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모든 것들이 천천히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3년 만에 청소년들과 해외를 나갔다. 지난해에는 온라인으로 사진 수업을 했고 비대면으로 사진을 제출받아 고르고 어렵게 사진전을 했다. 올해는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국제 청소년 사진교실을 열었다. 유네스코와 한국 정부가 공동 설립한 긴 이름(줄여서 아태교육원)의 교육기관에서 해마다 외국 교육부처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다. 나는 이 행사에 다른 사진가 두 분과 함께 7년째 마스터(말하자면 강사)로 참여했다. 그곳도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분주해지고 있었고 학생들은 더 분주하고 발랄했다.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준 운전기사는 지난 2년 반 동안 집에 있었다고 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막막하고 눈물겨운 날들을 지나온 터였다. 유명 관광지 해변 마을의 거리에는 일찌감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떠들썩했다.
우리나라 학생 여덟 명에 발리 학생 스무 명이 함께 공부하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학생들 중 다수는 놀랍도록 재미있고 재치 있는 사진들을 찍어왔다. 3일째는 "내 자리와 눈높이를 옮겨가며 사진을 좀 더 찍으라"는 말 정도만 해 주었는데 그날은 더 사진이 좋아졌다. 딱히 그 말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약간의 느낌(혹은 자세)의 변화 만으로 사진의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윤기가 돌았다. 금방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흡수하는 능력은 한참 때인 그 나이의 식욕처럼 왕성했다.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찍고 잘 놀았다. 사진 전시를 앞두고 사진들을 고르면서 다시 놀랐다. 4년 전 베트남 다낭에서 발견한 그 천재 고등학생 사진가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있다. 그 학생의 사진은 한 장 한 장이 허투루 찍히지 않았고, 대상을 대하는 자세가 당당하면서도 겸손했고 사진 앵글은 꽉 차 있었다고 썼다. 그 수준의 학생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사진에 대한 수준을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어떤 학생의 어떤 사진들은 내가 찍어도 그만큼 담아낼 자신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사진들이 많기까지 했다. 몇 년 사이 천재가 흔해졌다. 사진적 표현력은 굳이 사진이라는 단어를 전제할 필요 없이 그들에게 모국어에 다름없이 된 것 같았다. 말 잘하는 아이와 말이 서툰 아이들이 있듯이 사진에서도 그런 정도였다.
그들은 오히려 카메라라는 기계에 서툴렀다. 집에 카메라가 없는 학생들도 있었다. 옛날(이야기해서 미안)에는 작은 디카 하나 씩 있는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굳이 카메라를 살 필요 없어서 카메라가 없는 집들이 많아진 것 같다. 저간의 이유로 카메라를 가져오기 곤란한 학생들은 주최 측에서 대여해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많은 학생들이 감도와 노출이나 촬영 모드( 조리개 우선이라든가 셔터스피드 우선, 프로그램 모드) 같은 게 뭔지 몰랐다. 처음에 할 일은 사진의 내용이나 의미보다는 기계 다루는 법과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루쯤 지난 뒤부터 대부분 학생들은 카메라를 들고 '날아' 다녔다.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서로 보여주며 커왔다. 카메라는 그냥 도구 하나 바뀐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학생들은 카메라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들고 그들 고유의 발랄하고 아름다운 사진들을 찍으며 뛰어다녔고 오히려 그들을 지켜보면서 배우는 게 많았다. 상투적인 찬사가 아니라 익숙하거나 낯설거나 세상에 다가서는 데 주저함이 없고 관계에 대한 걱정이 없는 그 자세가 부러웠다. 내 기준대로라면 그들은 대부분 이미 천재였다. 걷기 시작하면서 말을 배우듯이 사진을 배워왔다. 그저 말하듯이 사진을 했을 뿐이다. 다른 국적의 아이들이 섞여서 서로 찍어주기도 하고 서로의 사진 작품의 소재가 되어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야 늘 인스타용 사진이건 뭐든 서로 찍고 찍히고 해 주었겠지만, 어쨌거나 정색하고 찍어야 되는 순간도 있을 사진들에서도 그러고 있었다. 그 사진이 말 그대로 작품이 될 만한 것들이 많았다. 가느다란 콧수염을 기른 라마는 넋 놓고 웃다가 찍힌 사진이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보였다. 사진을 리뷰하고 해설해 주는 강의 시간에 그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내 해설이 웃겨서가 아니라 사진에 찍힌 친구의 모습만 봐도 웃었다. 덩치 큰 곱슬머리 아리는 늘 웃고 다녔는데, 새벽 촬영에 늦어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왔다. 그 장면을 발견하고 찍은 여학생 아난다의 작품이 돼주었다. 물론 큰 웃음도 줬다. 아이들은 사진 속에서도 서로에게 농담이 되어주고 있었다. 다른 언어의 사용자들이 공통의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체계와 소통의 방식이 다를 뿐 사진이 언어의 요소를 대부분 갖춰가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느꼈다. 나는 찍힌 학생들에게도 "좋은 사진 만들어 줘서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발리, 2022
발리는 2009년 가족 여행으로 방문한 적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13년 전 그때 우리를 안내해 줬던 가이드 수디를 만났다. 서툰 한국말로 우리를 안내해 주던 수디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 할아버지라고 불려도 될 정도의 나이 지긋한 외모였지만, 13년 전과 똑같은 전통식 옷차림에 두툼한 유리 안경과 차분한 저음의 서툰 우리말,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도 나를 알아보았다(이름까지 기억하진 못했지만). 하루는 학생들과 발리의 명소를 돌아다니면서 사진 촬영을 했는데 그가 장소 안내를 맡은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조력자가 한국말이 되는 가이드를 찾다가 그를 섭외했을 것이다. 그도 반가워했고 나는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이 얹혀 그가 더 반가웠다. 지난 5년 동안은 한국말을 거의 쓸 일이 없어서 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수디는 원래 영어 가이드 전문이고 영국식 발음의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고 한국어도 그럭저럭 좀 했다. 그랬던 그가 한국어를 쓸 기회가 없어 쓰지 않았더니 거의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도 지난 2년 넘도록 고달프게 살았다고 했다.
사진 리뷰 수업을 하면서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나도 수디처럼 쓰지 않고 지내던 말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상의 말은 건재하지만 사진의 말들이 연결되지 않았다. 말로 다가서지 말고 몸으로(여기서는 마음으로라는 말과 동의어다) 느끼고 다가가라 말하고 다녔다. 나도 내 방식대로 사진 찍고 보이는 대로 느끼면서 그것을 언어화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내 사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였다. 타인의 사진을 앞에 두고 그것이 시각적으로 의미하는 것,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마음속의 바람 같은 것들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도 내 일이었는데, 그것을 어느새 잊어버린 것이었다. 말도 쓰지 않으면 당연히 둔해진다. 오히려 말할 수 없는 느낌이나 그것에 몸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 번 배우면 잊히지 않는 자전거 타는 요령처럼 몸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생계와 사진을 고민했지 사진의 말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구나' 하는 허탈한 깨달음이었다.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 학생은 아주 감각적이고 섬세한 눈을 가졌다" 라거나 "사람에게 다가가고 사진 찍는 일이 수줍어서 얼핏 사진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수줍음이 사진에 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이런 사진은 작지만 차분하고 정갈하게 느껴진다." 정도였다. 말이 공중에 부서졌다. 물론 학생들은 칭찬 만으로도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만 뭔가 근원에 닿은 이야기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사진이 품고 있는 본질적 관계라든가 이야기에 대한 상상 같은 여러 관점에 대한 말은 머릿속에 맴돌기만 할 뿐,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도 수디처럼 한국말을 잊어버렸다.
발리, 2022
그런데 이 젊은이들에게는 사진에 대한 친절한 말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찍은 사진들을 서로 보여주고 웃고 감탄하고 하면서 그 자체가 모국어인 사진 만으로('언어는 달라도'라는 단서가 무색할 정도로)도 감정과 언어의 교류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사진을 커다란 화면에 띄워놓고 어떤 부분을 확대만 해줘도 깔깔대며 좋아했다. 말을 잊은 선생만이 당혹스럽고 외로웠고, 또한 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진가는 사진과 더불어 사진에 대한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오래 쉰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에 대한 말이었다. 우리 세대는 디지털 이주민이면서 사진을 하나의 다른 언어로 관계 맺고 사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이면서 사진을 모국어로 살아가는 세계시민(그러고 보니 이건 주최 측 사업의 기본 모토다)이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사진처럼 시각정보로 소통하는 것도 모국어다. 제2모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