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으로 말에 앞서 그냥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어울리는 단어나 표현을 떠올리기 위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이 소리일 수도 있고 형태일 수도 있고 촉각일 수도 있다. 직관은 오래 축적된 감정적 경험들이 마음의 기저에 자리 잡아서 언어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드러나는 정신 반응이다. 의식의 깊은 곳에 숨어 있어 쉽게 드러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수면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 감각과 그 주변의 것들이 무의식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담당 기관이나 보관 장소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의 작용과 표출 양상에 따라 심리학자들이 구분한 것이다. 그것이 엄밀히 어떤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언어로 정돈되는 과정 없이 '나도 모르게' 알아채는 것을 직관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직관은 의식 되는 것과 의식 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오는데 후자가 아마도 무의식일 것이다. 기억의 깊은 곳에 숨어 있었거나 감각을 동반해야 드러나는 기억들 중에 쉽게 언어화 되지 않는 것들이다. 심미안이란 것은 직관적이며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이 천천히 언어화 되는 과정의 능숙함이다. 오랜 시각적 경험은 말로 환원되는 기억이 아닌 무의식 속에 축적되고, 모르는 사이 우리를 바꾼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무의식에 스며든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 생기고 쌓여 있다. 언어와 직관은 때로 합심해서 우리를 '볼 줄 아는 인간', 즉 성숙한 인간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인간의 뇌 속에 의식과 무의식, 지식과 감정과 직관을 담당하는 부서가 각각의 방에 분리되어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안목이 높아지는 것은 보는 수준이 높아지는 것일 뿐 아니라 관점이 입체적으로 다양해지는 것이다. 감각 중에서도 여러 감각, 생각 중에서도 여러 차원의 생각들이 합심하는 것이다. 인간도 의식도 총체적이지 부분적 인과관계에 의해 능력과 개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과 세상의 진실들에 대한 안목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다. 완성된 개별체로서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형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에서도 전경과 배경, 주역과 조연 등등을 나누고 그 역할을 논하는 현학적 태도로 접근하고 싶어한다. 분석하고 규정해 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실체에 다가간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히려 외형적 요소들에 집중할수록 보지 못하고 무시하게 되는 중요한 영역들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앞에 두고 지금이라면 이렇게 찍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진만 두고 본다면 이보다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미련이다. 그때는 그때의 내가 바라본 대로의 과거로 남아있는 것이지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것은 과거가 아닌 과거에 대한 가정법 문장이다. 바라본 방식 그 자체도 과거의 부분이라는 것을 쉽게 잊는다. 한편으로 사진은 그때를 지금의 내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지금의 나는 그때로 건너가지 않고도 나의 시선을 과거에 투사하고 과거의 시각적 사실 위에 현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 기억과 유사하다. 기억은 되살릴 때마다 머릿속에서 재편되고 가공된다. 이것을 회한이라고도 하고 상상이라고도 한다. 회한이란 달라진 시각이 과거 자체를 다르게 만들 수는 없다는 측면이고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의 차원에서는 상상의 렌즈를 통해 다른 모습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사실을 바꾸지는 못해도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다.
사진은 직설이거나 직유인 듯 보이지만 좋은 사진에는 무엇을 지시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그 자체로 이미지인 은유도 숨어있다. 언어의 외부에 세계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들이 쉽게 말이 되지 않은 채 엄중히 존재하고 세계를 비추고 있다. 나는 말이 관장하는 세계의 힘, 아니 세계에서 말이 갖는 힘을 믿고 인정한다. 그러나 말의 바깥, 즉 말이 되지 못한 것과 말이 될 필요가 없는 것들, 말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말할 수 없는 힘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사진과 시각 언어에 있어 '사건의 지평선' 같은 것이다. 블랙홀 '사진'처럼 블랙홀이 아니라 그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붉은 빛줄기의 형상으로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을 말하는 것이다. 말을 하기 전에 필요없는 말들을 버리는 것은 말과 이미지의 공통점이고 상호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