들인 것처럼요. 가장 놀라운 것은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말하는 방식인데, 일상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흔히 사람들은 ‘이게 뭐야? 사실성이 없네?’라고 말해요. 맞아요.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실적임’을 뛰어넘는 말투예요. 예언자와도 같이 초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내밀한 목소리를 들려줘요.
설명을 통해 제가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분명하고, 실체가 있고,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노력할수록 제 내면에서는 감정들이 마구 끓어오르죠. 제가 살았고, 살아낼 것이고, 현재 살고 있는 그 순간의 감정들이요. 다 전해지지는 않지만요. 그래서 망원경이라는 단어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체를 설명하는지도 몰라요. 저는 말하면서 문장을 균형감 있게 프레이징하듯 구성하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써낸 인물들은 그런 걸 하지 않아요. 그들은 인생을 뒤흔든 커다란 위기를 경험하고, 그다음의 위기를 준비하는 듯한 사람들이에요.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그런 사람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해줘요. 사실 우리 내부에는 얼마쯤 다 있는 건데 잘 모르고 지나가버리기 쉬운 걸 발견하게 해주는 거예요. 당연히 우리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메트로나 카페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니까요. 현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들이 우리를 한없이 괴롭게 하고, 고통받게 하고, 생각하게 하죠. 가장 역설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없는 것,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일상적인 단어를 가지고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 산산이 찢어버리고 파괴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자세를 취하고 낯선 구도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위대한 시와 노래와 음악은 그걸 가능하게 해줘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장도 그래요.
저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술가들은 사실 도둑들이나 다름없어요. 도둑보다는 사기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에도 당연히, 사기꾼들이 있어요. 어떤 특정한 설정들이 엄청난 감정들을 가져온다는 걸 사람들을 미친듯이 웃게 한다는 걸 알고 있죠. 설정들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써내고 영화를 찍어요. 안전하게 적당한 구도를 잡고, 편집으로 리듬을 조절하고, 시퀀스를 만들고 이런 영화들이 영화의 수준에 상관없이 쉽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죠. 또 다른 영화는 절박함, 이 시점에 세상에 꼭 나와야 하는 위급함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들이에요. 진정성이 있으니까 결국 통하죠. 이 위급함은 분리할 수 없는 요소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사람들에게는 언뜻 낯설고 덜 매력적이라 관객의 인정을 좀 늦게 받아요. 사기꾼들은 곳곳에 숨어서 “이게 뭐야? 이상해! 이해가 안 가!”라고 말해요. 하지만 장담건대 18개월쯤 지나서 이 사기꾼들이 바로 이상하다고 했던 바로 그 부분을 가지고 슬쩍 다른 방식으로 비틀어 그들의 영화에 바로 써먹는걸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아방가르드함을 두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할리우드의 감독들이 어떤 특정한 시대의 프랑스영화에 홀딱 반해 있었던 건 정말 놀라워요. 당시 아방가르드 물결에 앞장서 있던 영화들을 통해 그 새로운 영토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움이 우리를 신선한 공기로 호흡하게 해줬어요. 아방가르드를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나중에 결국 아방가르드를 차용한 걸 두고 사기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든 우리 스스로를 먹여살릴 이유가 있죠.
만약 어떤 위대한 배우가 엄청난 연기를 하는 걸 본다고 가정해볼까요. 누구든 그걸 보면 연기가 하고 싶어질 거예요. 거기에 깃든 진정성은 숨어 있는 자들의 질투와 폄하로 훼손되지 않아요. 역시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에게 가닿아서 의미 있는 울림이 되죠. 세상에 거짓이 얼마나 만연해 있나요. 누군가 제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저는 상대가 진실하지 않다는 걸 금방 알아차려요. 진정성을 갖기 위해 평생 애를 썼으니까요.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만족감은 사실 배우의 커리어 초반에 시작되어 늘 배우들을 따라다니지만 곧 다른 것들을 알게 되죠. 단순히 우리가 스스로를 타인들의 시선에 노출하면서, 스스로를 보여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다가 아니에요. 어떤 예술이든 장르에 상관없이, 창작에 있어서 깊이가 더해질 때, 수직 방향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탐구하게 돼요. 동시에 스스로를 가로질러서 다른 것들을 찾아가게 돼요. 그러니 나르시시즘은 일차원적인 감정이라 금방 초월하게 돼요.
<모데라토 칸타빌레>
저는 누구나 영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탭들이 필요한 건 맞죠. 예산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쓸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사고, 그 돈을 낼 수만 있다면. 그다음 이미지들에 도전하면 되죠. 만약 당신이 영화를 창조한다는 그 사실에 대한 집착과 폐쇄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렵겠지만요. 영화에서 의미 있는 여성 캐릭터들은 지금까지 위대한 영화의 존재 가치를 더욱 빛내준 여주인공들의 역할과 같아요. 그런데 최근 들어 점점 여주인공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더이상 영화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요. 제가 여배우로서 말하는 건데 아주 많은 영화들이 폭력적인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만들어지니까요. 폭력을 다루지 않는 영화는 에로티시즘에 천착하면서, 여기서도 역시 여성의 역할은 그저 대상화되어 줄어들어 있어요. 영화가 가장 빛나던 시대, 전성기의 할리우드나 누벨바그의 여주인공들은 이렇게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았어요.
[어떤 영화는, 어떤 문장은, 어떤 향기는, 어떤 노래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아요. 영원히 우리와 함께 남아요. 저에게도 집착이 있어요. 영화 감독이 되는 것에 대한 집착,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것에 대한 집착.… 이건 모든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데, 우리는 사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다만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죠. 사람의 육체로 생각해 보면,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는데도, 마치 팔 하나와 다리 하나만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지극히 일부만을 사용하며 살아가요. 그게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요. 타인을 향해 “당신은 이런 것을 잘합니다. 그러니 계속 그것만 하세요.”라고 가능성을 어떤 규격 안에 가둬두려고 해요. 전통적으로 그래왔고 관행이 그렇다고 하면서 다른 건 시도하지 말라고 해요. 대체 왜죠? 왜?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참 어려워요. 영화에 열광하는 건 쉽죠.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할 거에요. 저는 사실 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본능적인 판단을 내려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저는 만나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눈에 보여요. 그들의 표정, 얼굴과 목소리, 가끔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끔찍한 단어들, 그것들이 유래한 어떤 생각들… 그 너머에 놓인 조그마한 어린아이를 보는 거에요.
지나온 쉽지 않은 삶의 흔적들, 어려움과 고난, 극복해야 했던 시험과 같은 순간들이 눈에 보여요. 개별적인 형태는 다르겠지만, 얼마쯤 누구의 삶에나 있었을 그런 순간들이요. 그런 절대적인 순간에는 한 인간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죠. 하지만 그 순간은 지속되지 않아요. 차라리 죽는게 낫지, 제가 사랑할 수 없는 세계 속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거짓과 위선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쉽고, 두려움은 다시 우리의 내면에서 야멸찬 멸시, 타인에 대한 혐오로 바뀝니다. 폭력적인 전환이에요.
저는 정치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맞지 않죠. 그들을 마주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 맞겠네요. 저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고, 정치적인 태도로 함부로 규정되면서 고통스러웠어요. 정치적인 스탠스로 분류되는건 매우 부당한 일이고, 저는 완전히 반대해요. 다들 누군가 제3자를 정치적으로 규정짓지 못해 안달이 나 있어요. 좌 혹은 우, 그 사람의 정치적 스탠스를 분류하고 어느쪽인지 밝히기를 겁박하죠. 페미니즘의 운동의 가장 생생했던 순간에도, 이런 정치의 논리가 개입해 마치 가장 중요한건 전 세계를 둘로 나누는 것이라는 착각을 퍼트렸어요. 그들은 한쪽은 여자 편, 나머지는 남자 편,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들고, 그 갈등과 분쟁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조종하는 거에요. 사회적 계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소득과 사회 계층에 따라 물질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규정지은 다음, 가난한 사람들은 없이 살아와서 투박하고 어리석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사회적 운동을 통해 그들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요.
더 높은 계층에서도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에 있는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되풀이해요. 이런 분류를 통해 각기 다른 개개인의 진실을 파악하려고 드는게 의미가 있을까요?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순간을 경험하더라도, 그가 누구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져요. 사람에 따라 같은 바람을 다르게 느끼고, 같은 색을 다르게 바라보고, 같은 소리를 다르게 듣죠. 개인의 진실은 그가 본 것과 경험한 것으로 규정되고요.
포르노 영화를 보냐고요? 아뇨. 당신은 보나요? 그런 이미지들이 있어야 영화가 팔리니까 필요하다고요? 잘 모르겠어요. 모든 여배우가 조각처럼 완벽한 몸을 가지는 것, 그걸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는 것, 그 육체가 도구 혹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꼭 필요한가 싶어요. 여성의 육체를 관음적 시선으로 화면에 담아야만 그 아름다움이 전해지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온전히 감독이 육체를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만으로도 우리를 전율케 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Querelle> 속 여주인공은 우리의 상상속에서 섹스를 나눈 거라고요.
영화 속에서, 의미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은 지금까지 위대한 영화의 존재 가치를 더욱 빛내주었어요. 그 위대한 영화 속에는 의미있는 여주인공들이 있었다고요. 최근 들어서 점점 여주인공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더 이상 영화 속에서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요. 제가 여배우로서 말하는건데, 아주 많은 영화들이 폭력적인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폭력을 다루지 않는 영화는 에로티즘에 천착하면서, 여기서도 여성의 역할은 그저 대상화된 채, 줄어들어 있어요. 영화가 가장 빛나던 시대, 전성기의 헐리우드나 누벨바그의 여주인공들은 이렇게 소모되지 않았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남초인 영화 현장에 점점 여성 스태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에요. 감독을 꿈꾸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스크립터는 예전부터 여자들이 자주 맡았던 역할이고, 이제는 촬영감독의 제1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는 여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영화라는 장르가 오로지 한 성별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성 인력의 유입이 가져오는 장점이 있어요.
남자배우와 여배우의 차이가 있죠. 여배우들은 끝없이 그냥 영화의 일부로, 오브제로, 객체로 남기만을 바라는 시선이 여전히 있어요. 반면 남자배우들은 감독의 자리로 이동하거나, 영화 제작과 같은 이 장르의 산업적인 측면에 개입하고 그게 허용되고요. 판을 짜고 시스템을 구성하는데 있어 성별이 편중되어있고, 그 편협한 시각에서 여성캐릭터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요. 여자는 마치 남자의 환상을 충족하는 존재, 성욕을 자극하는 존재로만 그려지기 쉽고, 그게 아니면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남자의 주의와 관심을 끌기 위해 같은 여자들끼리 라이벌이 되어 서로 질투와 시기를 통해 경쟁을 벌여요. 상식처럼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해져요. 그건 남성 시나리오 작가, 남성 감독의 시선, 남성 제작자를 거치면서 견고해진 가상의 여성 캐릭터이지, 진짜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여자들이 아니에요. 일상에서 만나는 여자들이 어디 그런가요?
여성의 몸을 갖는다는 건, 환상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에요. 신비로운 몸을 갖고 태어나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건 여성의 역할이지만 신체적 차이일 뿐, 여자 역시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삶을 사는 또다른 존재에요. <줄과 짐>에서 제가 맡은 역할처럼 어떤 남자도 선택하지 않고, 팜므 파탈 혹은 나쁜 여자가 되어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을 두고 마치 위협처럼 여기더군요. 여자는 남자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남편감의 선택을 받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양육하고, 음식을 차리고, 남편을 보살피고, 끝없이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우리가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도요.
만약 여성 감독이 여배우의 얼굴을 담는다면, 여성 촬영감독이 여배우의 몸을 찍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온 전형적인 구도와 시선에서 벗어난 새로운 결과들과 만날 수 있을거에요.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는 없지만 영화 창작자의 성별에 따라 눈에 띄는 차이가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983.4.27. 파리 개선문 부근에서 진행된 잔 모로 인터뷰 중, 씨네21 기사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
처음에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을 연기할 때에는 사실 그 캐릭터 속에 망명해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가상의 인물 속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겨우 깨닫게 되는 거죠.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타인들을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걸요. 결국 배우가 마지막에 가서 드러내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닌 스스로예요. 우리는 그제야 우리가 타인에 대해 행하고 있는 이 매혹적인 일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아주 깊게 통찰하는 것, 이해하고 그 내면까지 온전히 아는 것, 그건 배우인 저에게 가장 중요한 평생의 숙제였어요.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제 앞에 놓여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