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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May 18. 2020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미술 작품 읽어내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천재 예술가입니다. ‘돈 없고, 미치광이에, 예술을 사랑하여 인생을 바친’ 그리고 ‘요절한’ 예술가입니다. 실제로는 어쨌든 저쨌든, 일단 이미지는 그렇습니다. 그림을 봐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강렬한 색, 누가 봐도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임을 알 수 있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당대 서민들의 삶을 그렸습니다. 당대 서민들이란 가난한 농민들을 뜻합니다. 보통 역사를 배운다 함은 왕조와 통치체계, 사상, 경제, 전쟁을 뜻하죠.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시대별 엘리트들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와서야 ‘미시 역사’라고 하며 그 시대를 살아온 대다수의 삶을 주목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왕과 귀족, 우수한 지식인, 전쟁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서민들의 이야기는 듣기 힘들죠. 박물관에 가도 왕관, 귀족/양반들의 의복과 생활도구가 주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까지 그려지던 신화, 사회 고위층이 아닌 가난한 농부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지금 보면 그냥 농부들 그렸구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림이란 모름지기 위대하고 숭고한 대상과 내용을 담고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스 신화 같은 성스러운 이야기, 핏줄을 타고난 귀족들의 모습, 부유하고 돈 많은 사람들의 신분상승 징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에는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습니다. 이 액자 안에, 캔버스 위에 가난한 농부들의 보잘것없는 비참한 삶이 들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여러 가지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적인 상징물, 신화가 담긴 그림들을 사서 집안에 걸어두며 ‘나도 이렇게 종교적인 지위가 높은 인물이다’라고 과시했습니다. 그러다가 슬슬 자기들의 모습을 그림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에 담기는 인물이 ‘타고난 핏줄’에서 ‘성공한 부자’까지 확장된 것이죠. 이후 사상적으로 사회계약론도 나오면서 국가와 국민의 의미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납니다. 인류의 1%도 안 되는 소수 귀족엘리트지식인층이 아닌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99%가 역사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큰 사건과 위대한 영웅의 모습이죠. 이렇게 세상이 바뀌어감에 화가들의 의식도 변화합니다. 실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는 것’은 큰 맥락으로 봐야 좋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에 집중하게 된 것, 인간이 무엇이냐, 국가와 국민의 관계, 사회의 구조 같은 흐름이 있습니다. 그런 중에 화가들은 커다란 역사, 귀족, 지식인이 아니라 실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평등하기에 그림에 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또 귀족들의 삶만큼이나 가난한 농민들의 삶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대로 보기 시작하면 역사는 제1대부터 이어지는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삶이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 초상화만이 그림이 아니라 우리의 얼굴도 초상화로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화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하고, 이것들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그림이 있습니다.

귀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입니다. 이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쿠르베라는 화가입니다. ‘세상의 기원’이라며 여성 음부만을 과감하게 그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을 보면 왼쪽의 부자를 대하는 쿠르베의 태도가 눈에 띕니다. 모자와 옷, 맨 왼쪽의 시종을 보면 전형적인 부자입니다. 그런데 쿠르베는 턱을 치켜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비록 허름한 옷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멋도 없는 신발을 신었지만 태도만은 당당합니다. 당시 화가들은 이름이 있되 생계를 부자들의 의뢰를 받아 유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쿠르베는 그림에서 ‘내가 너희들과 다를 게 뭐냐, 꿀리는 게 뭐냐!’ 하는 생각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게 화가들은 세상 사람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밀레와 같은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밀레는 자연주의 화가로 분류합니다. 자연주의란 푸르른 대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닌 실제 세상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도 그대로 본다는 것입니다. 왼쪽의 그림은 ‘빵 굽는 여인’입니다. 성모 마리아도, 아테나 여신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어떤 여인일 뿐입니다. 빵이나 굽는 그저 서민일 뿐입니다. 이런 여인이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혁명이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유명한 ‘만종’입니다. 얼핏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두 농부, 어스름하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가 아닌 추수를 마친 농부들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런 인간의 삶을 그대로 보는 것이 180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삶은 철저히 외면받았습니다. 못 배우고, 돈 없는 삶이 주목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것이 신이 먼저인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르네상스가 오면서 인간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인간에 주목하면서 근대 사회가 열렸습니다. 이것은 미술에 그치지 않습니다. 1800년대 중반이 지나가면서 문학에도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레 미제라블’은 제목 자체가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교화가 목적이 아닌, 숭고한 사랑이나 신의 가호가 내용이 아닌 소설이 등장합니다. 인간의 부도덕함, 부조리,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그대로 보고 그대로 드러내는 관점은 1800년대 중반부터 터져 나오듯 문화예술에 퍼졌습니다.


다시 빈센트 반 고흐로 돌아가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역동적인 포즈로 당장이라도 팔을 휙 휘두르며 씨를 뿌려댈 것 같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도 역시나 그대로 보려는 화가였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과 주변에 보이는, 인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부들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스케치로 연습도 많이 하고, 유화로도 여러 번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나무가 무슨 벚꽃나무 같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일본의 우끼요에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평면적이고, 과감한 구도에 파격적인 색감,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자연의 묘사에 수많은 화가들이 빠져들었습니다. 메이지유신과 함께 일본은 유럽으로, 문화적으로 진출했던 것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우끼요에 작품을 몇 개 소장하기도 하면서 자기 그림에도 적용하려 노력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나무부터 땅의 모습을 보면 붓질이 특이합니다. 저 붓질은 목판화를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빛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죠.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색을 연구했습니다. 과학이 밝혀낸 빛이 원색의 혼합임을 알고, 또 여러 빛이 섞이면 어떤 색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를 위해 인상파 화가들은 당시까지 거의 쓰이지 않던 원색을 사용하며 강렬한 색감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그랬습니다.


나아가 빈센트 반 고흐는 태양을 아주 과감하게 나타냈습니다. 그저 동그라미에 온통 샛노란 빛입니다. 하늘 역시 노란색을 원색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사실 노란색은 유화에서 잘 쓰이지 않는 색입니다. 너무 쨍하고, 채도 변화를 주기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빈센트 반 고흐는 아주 과감하게, 무모할 정도로 노란색을 사용했습니다. 얼핏 농부의 머리 뒤에 있는 태양이 마치 후광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 씨 뿌리는 농부의 모습도 담겼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으로 다양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밀레의 영향,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왜 빈센트 반 고흐가 농민들의 모습을 그렸나 알 수 있죠.

이 그림은 생전 유일하게 팔았다고 알려진 그림입니다. 지인의 지인이 샀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도 역시 농민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자체도 참 매력적이고, 그림도 확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있기에 인기가 많습니다만 이렇게 알고 나면 빈센트 반 고흐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냥 방구석에 틀어박혀 물감을 맛보다가 귀를 잘라 창녀에게 파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당시 시대를 앞서가던 우수한 엘리트였던 것입니다. 공부도 많이 했고, 생각도 참 많이 한 사람입니다.


지금이야 빈센트 반 고흐가 당시 미술의 대표자처럼 되었지만 사실 이렇게 농민이나 그리는, 원색으로 그림을 도배하는, 태양을 노란 동그라미로 그려내는 화가들은 왕따들이었습니다. 시대에 가장 앞섰지만 그만큼 이해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흔히 아는 이야기는 다른 게 많습니다. 그건 다음에 쓰기로 하고요. 마지막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라는 그림으로 끝내겠습니다.

허름하고 낡은 구두 한 켤레. 이 구두는 그냥 구두이지만 이걸 신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대충 짐작이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구두가 그림에 들어가기까지 인간 역사는 참 오랜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많은 사건이 있었고요. 시간을 오래 들여 제작하는 유화 작품인 만큼 구두를 그렸다는 건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흥겨워 그리는 어린아이 낙서와는 조금 다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무슨 생각으로 이 구두를 그렸을까요?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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