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과 함께 사진 찍다
사람은 평생 보아 온 자기의 얼굴에서 스스로의 과거를 함께 본다.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보다는 힘들고 아팠던 과거일수록 더 절절히 보일 수 있다. 온전히 화해하고 놓아주지 못한 과거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도 가장 아끼는, 그러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옛날 사진 한 장 가져오시라 해서 그 사진을 들고 지금의 모습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가장 꽃다웠던 시절 사진들에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 사진을 가져오신 분들도 있었고 단 한 장을 고르기 어려워 서너 장 가져오신 분도 있었다. 아주 작게 찍혀 얼굴이 잘 분간 안 되는 사진이지만 내 인생 가장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시절 사진이라 이것을 들고 찍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불러오는 것은 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기억들이다. 누구와도 함께 말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누구도 대신 말해주지 않는 나만의 기억. 사진의 이야기는 사진 안에도 사진 밖에도 있다.
사진에는 대단한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편한 이야기 나누고 사진 찍고 보고 놀았다. 찍은 사진들을 만들어 가서 나눠 드리고 손으로 만지고 보고 이야기했다. 사진 한 장에 쉽게 담겨버린 수십 년 시간에 대해, 그 시절 사진 한 장의 의미에 대해, 젊었던 시절의 설렘과 두려움에 대해,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나간 일들에 대해. 그러다 보니 사진은 또 관계를 만들어주고 과거를 현재에 포함시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보이는 것 뒤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불려 나왔다.
지금의 모습 속에는 우리의 지나간 시간과 과거의 일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 손 닿지 않는 먼 시간으로서의 과거, 좋았던 기억뿐 아니라 잊고 벗어나고 싶은 힘들었던 과거들이 모두 지금의 내 속에 있다. 그것을 아는 것과 느끼고 인정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서 해소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사진은 여러 기억들을 직접 대면하게 해주기도 하다. 오래된 사진을 손에 들고 찍은 사진 속 편한 웃음에는 지난 시간과 손잡고 화해할 수 있는 관용이 보였다. 잘 찍거나 잘 나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분들도 이제 잘 안다. 우리는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모습과 가본 적 없는 장소에 대해서도 내 일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 각자 따로 견뎌온 세월이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건너온 시간과 기억의 닮아 있음에 공감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진을 보고 만지고 웃지만 사실 사진도 우리를 만져주고 웃게 하기도 한다. 특별히 무슨 말을 들려주거나 가르침 따위를 주지 않아도 우리를 어루만지는 그 손은 우리 얼굴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닿아 위로해 주는 것이 있다. 말보다는 느낌으로 알게 된 것들이 많은 시간이었다. 수십 년 만에 소풍 나간 가을날 오후 어른들의 빨갛고 노란 모습들이 영월 산골짜기 단풍보다 눈부셨다.
- 영월군 시행 폐광촌(상동 꼴두바우) 거주민 자서전 출판 프로젝트 『내 인생, 책 한 권을 낳았네』수록 작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