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사각 Sep 27. 2020

Epiphany - 한 순간의 깨달음

어느 밤 브라질의 거리


Epiphany. 직관, 통찰이라는 뜻. 더 정확히는 “어떤 것의 현실이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갑작스러운 깨달음.” 보통 이 epiphany는 사소하고 흔한 일로 인해 일어난다고 한다. 내 epiphany 도 그렇게, 상상도 못 한 곳에서,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에 일어났다. 


국제과정 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어떻게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대학을 갔다. 미국이라는 낯설면서도 정겨운 땅에서 나는 내게 쏟아지는 수많은 기회를 잡으려고 했고 그중 하나가 브라질에 가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학교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해 주어 나는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한 가지 할 수 있었는데, 나는 Movement Exchange라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Movement Exchange는 말 그대로 움직임, 즉 춤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 활동이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그 나라의 고유한 춤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춤과 여행을 모두 좋아하던 나는 냉큼 그 기회를 잡았다. 


사실 그 과정에서 아무 걱정도 문제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브라질이라는 낯선 곳, 특히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곳에 간다는 사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좋은 반응을 듣지 못한 것도 내가 주저한 이유 중 하나다. 내 부모님께서는 항상 일관적으로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결정하며 사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그 말속에 “나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 숨어있는 것 같아서. 특히 아빠는 브라질이 어떻게 위험한지 나를 앉혀 두고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아빠와 크게 싸웠다. 내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 같아서 아빠한테 거의 화를 내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계속 이렇게 하니까 내가 자존감이 없는 것 아니냐고 울며 화를 냈다. 


순간 당황하던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잠깐의 정적 이후 아빠는 되려 화를 더 내셨다. 


“자존감? 네가 뭐가 부족해서 자존감이 없어? 응? 부족할 거 없이 지금까지 다 해줬건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셨을까 싶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자존감이 없다는데. 그렇지만 자존감은 내가 스스로를 보는 이미지이고,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해서 그런 걸까, 난 진심으로 그때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까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난 더 울며 난리를 쳤고, 아빠는 그런 나를 봐주지 않고 더 화를 냈다. 


우리 가족 싸움이 항상 그렇듯 불같던 싸움도 끝이 났고, 며칠 간의 냉전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화해를 했고, 나는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배웅을 받으며 브라질로 향했다. 


브라질에 도착해서 나는 10일간 함께 생활할 팀원들을 만났다. 각자 다 개성 있고 활기차고 매력 있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친분을 쌓아갔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5~6일쯤 지난 어느 밤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8명 정도 되는 인원이 왁자지껄 웃으며 거리를 걸었다. 몇몇 친구들이 아주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나를 보더니, “Why are you so quiet? (넌 왜 그렇게 조용히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가슴이 찌릿했다. 또 그 소리. 살면서 지겹게도 들었던 말이었고 내가 무척이나 싫어했던 말이었다. 어렸을 때는 조용한 게 미덕이었다. 그러나 점차 커가면서, 특히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문화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내 ‘조용함'은 콤플렉스가 되었다. 가끔 가만히 남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으면  “넌 왜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물어보는 게 “넌 의견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싫어서. 바뀌려고 열심히 노력해도 크게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그 거리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난 두려웠다. ‘날 비난하고 있는 거야...’ 점점 작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 말을 한 아이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 웃음에는 단 조금의 악의도 없었다. 그러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저 아이는 날 비난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기에 그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다. 그 순간, 누가 뒤통수를 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지. 그게 뭐 어때서? 이런 내가 싫어서 지금 난 저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아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눈을 찌푸리곤 했다. 나는 지금 거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저 친구들이 재미있고 좋았지만 딱 그만큼이었다. 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Epiphany.
내 모습 중 바꾸고 싶은 점이 있다고 해서 내가 남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난 내가 좋다. 그리고 지금 저 친구들도 이런 내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주고 좋아해 주고 있던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정말 평범하고 소소한 하루의 일부. 그 한순간. That was all it took.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니 정말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뭐 어때, 이게 나인데. 이런 내 모습이 싫어서 나를 밀어내면 그건 내 손해가 아니라 상대방 손해라는 것. 생각의 전환이라는 그 작은 날갯짓이 큰 회오리가 되어 나를 휩쓸었고,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나는 웃으며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 후로도 난 수많은 상처를 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한 가지만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 상처를 주는 사람이 내가 되지는 말자고. 내가 날 괴롭히지 않으니 난 더 이상 쉽게 아프지 않았다. 어떤 상처라도 온전히 보듬어줄 내편이 생겼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무대 위, 그 조명 아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