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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Oct 04. 2020

무대감독

헤드폰을 쓰고 God Mic 를 쥐면

고등학교 시절 춤 동아리와 함께 새로 시작한 활동이 있다. 바로 연극이다. 춤과 비슷하게 그저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연극 활동은 점점 내게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희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점점 자라면서 완벽한 줄만 알았던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난 계속 방법을 찾아왔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그렇지만 꼭 다뤄야 하는 이야기 - 인종차별, 성차별, 젠더 문제, 소수 문화 등 - 을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연극이라는 매개체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깨달은 뒤로 난 연극에 매료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본격적으로 연극이나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무대감독 (Stage Manager) 일이었다. 시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공연 프로덕션 전체를 빠짐없이 알고 있어야 했고 디자이너, 감독, 연기자들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중심이 되어야 했다. 말을 잘해야 하며 보고서를 잘 작성해야 하고 꼼꼼해야 하며 다방면의 리더십이 필요한 일이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일, 공연이 시작한 후 끝날 때까지 음향, 조명, 비디오, 무대 장치 등 모든 큐들이 제때 일어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해야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에서 온 1학년 국제학생이 맡기에는 어쩌면 무리였을 수도 있다.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꼼꼼하고 성실해서 보고서 작성, 스케줄 조정, 이메일 소통 등 행정적인 일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진행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서는 서툰 점이 많았다. 무대감독 일을 하다 보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많고 사람들을 컨트롤하고 휘어잡는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많다. 그중 하나가 공연 오픈 전 2주간의 테크 리허설 (Technical rehearsal) 때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음향, 조명, 그 외의 기타 무대 요소들을 모두 점검하고 실행하는 기간인데 이때 무대감독은 디자이너들이 충실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연기자들을 관리하고 전체적인 스케줄을 총괄한다. 그래서 무대감독에게는 마이크가 주어지는데 이것을 미국에서는 “God Mic”라고 부른다. 신과 같은 마이크라는 뜻이다. 무대감독이 이 마이크를 사용해서 하는 말은 무조건 경청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나 감독이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싶을 때 무대감독이 마이크를 통해 연기자들에게 연기를 잠시 중단하라고 하면 연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대기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해야 하는 순간이 많은 무대감독은 유하고 둥글둥글한, 어쩌면 좀 소심한, 성격의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대만큼 사람들을 잘 다루지 못하거나 사소한 실수라도 할 때에는 스스로를 많이 질책하곤 했다. 


1학년 1학기,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 무대감독 경험 후 한동안 난 다시 God mic를 잡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어졌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극 전공해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 고생길이 훤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서 난 잠시 연극을 접고 다른 과목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난 계속 연극이 그리웠다. 심장 쫄깃한 순간에 느끼는 그 희열을 난 잊을 수 없었기에. 그래서 브라질에서 돌아온 다음 난 다시 무대감독 역할을 맡기로 결정했다. 감독님이 먼저 제안해 왔을 때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난 어느새 그 제안을 수락하고 있었다. 또 실수를 많이 할까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브라질에서 있었던 그 마음가짐의 변화 이후 무대 감독도 한 가지 스타일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3학년, 나는 러시아의 유명한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라는 작품의 무대감독이 되었다. 감독님이 특히 열정적인 분이셔서 그럴까, 지금까지 학교에서 했었던 공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연극을 기획했다. 무대 위에 철근을 사용해서 2층을 만들었고 무대 아래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라이브 영상과 연극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였다. 당연히 1학년 때 했던 연극과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했고 신경 쓸 일도 많았으며 팀원의 수 또한 많았다. 이와 동시에 듣는 수업들 또한 어려운 과목들이 많아 난 매우 바쁜 한 학기를 보냈다. 테크 리허설 때에는 주말에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연극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 좋았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그 순간마저도 즐겁다니. 또한 예술적으로 딱 들어맞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 또한 잊을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나는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연극을 내 삶에서 떼어낼 수는 없겠구나. 


그 이후 난 공식적으로 연극을 복수 전공으로 등록했다. 심리학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내 온 정신은 연극에 쏠려 있었다. “이 전공을 해야 돈을 많이 벌어,” “이 전공이 앞으로 전망이 좋대" 등등 쏟아지는 주변의 의견을 흘려보낸 채 온전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한 선택. 이로써 내게는 꿈이 생겼다. 아, 꿈이 생겼다는 건 참 좋은 것이더라. 삶의 목표가 생기면 내가 내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가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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