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 : 잔에 담긴 이야기

체코의 필스너, 제주의 한라산, 그리고 한국의 녹차.

by 흔한 김씨


어제 오후, 프라하에서 도예를 전공했다는 여행자가 다녀갔다.

티룸이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여정이라고 했다. 어깨에 큼직한 배낭 두 개를 메고 있었고, 목에는 무심하게 목베개를 걸쳐 두었다. 무겁고 긴 여행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멈추어 선, 사진으로 찍어놓은 듯한 여행자였다.


그녀는 서울과 제주, 일본을 거쳐 다시 서울에 머물다 프라하로 돌아가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답게, 어조는 가볍고 친밀했지만, 낯선 공간에 잠시 기대어 있는 사람만이 지닌 조심스러운 침묵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티코스는 예약제로 준비된다. 찻자리에 어울리는 다화를 장식하고, 차와 곁들일 음식을 마련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는 워크인으로 방문한 손님이었고, 내게 준비된 것은 다만 정성껏 끓인 찻물과 소박한 다식뿐이었다.


시음할 차를 고르기 전에, 우리는 잠시 식사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제주에서 무엇을 먹을지 여행자들과 정보를 나누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맥도널드에 다녀왔다’는 것뿐이었다며 웃었다.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뇨끼와 프랑스의 크로아상을 이야기했다. 체코의 필스너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프라하에서 왔지만 맥주를 마시지 않는 그녀와, 제주에 살지만 한라산 소주를 마시지 않는 나는 서로의 서툰 외국어로 조심스레 취향을 나누었다. 개중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일은, 그녀가 페이스트리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점심 산책길에 포장해 온 퀸 아망을 꺼냈다. 부스러지지 않도록 조심히 보관해둔 페이스트리를 여섯 조각으로 잘라, 예쁜 도자기 접시에 플레이팅했다. 그녀의 몫으로 세 조각, 다시 내 몫으로 세 조각을 나누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온 사람이든, 빈속으로 차를 마시게 해서는 안된다고 배워온 까닭이었다.


그녀는 장작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 표면의 우연성에 감탄했고, 곧이어 퀸 아망의 달고 짠 맛, 바삭한 껍질과 버터의 풍미에도 감탄했다. 도자기도, 페이스트리도 내가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감탄이 꼭 내 몫인 것처럼 어깨가 조금 들썩였다. 취향에 공감을 받는 일은 사람을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만든다.


퀸 아망을 한입 크게 베어문 그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청했다. 한국 녹차를 요청받고 정성껏 우려냈지만, 마음속에는 살짝 조심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햇차를 기다리는 이맘때면, 작년의 녹차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잘 보관된 묵은 차에는 시간만이 덧입힐 수 있는 고요한 깊이가 있다.


차의 향미가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갓 통통하게 삶겨져 나온 잔을 세 개 따로 준비했다. 찻물이 닿자 온기가 퍼지고, 그 위로 각각의 향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나는 그녀에게 한국 녹차, 대만의 이산차, 그리고 2000년 7572를 차례로 건넸다. 묵은 녹차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잘 보관된 차는 시간 속에서 더 깊어지고, 햇차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대만의 이산차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green tea는 fresh한 맛으로 마시는 차고, korean fresh green tea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꼭 다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 해를 묵은 차도 이렇게 훌륭한데, 햇차는 얼마나 좋을지 기대된다고도 덧붙였다. 또, 2000년 7572는 원판형으로 단단하게 긴압된 차였기에 긴 여행 중에 들고 다니기엔 번거로울 것 같다는 의견에 나는 그녀의 어깨에 걸려 있던 큼직한 배낭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한 디자인의 이산차 틴케이스가, 그녀의 여정엔 훨씬 더 적합할 것이었다.


그녀를 배웅한 뒤, 나는 조용히 개완을 꺼냈다. 남은 녹차잎을 덜어 더운 물을 부었다. 수면 아래로 퍼져나오는 향은 여전히 신선했고, 고요했다. 녹차는 기본적으로 발효되지 않는 차다. 그러나 잘 보관된 찻잎에서는 시간의 흔적이 은근히 배어난다. 풋풋했던 풀내음은 부드럽게 가라앉고, 어렸던 맛은 단정히 다듬어진다.


체온보다 조금 더운 온도의 녹차를 천천히 입 안에서 굴려 삼켰다. 태어나 처음 맛보았던 차가 녹차였다. 입술에 닿았을 때 포근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 만큼. 물을 잘 끓이는 것보다 정성들여 식히는 것이 더 중요한 차. 잘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차.


여름의 발치에 닿을 듯 가까운 햇차를 기다리며, 한 해를 건넌 녹차는 두 번의 봄을 지난다. 처음은 수확의 봄, 그리고 기다림의 봄.


프라하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취미로 가구를 만든다던 여행자가 언젠가 다시 햇차를 맛보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봄을 지나야 할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에는 서로의 외국어가 조금 덜 서툴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