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여행이야.
나는 유선인간이다. 한 손은 늘 충전기에, 다른 손은 인터넷에 닿아 있어야 작동한다. 온도는 23도에서 26도, 습도는 50% 언저리여야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조건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고의 흐름은 이물질 낀 호스처럼 느려지고, 엉뚱한 실수가 연이어 터진다. 마치 카페인이나 도파민을 끊듯, 나는 '쾌적함'에도 디톡스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로밍도 제대로 안 되는 몽골로 떠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연했다. 무슨 일이냐, 애인과 헤어졌느냐, 아픈 데라도 생겼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애인과의 이별은 이미 한 해 전이고, 몸은 멀쩡했다. 굳이 떠나 정리할 마음도, 영감을 찾아야 할 글도 없었다. 이번 여행엔 이유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몸이 조금 찌뿌듯했을 뿐이다.
티코스를 운영하는 차주의 삶은 단출하다. 아침에 일어나 환기하고, 가볍게 씻고, 화분의 초록이를 살피고 나면 출근한다. 출근해서는 차를 우리고, 설거지를 하고, 다식을 만들고, 다시 설거지를 한다. 차에 어울리는 식사를 준비하고, 티코스 틈틈이 사진과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린다. 퇴근 후엔 씻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웹툰과 전자책, 오디오북과 뜨개질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침대 반경 2미터 안에서만 논다. 문단속과 환기를 제외하곤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갈 일도 없다. 내 삶에서 관절을 가장 넓게 쓰는 순간은 분리수거 때다. 유선인간인 나는 러닝크루에 가입할 일도, ‘#오운완’을 생각하며 게으름을 몰아낼 일도 없다.
그렇게 유선인간으로 살던 어느 날, 우연히 몽골행을 권유받았다. 마침 몸도 찌뿌듯했다. 간만에 켠 기지개처럼, 간만에 변덕을 부린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몽골로 향했다.
몽골 일정 동안 티코스 예약을 모두 닫고, 긴 트래킹을 버틸 수 있도록 휴족시간을 대량 구매했다. 몇 년 만에 꺼낸 등산화에 발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며칠 동안 미리 신은 채 산책도 했다. 몽골의 일주일 치 날씨를 통째로 검색한 뒤, 그에 맞는 옷과 차를 신중히 골랐다. 차를 우리기 위한 기물을 고르고, 파손되지 않게 단단히 완충 포장했다.
멀미를 막아준다는 레몬캔디, 급작스런 당 저하를 대비한 초콜릿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충전기. 고속과 완속, 둘 다 챙겼다. 견과류를 넣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뺐다. 몽골 특산품이 잣이라, 여차하면 사다 먹지 뭐 하는 마음이었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차를 우릴 수 있도록 보온병 여러 개와 화상 패치를 챙겼다. 배탈에 대비해 지사제와 소화제를, 타박상을 위해 바르는 파스와 진통제도 넣었다.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까지. 사용할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나 스스로도 나의 사지육신을 믿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리고 나의 자기 불신은 실로 영험해서, 첫 트래킹부터 양쪽 발목을 제대로 다치는 쾌거를 이루고 말았다. 이 가슴 아픈 여정은 언젠가 따로 풀 기회가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은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그렇다. 그렇게 몽골이었다. 낯익은 CU와 GS25가 반겨주는 울란바토르를 지나, 엉덩이가 부서질 듯한 비포장도로를 넘어 도착한 테를지 국립공원은 말 그대로 ‘자연(negative)’이었다. 관리되지 않은 방갈로엔 화산재처럼 쏟아진 개미 떼가 입주해 있었다. 침대맡, 보일러실, 화장실 할 것 없이 개미가 가득했고, 심지어 그들은 흙발로 밀고 들어온 침입자를 기꺼이 응징할 태세였다. 공격성도, 조직력도 만만치 않았다.
리조트 쪽 객실로 방을 옮기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테를지의 일교차는 영하 40도에서 영상 27도까지 오간다. 어떤 건물이든 급속도로 노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개미에게 점령당한 그 방갈로도 사실 지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축이었다. 단단한 시멘트조차 버티기 힘든 이곳에서, 통나무로 만든 방갈로쯤이야 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도 쉽게 낡아버리는 셈이다.
이렇게 우는소리를 늘어놓고 말하자니 좀 멋쩍지만, 나는 사실 여행에 꽤 강한 편이다. 초등학생 땐 칸막이 없는 중국 공중화장실을 흥미롭게 이용했고, 열일곱에는 타다 만 시신이 떠내려가는 갠지스강에서 샤워를 한 적도 있다. 어떤 스트레스든 이게 '계속되는 상황'이 아니라 '잠깐 지나갈 일'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나는 제법 잘 버텨낸다.
하여 나는 현지 가이드와 호텔 직원과 손짓 발짓을 포함한 적극적 소통을 해 숙소를 옮기고, 편안한 숙소에 앉은 채로 다음 날 트래킹에서 마실 차를 골랐다. 기온은 23도에서 27도 사이. 한낮에는 햇볕이 강해 조금 덥겠지만, 제주와 달리 건조해서 크게 피로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자외선지수는 높지만, 대기의 질은 쾌청하여 가시거리가 무제한이라고. 그렇다면 답은 명확했다. 아리산 금훤.
밀키우롱으로 유명한 금훤은 새침한 사춘기 소녀 같은 차다. 첫 포엔 화려하게 치장한 밀키향이 도드라지지만, 두세 포만 지나면 그 향은 온데간데없고 청량한 감미가 뒤를 잇는다.
무게감 없이 가벼운 잔향이 웃음처럼 데구르르 입안을 굴러다니다, 산뜻한 끝맛으로 질긴 피로를 끊어낸다.
이 차의 직관적인 맛과 향은 탐색의 즐거움보다는 편안함의 영역에 가깝다. 사흘간 이어질 트래킹 중, 가장 험한 첫날 아침에 딱 어울리는 차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며, 일행들에게 아리산 금훤을 한 잔씩 건넸다. 뜨거운 햇빛 아래, 시원하고 건조한 바람이 부드럽게 몸을 비벼왔다. 바람에 기대 땀을 식히고 마시는 차는 각별한 맛이 있어서, 경사가 70도는 될 법한 가파른 비탈에서조차 기꺼웠다.
드문드문 선 잣나무에 몸을 기대고 금훤 한 잔을 마시며 내려다보니, 테를지는 분명히 자연(positive)이었다. 사실, 나는 태어나 처음 초원을 보았다. 바보같이도 그동안 초원은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쯤으로 상상해 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그 뮤직비디오처럼. 펜스가 쳐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진 잘 다듬어진 잔디밭 말이다.
하지만 어림없지. 가까이서 본 초원의 절반은 죽은 풀이다. 누렇게 말라버린 풀과 아직 숨 붙어 있는 푸른 풀이 뒤엉켜 있고, 소담하게 핀 에델바이스 옆에는 마른 말똥이 굴러다닌다.
발과 종아리에 풀벌레가 톡톡 튀어 오르는 감각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하얗게 마른 말뼈가 불쑥 나타난다.
일상에서라면 기함했을 그 모든 고난과 역경 사이를 나는 그저 걸었다. 이겨내거나 극복하거나 하지는 못했고, 그냥 걸어냈다. 어쨌든 무거운 발을 들어 올려 앞으로 내딛는 것만으로, 몸이 꼭 내 보폭만큼 앞으로 나아간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원에서는 조금 특이하게 생긴 바위와 조금 특이하게 생긴 나뭇가지가 이정표가 된다. 비탈을 지나, 능선을 건너 앞으로 나아간다. 차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걷고, 등을 밀어주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다시 걷는다. 몇 시간을 내리 걷다 돌아보면, 그 끝도 없는 초원에서 내가 걸어 낸 경로가 선명하다. 발바닥이 뜨겁고, 발목이며 무릎이 시큰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리를 움직이면 몸은 앞으로 나아간다. 헬스 앱에서는 주기적으로 걸어낸 거리와 심박수를 브리핑했다. 이만큼이나 걸었으니 장하다는 낯부끄러운 칭찬도 이어졌다. 하지만 초원의 끝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저 걸을 수밖에 없었다.
종일 걷고 나서 확인해 보니, 휴대폰 배터리는 14%, 워치 배터리는 8%, 블루투스 이어폰의 배터리는 3%가량이 남아 있었다. 확인하고 나니 피로가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유선인간이었으므로, 갈급히 금훤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에 마음이 조급하고, 다리는 잘 고아낸 백숙마냥 뜨끈뜨끈하였으나,
그래도 괜찮았다. 항구히 이어질 상황이 아니고, 포근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지는 못했지만, 저 푸른 초원 위에서 그림처럼 근사한 금훤 한 잔을 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