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사진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리 불리는 것도 반갑지 않다. 그런데 나를 그리 부르는 사람이 있다. 아주 가깝고 존경하는 선배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그리 소개했다. 내가 마땅히 드러낸 작업 성과도 없고 무슨 일 하고 다니는 지도 알 수 없었을 테니, 그 선배는 나에 대한 최대한의 성의와 애정으로 그리 불러줬을 것이다. 직전에 어느 기관과 협업해서 낸 사진집이 얼핏 '여행사진'으로 불릴 만한 것들이었고 그 사진들이 타국에서 찍힌 것들이니 그리 보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가 아닌 곳은 어디든 여행지니 말이다.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위선이다. 문제는 나의 평소 자세였다. 무력하고 무위하게 놀고 뒹구는 자를 사진가라고 불러주니 그것 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여행사진가'라고 불리거나 불리고 싶어 하는 이들을 폄훼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내가 사진으로 가 닿고자 하는 세계가 여행의 기록이나 감흥의 표현으로서의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뭔가 나의 세계가 타인에 의해 규정되어버린 듯한 피해의식 같은 것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게 무슨 상관 이겠는가. 쉽게 이름 지워지는 것들 대부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 이름은 몇 가지 측면에서 나를 자책하게 한다. 내가 사진가라고 말하면서 살아온 것에 비해 사진으로 해 놓은 것이 별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속으로만 틀어 안고 드러내 보인 것이 없었다. 가끔 보여주는 사진들이란 것들이 길거리에서 찍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억이 되기 전 부스러기들 뿐이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 엄밀히 나는 사진으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여행'사진가'라고 불리는 것만도 고맙고 부끄러울 처지다.
그럼 여행사진이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정작 여행 가서는 사진을 열정적으로 찍지 않는데 말이다. 지금은 출장이 아닌 여행이란 게 대부분 가족들이랑 같이 가는 것인데, 그 기분 그 자리에 같이 가고 함께 있다는 게 좋아서 그다지 사진으로 붙들거나 내 감성을 기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는다. 사진이란 간혹 찍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찍어주고 찍고 잘 논다. 오히려 아이폰으로 툭툭 찍은 사진들이 내 것들보다 감각적이고 놀랍다. 옛날에 흔히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며 사진을 열심히 '박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는 듯 엄청 많이들 찍어댄다. 맞는 말이다. 사진만 찍다 왔기 때문에 남는 게 사진 밖에 없을 수 있다. 풍경도 사진 속에 있고 음식도 사진 속에 있고 숙소도 사진 속에 있고 추억도 거기 있다. 모든 여행이 사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기념되고 기억된다. 인생 자체가 사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말은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건 이제 핸드폰 속이다.
시베리아 벨로고르스크 역, 2016
경험이 없고 기억나는 게 별로 없는 여행, 사진만 넘쳐나는 여행, 따라서 의미를 찾기 어려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의미란 반드시 말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여행이란 반드시 어떤 의미를 수반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찍은 사진은 넘치고 특별한 기억은 없고, 그냥 출사를 다녀온 셈이다. 사진을 뒤져 볼 때마다 생각은 나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래서 인간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남의 여행까지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어려운 기회를 만들어 먼 데 까지 갔다 왔다면 이전의 자신과 뭐든 달라진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아니다, 내가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행사진'이라 부르는 것은 사람들이 여행 가거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직업적으로 열심히 찍어서 보여주고 다시 사람들을 여행 가고 싶게 만들 만한 수많은 사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행자의 입장에서 사진을 많이 찍으면 소유욕을 일부 충족시켜 주겠지만 이후에 대부분의 감각 기억은 사라지고 멋진 사진만 남아 사소하고 구체적인 경험들도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존경하는 소설가 김영하는 TV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에 나와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풍경들을 글로 묘사해 보라고 했다. 이른바 '말 그림'이란 것이다. 글이란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것들이 몸을 통해 정제되고 구체적으로 감각되는 것들을 인지하고 추상한 이후에 나온다. 언어화하면서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듣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는 여행지의 어떤 장소에서 나는 소리를 녹음해 온다고 했다. 그가 녹음해 와 틀어준 일본 지하철역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다른 출연자는 "일본에 와 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요즘 흔해진 고화질 동영상을 틀어주었어도 '일본에 와 있는 기분' 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감각 정보들은 집중과 감정을 방해한다고 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말해버리고 관객에게 몰입하고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본의 장면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썼던 이야기와 상통한다. 보통은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기념품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여행의 기술』에 썼다. 대신 그는 그림을 그려 보라고 했다. 그림은 생명의 근원과 현재를 만지듯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사진 하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너무 많이 찍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사진이 무분별한 수집의 도구로 남용되는 것은 좀 불편하다. 사진이 나를 끌고 다니는 여행은 여행마저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낯선 곳에서 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나 생명과 대지의 어떤 이야기, 빛과 시간의 말이 보이는 순간에 드물게 카메라를 든다. 게으르단 얘기다. 물론 찍고 싶은 건 그냥 찍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무엇이'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가에 더 집중해 왔다. 다른 관점도 생각한다는 뜻이다. 어렵게 간 여행의 의미를 내 몸의 감각에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그나저나 여행 간 지 오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