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하는 1인가구 세대주를 위한 일주일간 식사 기록
평일에는 집-회사만 오갔고 주말에도 내내 마스크를 쓴 채 잠깐 외출했을 뿐인데 월요일에 나는 확진되었다. “네트워크에서 근접 중심성Closeness Centrality이 한없이 0에 수렴하는 내가 드디어 대유행의 파도에 올라탔는가!” 한 것도 잠시, 일주일간의 자가격리 준비를 하느라 경황 없는 30분을 보냈다. 30분인 이유는 이럴 경우에 대비해 정리해둔 매뉴얼을 확인하는 데 5분, ‘아니… 하지만 어디서…? 어쩌다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데 25분이 걸려서다. 이만하면 준비도 현실 순응도 빠른 편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당면한 문제는 세 개로 귀결되었다. 1번, 병증의 강도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2번, 모르는 사이 남에게 옮겼을지도 모른다는 것 . 3번,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후각과 미각에 손상을 입거나 몸이 아픈 나머지 식욕을 잃어버리는 것. 1번과 2번은 불가항력이었다. 3번은 대응 가능한 문제였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부터 해야 된다. 이에 일주일에 걸친 나의 자가격리는 마켓컬리에서 42,587원 어치의 식료품을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식욕은 잃지 않았다. 평소보다는 줄었지만 그건 아파서라기보다는 별로 걷지 않아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에 세 번 약을 먹어야 했고, 재택근무도 충실히 했으므로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고백컨대 나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노동윤리를 체화한 자로서 생산적인 일이든 소모적인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배가 별로 안 고픈 것이다. 재택치료자 수칙을 보니 매일 청소를 하라고 해서 소독약을 들고 다니며 온 집 안을 손걸레질했다. 스타일러로 침구를 살균했다. 다른 때보다 신경 써서 재활용 용기를 닦았다. “이렇게 성실하고 위생적인데 대체 어디서 병원균이…? 어쩌다가…? 아니, 왜 내가?” 격리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소리 내어 한 말들 중 이 말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사라지지 않은 식욕과 170,825원으로 나는 무얼 먹었나.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식욕을 잃을까 봐 염려가 되고, 일주일간 되도록 다양하게 차려 먹고 싶은 1인가구 세대주가 나 말고 또 있을지 몰라 나의 일주일 식생활을 기록해 보았다. 아껴진 출퇴근 시간을 이 기록에 알차게 썼다. 컨디션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몸져눕지 않고 정신적 균형을 잃는 일 없이 이 기간이 지나가 다행이다.
품목당 1회분 가격 계산식: 상품가×1회 섭취분 ÷구입한 식품의 전체 양, 끝자리는 반올림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식재료나, 한 번에 쓰는 양이 미미한 조미료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물은 구매했으나 하루 소비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어 기록하지 않았다
1일차 고시히카리 열 봉을 다 먹을 때까지도 나는 밥알의 수분기 조절하는 법을 마스터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미리 너무 불려뒀는지 쌀밥의 찰기가 지나쳤다. 해도 더 이상 도구나 재료를 탓하면 안 되는 지경이다. 후쿠오카 쇼보안에서 밥만 두 그릇 먹게 만들었던 그 맛이 혀끝에 아련하다. 저녁 밥상은 나트륨 과다였으나 풀을 한 접시 놓았다는 것만으로 하루치 비타민과 무기질을 다 섭취하기나 한 듯이 의기양양했다. 또한 당면, 야채, 새우, 매운 소스가 들어간 만두는 좀처럼 질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어 다음날 마켓컬리에서 교자와 고수를 포함한 식재료를 36,851원 어치 추가 주문했다.
2일차 1일차와 마찬가지로 아침식사는 심즈4에서 요리 스킬이 없어도 냉장고를 열면 먹을 수 있는 ‘간식’ 같은 메뉴로 때웠다. 즉, 오로지 약을 먹기 위한 식사였다. 처음 겪는 강도의 인후통과 빈 위장에 차가운 오렌지주스가 좋을 리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점심은 최근 인스타에서 구경에 여념이 없는 일본 가정식 플레이팅 스타일로 차려 보았다. 한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는 게 좋아 보이는 비결 같은데 접시에 올릴 수프볼이 없어 부랴부랴 사진에 나온 것을 샀다. 또 계산 결과 쌀밥형 식사보다 브런치형 식사가 더 저렴하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반찬에 남의 인건비가 포함되었므로 당연하다. 남은 빵을 다음날 잘 활용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저녁의 게살 수프가 홍유 소스를 뿌린 교자와 아주 잘 어울렸다.
3일차 모닝 커피가 워낙 훌륭하게 내려졌다. 한때 고노 드립은 인내심을 요한다고 여긴 적이 있었으나, 그보다는 평정심이다. 그리고 유연한 손목 스냅이다. 전날 점심식사에 변화를 주어 프렌치토스트도 만들어 봤다. 요리를 특기로 삼겠다는 목표를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보니 먹을 만은 했지만 기꺼울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3일째쯤 되자 내가 먹은 걸 치우는 건데도 불현듯 지겨워져서 ‘이런 건 하루 한 번으로 충분하다, 누굴 위해서든 매일 뭘 만들고 치우는 삶이 장기화되지 않아 다행이다’ 하고 되뇌었다. 저녁에는 홍유 소스에 남은 고수를 잔뜩 넣었다. 소금이 떨어져 가기에 더 살 게 있나 봤더니 모자란 건 없었지만 아쉬운 것들은 몇 개 있었다. 샐러드를 자주 먹으려고 토마토를 샀다—그러면 치즈도 있어야겠지—토마토에 치즈라면 역시 바질페스토 소스 같은 식이다. 바질페스토까지 오고 나면 야채 믹스가 똑 떨어질 것이다. 뜻대로 완벽히 이루어지는 일이란 좀처럼 없는 운명을 예감하며 식료품 41,778원 어치를 추가 주문했다.
4일차 4일간 내리 그로서리 쇼핑을 했는데, 주문할 때와 그것을 소모할 때의 갭에 관해 생각했다. 좌우간 1인 가구는 멀쩡한 음식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상하기 전에 모조리 먹어치워야 한다. 그러나 장바구니에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담았다고 해서 그것을 언제나 먹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먹고 싶어 산 것을 오로지 없애기 위해 먹어야 하는 종류의 괴로움. 냉장고를 비우고 싶다. 그런데도 4일차에는 묘하게 단것이 당겼다. 단것을 자주 찾아 먹지 않는 편인데 당긴다는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인가 하여 초콜릿와 아이스크림을 포함해 38,109원 어치의 식료품을 추가 주문하고, 충동적으로 수제 초콜릿 프레즐도 구매했다.
5일차 애플워치의 경고에 따르면 하루 10여 걸음을 걸으며 단조로운 생활 패턴을 고수하고 있으니 허기도 잘 지지 않고 식욕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상태로 돌입하였다. 그렇다고 잘 먹지 않은 것은 아니고, 점심식사에서 기름진 것을 덜어내고 대신 사과와 다크 초콜릿을 간식으로 먹었다. 간식으로 단것을 먹으면 종종 그렇듯 몇 시간 뒤에는 맵고 짠 것이 먹고 싶어져서 홍유 소스를 가득 뿌린 교자에 논알콜 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마라가 먹고 싶다.
6일차 모처럼의 주말인데 집에만 있으니 주말 느낌이 나지 않았다. 휴일의 이름은 ‘자유’임을 새삼 실감했다. 점점 사고도 둔화되는 느낌이어서, 요 며칠의 경험으로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것이 정신과 두뇌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도 확인하게 되었다. 늦게 일어났으므로 점심은 커피와 함께, 저녁은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느낌으로 준비했다. 일일 나트륨 권장량을 초과하기가 이렇게 쉬울 수 없다.
7일차 격리 7일차는 그동안 쌓인 무기력이 일거에 폭발했다. 의욕 없이 전날과 같은 점심을 차리고 캡슐 커피를 내려 먹었다. 리프레시를 위해 차를 마시며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다. 청차에 초콜릿 프레즐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차와 어울리는 다식을 온라인으로 구할 방법이 달리 없어서 그랬다. 지적인 자극도, 드라마틱한 사건도—이쪽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만— 없던 일주일, 아마 그 탓에 평소 다다를 일 없던 곳까지 생각이 미쳐서일 텐데, 이따금 가는 무인 세탁소 벽에 붙은 “진짜 인생은 일상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문구를 다각도에서 해석할 기회가 몇 번인가 있었다. 어쩌면 ‘일상’이 아니라 스탠더드한 삶의 방식을 뜻하는 다른 단어였을 수도 있다.
격리 자체는 비일상적 사건이지만 그 주 무대는 어느 곳보다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하여 나는 깨어 있는 내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의 하찮음, 신진대사를 위한 칼로리 공급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의 번거로움 따위에 직면해야 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는 잘 느끼지 않는 감각. 진짜 인생의 본질은 어디에 있나. 컬리와 쿠팡에서 구할 수 없는 디저트를 손에 넣는 게 진짜 인생 아닌가 등등. 나는 active하지도, outgoing하지도 않지만 제정신으로 히키코모리 같은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6일차에 이 심정을 친구에게 토로하니, 나보다 훨씬 은둔에 능한 친구는 본인은 한 달 정도는 자가격리를 잘해낼 수 있다고 했다.
7일간 먹는 데 쓴 돈과 식료품 구매에 쓴 돈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사놓고 보관만 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 먹어놓고 할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냉장고에 물과 과일 외의 것을 이틀 이상 넣어두지 않는 사람이다. 이 7일은 냉장고를 꽉 채우려는 병자의 생존 본능과 차가운 도시여성의 관성적인 결벽성이 투쟁을 벌인 7일이기도 했다. 큰 탈 없이 7일이 지나, ‘점심엔 이걸 먹고 저녁엔 저걸 먹고 내일 먹을 것을 주문하고…’ 따위의 고민에서 마침내 해방되어 홀가분하다. 돈만 내면 남이 만들어서 차려주고 치워도 주는 음식이 최고다. 다음 일주일은 외식과 배달 음식에만 의존해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