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더 진짜 같은 얼굴들
기술과 문명은 구체적 개인들의 얼굴과 다를 바 없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들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그 얼굴들은 우리가 익히 바라보고 추측하던 개인들의 얼굴들보다 일면 더 개별적이고 인간적이다. 다시 말해 더 진짜 같다. 어디든 분명히 있을 것 같고 분명한 생명의 증거 자체로서의 얼굴이다. 나는 감정의 깊이도 얕아서 이런 사진들을 보고도 금방 정이 들어버릴 정도로 '인간적' 친밀감에 빠져버린다. 처음 이 가상의 얼굴을 접했을 때(이 기술의 결과물은 처음부터 완벽했다) 느낀 것은 배신감이었다. 너무도 진짜 같아서 진짜와 섞어 놓으면 오히려 진짜를 가짜라고 할 만큼 완벽한 개인이었기 때문이다. 경험과 느낌에 의한 개인의 인상을 예측하고 그 과거와 현재를 추측해보는 일을 즐기던 나로서는 이 허상을 두고 너무도 많은 생각이 떠올라 끝내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건 여러 개인들의 부분적 특징들을 AI 기술을 이용해 아주 자연스럽게 조합해서 구체화한 것이다.
이목구비와 외모의 구성 인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것이고 기계는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조합한다. 딥 러닝 기술은 사람이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이미지를 긁어서 끊임없이 학습한다. 핵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아니 디테일이 핵심이다.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사실성을 배가해준다. 사실성의 핵심에는 진짜 같은 어색함도 포함된다. 웃음도 조금은 어색하고 어쩐지 수줍은 표정, 약간은 흐트러진 이목구비의 균형, 사실적으로 핍진한 주름살이나 수염자국 같은 것들이 보는 사람에게 그것을 진짜로 보이게 만든다. 사실을 흉내 내는 극사실성이다. 이전의 인공적인 얼굴(그래픽이라 불렀다)이라 하면, 완벽하고 아름답고 회화적인 것들이어서 거부감도 느낌도 구체적이지 않았고 우리와는 서로 멀찌감치 있는 존재들이었지만, 지금의 인공적인 얼굴의 인상은 여기서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법한 얼굴이다. 어쨌든 사람의 얼굴이 지니는 대단한 의미와 경이감에 뒤통수를 때리는 만행이라 하면 과장된 것일까. 기계는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 안 된다는 배신감이 아니다. 이제 사람의 얼굴이나 인상을 두고 그 경이로운 피조물 앞에서 그 존엄한 유전자와 개별성에 놀라워하던 자발적 느낌이 한낯 착각이거나 웃음거리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아무도 그런 배신감에 관심 없을지도 모르지만, 인류애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사람의 얼굴이라는 우주가 지니는 깊이와 가치는 컴퓨터 게임 같은 가상현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개인을 믿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사람의 얼굴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인간의 가짜 얼굴과 신체를 이용한 업태 확장에 열심이다. 2~3년 전 이 기술을 발표한 아르헨티나 디자인업체 '아이콘스 8'은 당시 성별과 연령, 인종, 문과 머리 색깔, 헤이스타일, 표정 등 조건을 입력하면 바로 가공된 인물의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인간 모델이 맡기에는 부끄러운 상황이나 형사 소송에 연루될 수 있는 자료나 광고물 등에 이런 인물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버의 필립 왕이라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만든 ‘이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This Person Does Not Exist)’라는 사이트도 주목받고 있다. 그 사실성이 흡사 사진을 살짝 잘 못 찍은 것처럼 강한 햇빛 아래서 코와 볼 아래 짙은 그림자가 져 있다거나 어중간하고 어색한 순간을 담는다는 면에서 진짜를 흉내 낸다. 완전하게 웃고 있지도 않고 정갈한 피부 톤으로 균형 맞는 이목구비를 지니지도 않았고, 비대칭과 어정쩡한 수줍음까지 흉내 낸다. 가상을 사실처럼 포장하는 기술의 구체성은 어긋나고 어색한 것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이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귀엽고 천진한 표정의 아이 사진을 볼 때는 참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이, 감동과 허위에 대한 울분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나는 왜 사진일 뿐인 이런 사진을 보고 과잉 반응하는 걸까 하는 자조감도 들었다.
이제는 얼굴은 물론 개별적 특징을 지닌 전신사진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사람의 몸은 두 번째 표정이라 할 만큼 개별성의 중요한 지표다. 이제는 인터넷에 '가상 직원을 구입'하라는 광고가 뜨고, 담당 직무별로 가상 직원 목록과 사진을 올려놓았다. 가상 인물의 얼굴뿐 아니라 정체성과 역할까지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낸다. 이 가상인물들은 인터넷이나 유튜브 동영상 같은 데 등장해서 '고용주'들이 시키는 역할에 맞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사람이 상상만 하면 시스템이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상상을 넘어선 결과물까지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고유한 가짜는 전화를 받는 일과 홍보와 안내(아직까지 초보적이라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물론 실제로 고객을 대하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충분히 많은 인간의 일을 가상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가상이 대체할 것이다. 기술 발달로 인한 역할의 분배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인으로서의 고유한 '그것'에 대해 생각이 복잡해진다.
가상도 그 부분적 이미지는 거의 모두 실제 인물에서 따왔다. 그 이목구비는 실재하는 누군가의 이목구비고 원래의 얼굴에서 분리되어 다른 얼굴의 부분들과 합성되고 고도로 정밀한 프로세스를 통해 실제 얼굴처럼 조합된 것이다. 그 사소한 재료인 이목구비의 주인조차도 가상 인물 사진의 이목구비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실제 인물들의 이미지들을 기계적으로 입력하는 작업을 '학습'이라고 부른다. 휴식 시간도 식사 시간도 필요 없는 기계가 잘하는 것이 그런 학습을 쉬지 않고 '깊게' 하는 것이다. 그 조합의 다양성과 실제성(어딘가 있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얼굴)을 만들었을 것이다. 눈의 사진에 대한 초상권이나 코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 따위를 말하는 것은 의미 없을 것이다. 만든 사람들은 몰래 타인의 이목구비를 이용했다고 해서 그게 사회적으로 책임질 일이거나 도덕적으로 미안한 일이란 인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문제 삼자는 발상도 타이밍이 맞지 않다 할 만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개발자들의 입장에서 AI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개발자들이 그 시스템의 오류나 부작용에 따른 책임조차 AI에게 미룰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밀한 체계의 책임이 발생한다면 개발과 운영 선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책임마저 인공지능이라는 시스템에 전가할 것이다. '기계적 오류'라는 용어로 잘못의 책임을 회피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앞으로 신기술이 초래할 모든 재앙들은 신기술 그 자체가 일차적으로 책임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적'이라거나 '친근하다'는 식의 표현이 공허해질 뿐이다. 오로지 그것을 자연스럽게 녹이고 붙이는 인공지능이라는 아주 촘촘하고 신속한 알고리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당분간 지켜봐야 할 뿐이다.
이런 회사들은 차세대 딥러닝 알고리즘인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기술을 활용한다. 번역 용어가 더 어렵다. 생성적 적대 네트워크라니? 한 시스템이 사진 등을 이용해 가상 인물을 생성하면 다른 시스템이 원본과 비교해 허점을 찾아내며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낸 방식이라고 했다. 이 기술은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는 가짜 뉴스를 비롯해 유명인의 합성 포르노 등 논란을 일으킨 딥 페이크(Deep Fake)를 구현해낸 알고리즘이기도 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고 한 배우 브루스 윌리스도 젊고 탱탱한 모습으로 다시 영화에 '출연'할 수 있게 됐다.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상상도 하기 힘든 종류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깊고 구체적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여기서 언급하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콧잔등이나 이마를 보고 드는 친숙하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든다거나 해도 어쩔 수 없다. 매트릭스처럼 기계가 우리의 등과 목덜미에 빨대를 꽂지는 않았지만 가상의 빨대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오래전부터 꽂혀있다. 이제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사진까지 사진가 이름을 포함해서 내린 명령어는 그 사람의 다른 사진들을 모방하고 조합해서 마치 존재하는 풍경의 사진인 것처럼 만들어준다. 무엇이든 상상하면 금방 만들어진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실제의 아우라가 없다고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실제에 못지않은 가상 위에 실제와 다를 바 없는 아우라까지 덧씌워진다는 것은 좀 섬뜩할 때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쉽게 믿어버린다. 아우라란 것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 진짜와 가짜를 분석한 후의 판단이고, 분석이 틀렸더라도 진짜라고 생각하면 진짜로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다. 핍진하고 개별적인 요소를 조합해 만든 인간의 외모는 얼마든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을 수 있다. 애초에 아우라는 인간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고 그 정도 착각이야 쉽게 유발되는 것이니까. 이제 진짜와 가짜를 시시비비처럼 가리려 하는 일은 더욱 무의미해졌다. 진짜로 확인되는, 우리 주변의 진짜들에게 마음을 쏟고 잘하는 수밖에. 본업과 무관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에 대한 공감을 선별해 적용해야 할까 하는, 별 소용없는 고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