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 : 잔에 담긴 이야기

백모단 앞의 생

by 흔한 김씨



늦잠을 잤다. 보통은 여섯 시쯤 눈을 떠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확보되는데, 몇 번이나 다시 잠들다 보니 눈을 떴을 땐 벌써 아홉 시가 넘었다. 직주 초근접의 삶이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다. 급히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단정해 보이는 옷을 찾아 허둥지둥 팔을 꿰었다. 간신히 티룸 오픈 시간에 맞춰 불을 켜고, 냉방을 돌리고, 문을 열었다.

정신없이 출근하느라 아침도 거르고 말았다. 뭐라도 먹을 게 없을까, 그 김에 오늘 마실 첫 차는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며 티룸의 냉장고와 차 냉장고를 하나하나 열어본다. 운이 좋았다. 냉장고 문칸에 상투과자 두 조각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과자를 챙겨 들고, 차 냉장고 앞에 앉는다. 아침부터 급하게 움직였으니 상기된 기분을 가라앉혀 줄 차였으면 좋겠다. 평소 자주 마시지 못하는 차라면 더 좋겠다. 그쯤 되면 답은 정해져 있다. 복정백차. 그중에서도, 백모단.

다하를 들고 차 냉장고 앞에 앉았다. 백차를 꺼낼 때면 항상 간이 떨린다. 복정백차의 원료가 되는 찻잎은 일반적인 찻잎과 다른 변이종 찻잎이다. 유전공학이 이만큼이나 발달했는데도, 여전히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여, 좋은 품질의 복정백차를 구하는 것은 대단히 큰 인연과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일상적으로 마시기 쉽지 않은 차다. 그렇다고 해서 모셔만 두고 마시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정성껏 마신다는 뜻이다.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무심히 마시거나 다식과 곁들여 편안하게 마시기보다는, 미지근한 생수를 마셔서 충분히 입을 맑게 하고, 차의 향과 우림색, 혀에 닿는 감촉까지 꼼꼼하게 살피며 마시려 노력한다.

상투과자 두 개를 먼저 챙겨 먹고 가볍게 양치했다. 미지근한 생수를 찻잔에 연거푸 세 잔. 입안의 치약 향까지 지운 뒤 물을 올렸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다하에 담긴 백모단을 살핀다. 잎 전체에 어린 은색 털이 덮여 있고, 청갈색과 연녹색의 잎이 뒤엉켜 제멋대로 어우러져 있다. 그 모습을 보자 예전에 쓰던 만년필 잉크가 떠올랐다.

세일러에서 나온 리큐차라는 잉크였다. 일본 다도의 대가 센노 리큐의 차에서 모티브를 따온 잉크다. 농도가 옅어 종이와 필압에 따라 회색, 카키색, 회갈색 등으로 보이는데, 꼭 백모단의 색채와 닮았다. 다채롭지만 눈이 편안해서 필사할 때 자주 썼다. 그 잉크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문장을 옮겨 적었는데, 지나고 보니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었던 문장보다는, 혹시라도 토씨 하나 틀릴까 안절부절못했던 마음이 더 크게 남아 있다. 그런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되지. 그렇게 혼자 결연히 다짐하고, 개완에 찻잎을 덜어 넣었다.

반개한 꽃송이 같은 찻잎이 개완에 담기고, 보얗던 은빛 털이 더운물에 닿아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마른풀 같기도, 바닥에 가라앉은 꿀 같기도, 분분하게 날리는 꽃 같기도 한 향이 밀도 있게 차오른다. 어느 시골 아침 고개를 부비며 깨는 짚풀침대처럼 사락사락 감기고, 탐스런 복숭아 과육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처럼 단맛이 농후하게 들어찬다. 덜 정제된 대신, 더 풍성하다. 은침백호가 잘 짜인 고급 실크라면, 백모단은 봄철의 정원을 통째로 따다 말린 느낌이다.

백차는 사람의 손을 최대한 배제하고 만들어지는 차다. 찻잎을 비벼 상처입히거나 산화시키거나, 더 잘 우러나게 하기 위한 가공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찻잎을 잘 따서, 잘 말린다. 물론 디테일한 제다의 과정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절제하여 만들어지는 차라는 뜻이다. 은침백호는 이른 봄, 곧고 고운 싹만을 채엽해 말리고, 백모단은 봄이 한창인 4월 중하순경 싹과 잎을 함께 채엽해 말린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은침백호를 더 고급 차로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둘은 그냥 카테고리가 다른 차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침백호가 정제된 단정함이라면, 백모단은 풍성한 자연스러움이다.

백모단을 몇 포 우려 마시다 보니 문득,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살아야 해요.” 그 무렵의 나는 그게 어떤 생이든,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모모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만년필에 리큐차 잉크를 가득 채우고, 혹여라도 번질까 봐 후후 불어 말려가며 그 문장을 옮겨 적었던 기억이 잔 위로 또렷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잊고 있었는지 놀라울 만큼 선명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다시 백모단을 한 모금.

거듭 우려 마셔서 연해진 백모단에서는 그만큼 안온하고 부드러운 향미가 느껴졌다. 한 차의 봄부터 겨울까지를 모두 맛본 느낌이었다. 다관에 담긴 엽저를 버리고 기물을 세척하며, 입 안에 남은 백모단의 맛을 천천히 곱씹었다. 반듯하게 짜여있지 않아도, 그림처럼 그럴듯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부러 예쁘게 다듬지 않아도 괜찮겠다. 은침백호가 되지 못해도 백모단이 될 수 있으니. 필요한 것은 모모가 말했던 것처럼,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든 살아낼 지구력일 뿐.

오늘 마신 백모단의 맛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리큐차로 쓴 모모의 문장이 뒤늦게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처럼. 나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내 안의 바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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