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 : 잔에 담긴 이야기

이토록 완벽한 한 잔의 차

by 흔한 김씨


또다시, 연재가 밀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실 하려고 들자면야 변명할 거리는 잔뜩이기는 하다. 여름 티코스 메뉴 변경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 사실 이미 반절 넘게 써 놓은 (장마를 소재로 하는) 글이 두 번이나 엎어지기도 했다. 장마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차를 마셨던 이야기도 엎어졌고, 제주에서는 왜 비가 한 번도 안 왔는데 장마전선이 이미 지나갔냐고 억울해하는 이야기도 한 꼭지가 엎어졌다. 장마를 고대하니 비가 오지 않고, 비가 오지 않고 장마가 지나갔다고 속상해하니 비가 와버린 탓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은 다, 게으름 때문이다. 금세 마무리해서 업로드하지 못해 계절감이 사라져 버렸고, 결국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잠긴 서랍행이 되고 만 것이다.


지난 주말, 즐거운 데이트가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아주 좋아하는 지인과 차를 한 잔 나누며 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애니어그램 테스트를 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맥락 없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면 좋겠다. 발치의 돌부리와 더운 날씨는 결국 불행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법이니, 나의 게으름 고백과 애니어그램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주제로 수렴할 것이므로.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5번 날개를 사용하는 4번이다. 말하자면 깐깐하고 예민한 데다 불만이 많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친구 하기 싫은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본인의 강점을 잘 발휘하게 되면 섬세하고, 감정을 잘 읽고, 사려 깊고, 현명하게 사고하는, 말하자면 곁에 한둘쯤 있으면 좋겠다 싶은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친구 하기 싫은 스타일보다는 곁에 한둘쯤 있으면 좋겠다 싶은 타입이 아무래도 더 나을 것이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이번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핵심이 되겠다.



5번 날개를 사용하는 4번의 절망 편과 희망 편을 살펴보면 두루 결여되어 있는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실천, 행동력이 그것이다. 나의 근원적 약점은 실천력이다. 여기까지 고백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부득부득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써내려고 하니, 완성된 글이 재미있거나 즐거울 리 없다. 그러니 글을 더 잘 쓰려고 하고, 더 재미가 없고, 악순환의 반복. 문예창작을 하고 싶었던 십 대 시절 합평할 때 같이 스터디를 하던 언니가 그랬다. 네 글은 모범생 같다고. 진짜 성실하고, 진짜 열심히, 공들여 쓴 티가 나는데,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고. 그래서 나는 글을 잘 쓰기보다는 잘 쓰인 글을 공부하자고 노선을 틀었다. 그렇다. 극복하지 못하고 타협했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은 타협의 연속이었다.



애니어그램이 제시하는 나를 위한 솔루션은 타협의 고리를 끊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받고, 마음에 담아두고, 사고의 노드에 걸어두기보다는 일단 끊어내고, 뭐라도 해 버리는 거다. 완성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거라고.



우리가 ‘일단 저지르는 삶’에 대해 대화하며 마신 차는 조기남천과 산병을 섞은 것이었다. 이미 완성된 각각의 찻잎을 블렌딩해 우려내면 평소에 그 차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의외성 넘치는 맛이 나타나곤 한다. 맵싸한 조기남천과 부드러운 산병이 만나 어째서인지 이금란에서 느낄법한 배지근하고 듬삭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충대충 저지르며 살기로 했다. 티룸에서는 가능한 정돈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기물의 각도와 조명을 신경 쓰고, 우릴 수 있는 최선의 한잔을 우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 아니라, 허술한 것을 모두 내다 버리려는 무용한 행동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완벽한 한잔의 차를 우리기 위해 새벽 첫 이슬만을 모으는 각별한 정성은 취할 만 하지만, 실제로 첫 이슬만을 수년간 모아서 우려낸 차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므로.



처음 차를 시작하려는 손님이 내게 차를 우리는 법을 물으시면 나는 늘, 가장 범용적인 우림법을 알려드리며 이야기하곤 한다. 위스키를 숙성시킬 때 이야기하는 ‘천사의 몫’을 아시냐고. 처음 대하는 차를 구매하시면, 처음 몇 번의 경험을 ‘천사의 몫’인 셈 치시라고. 차는 많이 망쳐봐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다고. 범용적인 우림법이 내게 맞는 우림법이 아닐 수 있고, 각자에게는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우림법이 있다고.



표준적인 우림법을 인지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 순간 완벽한 차만을 마시며 살 수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과, 완벽을 꿈꾸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다지도 먼데, 왜 나는 늘 둘을 혼동하고야 마는 걸까.



절반의 머쓱함과, 절반의 깨달음이 뒤섞인 마음으로, 오늘 아침에는 말차를 격불 했다. 다완이 너무나 자그마해서, 차선이 자완에 넘칠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쫀쫀하고 퐁실한 거품을 격불 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격불의 과정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결과적으로 보기에 좋고 만족스러운 맛의 차를 마실 수 있었으므로, 결국에 오늘 아침의 말차는 내다 버려야 할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다.



하여 브런치에 업로드되는 앞으로의 글은, 다소 덜 정제될 예정이다. 부끄럽지만 정제하고 정제하다 보니 적을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줄어들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정제되어 무색무취인 텍스트 몇 줄보다는, 다소 거칠더라도 어딘가에서 엎질러지고 있는 물에 대한 이야기가 그나마 더, 재미있을 테니까.



그래도 기왕이면 차는 맛있는 게 좋고, 글도 기왕이면 재미있는 게 좋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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