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인용 글귀로 스웨터 뜨기
1.
‘현대에 들어서야 새삼스럽게, 우리는 볼테르가 다른 행성에도 생명이 있다면 지구는 우주의 정신병동이라고 한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다른 행성에 생명이 있든 없든, 세상은 정말로 하나의 정신병동이다. 우리는 이미 정상에 대한 감각을 전부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고, 건강이 질병의 허락을 받아 유지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1914-8
2.
2014년 11월의 어느 날 늦은 밤, 나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페소아의 책을 읽었다. 한낮의 소란은 무질서한 서류 더미가 되어 책상에 쌓여 있었다. 흡사 책상 규모로 축소된 재난 현장이다. 아주 작은 여진으로도 곧 무너져 내릴 아슬아슬한 종이들의 도시. 그 위태로운 균형 저 아래 깊숙이 페르난두 페소아가 파묻혀 있었다.
3.
나는 페소아의 책을 몇 달 전부터 야금야금 읽고 있었다. 낮의 왁자지껄한 무대와 밤의 고독한 무대를 가로지르는 장막이 내려오면 잠깐 휴식 삼아서 말이다. 한글 번역본도 영역본도 있었다. 짧게 끊어 쓴 글들을 모은 책이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그 책은 포춘 쿠키가 잔뜩 담긴 바구니이기도 했다. 삶에 대한 비관과 세상에 대한 냉소를 숨기고 있는 포춘 쿠키.
4.
“긍정의 힘을 믿으세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어느 포르투갈 인의 책을 읽기 몇 년 전부터 세상은 그렇게 속삭였다. 부자가 되려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가짐, 긍정하기. 그럼에도 나는 그 심야에 비관과 냉소의 포춘 쿠키를 입에 물고 있던 거다. 애초에 부자가 되기에는 글러먹었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5.
긍정의 힘을 믿으라는 건, 일종의 자본주의 복음이었다. 복음은 광고가 되고 책들이 되어 세상을 뒤엎었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 그 외의 메시지는 없었다. 만일 있다면 연민이나 동정심, 겸허와 공감, 다름에 대한 수용, 주어진 삶에 대한 낙천적인 태도 등 ‘긍정’이란 낱말에 포함돼도 좋을 만한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 무관심과 무표정일 것이다.
6.
예수가 태어난 시각, 이웃집에 태어난 브라이언 코언은 이런저런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다. 브라이언은 죽음 앞에 좌절한다. 그때 누군가 브라이언에게 말을 건넨다. 뒤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또 다른 사형수이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좌절하지 말고 기운 내라며 노래를 불러준다. 노래 제목은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보자>이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의 코미디언 그룹 몬티 파이선이 제작한 영화 <브라이언의 일생>에 나오는 이야기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7.
나는 상상한다. 페소아의 말마따나 이 세상이 거대한 정신병동이고 또 미치광이들이 우글거린다면, 그들이 갇혀 있는 병실 벽에 걸릴 적당한 슬로건이야말로 이것이라고 말이다.
“긍정의 힘을 믿으세요.”
8.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대학시절에 들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나름으로 깊이 생각해 본 건 대학시절이다.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내 멋대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하는 믿음’ 정도로 풀이하고 있다. 관련하여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월터 카우프만은 철학 교육이 하는 일을 아래처럼 정의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실은 그렇지 않음을 드러나게 해주는 것”
- 월터 카우프만, <이단자의 믿음> 1961
9.
책 제목이 끝내준다. 무려 ‘이단자의 믿음‘이다.
10.
어릴 적, 이웃의 꼬임에 빠진 엄마 손에 이끌려 어느 사이비 종교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은 믿음을 이야기했다. 믿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교리는 대략 이러했다. 인류를 구원하려고 겨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봄에는 공자가 오셨고, 여름에는 석가모니가 오셨고, 이제 만물이 무르익는 이때에 자신들의 교주가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러 온 거라고 했다. 대략 그런 식이었다.
11.
멋진 이야기다. 그럼에도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렇게 성인들이 자주 출현할 정도로 옛날부터 세상은 이미 엉망진창이었고 인간은 구제불능이지 않았나 싶다.
12.
그때 나는 무언가가 궁금했다. 무엇을 궁금해했는지, 어떤 질문을 했는지는 잊었다. 그러나 내 의문에 그 사이비 교도 간부가 싸늘한 시선과 함께 돌려준 답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똑똑한 척 의심이 많으면 못 믿는다. 복도 못 받아!”
13.
나의 박복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14.
세상과 인생의 이치에 통달했다는 그들 무리들은 매주 빠짐없이 우리 집에 수금하러 왔다. 엄마는 아무것도 할부로 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미심쩍은 믿음과 오지도 않을 복을 팔았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 시절,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는 일당은 변변치 않았다. 아버지의 무기력한 호주머니는 겨우 천 원짜리 지폐 몇 장, 동전 몇 개 그리고 땅콩 부스러기, 소주에 마취된 어떤 슬픔을 마지못해 토해낼 뿐이었다. 그마저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금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은 나중에 돈은 먼저.
15.
그 시절,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 건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나라면 절대로 견디지 못했을 삶이었다. 거센 바람 앞에 놓인 연약한 촛불 같은 인생이었다. 언제든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마음을 어딘가 기대고 싶으셨겠지. 그래, 그렇다. 불행과 불운은 언제나 사이비 믿음의 좋은 먹잇감이다. 불만과 분노도 그렇지만. 엄마는 다행히 미치지 않고 제정신을 건사했다.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그 사악한 세리들을 집밖으로 내쫓았다.
16.
사실 나는 저 위에 인용한 월터 카우프만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저 문구를 내게 알려진 이는 몰리 선배다. 그렇다, 몰리 선배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저녁, 몰리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이 말 한번 들어봐, ‘저 위에서 보면, 인생은 미쳐가는 과정이고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원이다.’ 어때? 정말 맞는 말이지 않니?”
17.
맞는 말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와 나는 말린 문어 다리를 안주 삼아 싸구려 맥주를 마시면서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18.
그때로부터 대략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인생이 미쳐가는 과정’이란 견해가 제법 설득력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내가 알던 몇몇은 실제로 점점 미쳐가는 듯이 보였다. 아니, 정말 미친 사람이 되어 나타난 적도 있어 원래 내 알던 사람인가 싶었던 적도 있다. 아마도 소유욕이나 지배욕 같은 욕심과 욕망, 씻을 수 없이 아픈 어린 시절의 상처 그리고 살면서 의심받지 않았던 그들만의 믿음 탓이 그 광기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19.
광대: 당신이 내 광대라면, 우리 아저씨, 나는 당신을 두들겨 패줄 테다,
때도 되기 전에 늙어버린 벌로.
리어왕: 어째서 그렇다는 것이냐?
광대: 당신은 늙어서는 안 되었던 사람이니까, 지혜로워지기까지는 말씀이야.
리어왕: 아! 나를 미치게 하지 마소서, 미치게. 자비로운 하늘이시어,
온전히 제정신으로 살게 하소서. 나는 미치고 싶지 않아!
-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 1606
20.
내가 보기에 리어 왕의 정신 건강은 양호한 편이다. 광대의 뼈 있는 지적을 그대로 들을 줄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21.
스스로를 미치광이로 인정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만 빼고 세상이 다 미쳤다고 하기는 쉽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동용 도서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하지만 난 미치광이들이 있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아.”
앨리스가 발끈했다.
“오, 그래도 할 수 없어.”
고양이가 말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미쳤거든. 나는 미쳤어. 너도 미쳤고.”
“내가 미쳤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앨리스가 말했다.
“틀림없으니까.”
고양이가 대꾸했다.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지 않을 테니까.”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865
22.
우리 행성이 우주의 정신병동이라면, 그래,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23.
10년 전 그날 밤, 나는 종이 더미에서 구출된 어떤 포르투갈 인의 포춘 쿠키 바구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집은 포춘 쿠키에서 나온 문장은, 더 먼 과거 몰리 선배가 함께했던 어느 날 저녁을 불러왔다. 그래, 그래서 야근을 하고 있던 그때의 나는 마감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긍정에 대한 믿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쓸모없다고 여길만한 일에 허비하기로 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다.
24.
나는 인터넷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거짓이 기하급수적으로 재인용되면 거짓이 진실인양 행세하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그날 밤 나는 운 좋게 어떤 신뢰할만한 문헌학적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날 내가 찾은 자료에 따르면, 페소아의 언급대로 ‘이 세상이 거대한 정신병동’이라는 생각은 볼테르로부터 시작되어 조지 버나드 쇼, 마크 트웨인, 커트 보내것과 같은 작가들 말고도 토머스 제퍼슨 같은 정치가에 의해 사람에 따라 약간 변형된 채로 피력되었다. 앞의 세 작가는 유명한 풍자작가들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이라니.
25.
어쨌든 페소아는 볼테르의 말이라 했지만, 그 견해를 피력한 최초의 인물은 따로 있었다.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은 볼테르보다 2년 앞서 어떤 잡지에 연재 시를 기고했고 그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일까? 당신은 결코 인간에 대해 알지 못하리
또는 지구에 대해서도, 우주의 베들렘인!
당신처럼 멀쩡한, 이성도 광기에 미쳐 날뛰고,
어리석음의 자녀들을 제 아이처럼 돌보는”
- 에드워드 영 <인생과 죽음, 불멸에 대한 불평 혹은 밤 생각> 1747
26.
그렇다, 베들렘은 영국의 유서 깊은 정신병원 이름이다. 베들렘은 아기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과 같은 말이다. 당시 사람들이 발음하기 편하게 베들레헴을 베들렘으로 불렀던 것이다.
27.
베들레헴은 베들렘이 되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성스러운 곳은 미치광이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되었다. 나는 이 글을 쓰느라 거의 넉 달을 허비하고 있는데,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신병동의 미로 같은 글을 쓰느라 헤매는 와중, 내가 사는 나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28.
나는 우연히 실시간으로 계엄령을 선포하는 대통령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의 언어들을 들었다. 이어 선포된 계엄 포고령을 접했다.
29.
페소아는 이렇게 말한다. “정상에 대한 감각을 전부 잃고” “건강이 질병의 허락을 받아 유지되는” 세상. 대통령의 말은 페소아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 만연한 광기와 과대망상과 편협함과 이기심과 무지에 관한 자기 풍자이자 조롱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에게 그의 말은 제법 그럴듯한 농담처럼 들릴 뻔했다.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그러나 나는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없었다.
30.
갑자기 거대한 정신병동으로서 세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베들레헴이 베들렘이 되듯.
31.
“인생은 다만 활보하는 그림자, 무대 위
주어진 시간 동안 거만 떨고 또 초조해하는
그러다 이후에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가엾은 배우.
백치가 들려주는 헛소리와 분노에 휩싸인,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1623
32.
거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의 삶을 살다 잠시 잠깐 함께하게 된 개인들이었다. 나는 이들을 환멸한 군중이라 부르고 싶다.
33.
어떤 확신으로 조직되어 한 몸이 된 무리도 있었다. 놀랍게도, 사실 놀랍지도 않지만, 예수의 제자라는 개신교 목사가 마이크를 들고 있다. 애석하게도 사랑의 언어는 들리지 않았다.
34.
불가침의 믿음이란 언제나 결과가 가설과 증명에 앞선다. 고대로부터 유래 깊은 이 아름다운 순환 논리.
“내가 미쳤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앨리스가 말했다.
“틀림없으니까.”
고양이가 대꾸했다.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지 않을 테니까.”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865
35.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가졌다.”
- 루카복음서 <신약성경> 공동번역개정판
36.
어린 시절, 저녁 여섯 시가 되면 어딘가 숨겨진 스피커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러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가던 길을 멈췄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 어딘가 깃대에서 내려지고 있을 국기를 향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차렷 자세로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얹고서.
37.
언젠가 20대 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떠올린 장면이었다. 쿤데라의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녀는 공산주의, 파시즘 그리고 모든 점령과 침략 행위 뒤에 훨씬 더 근본적이고 우리 곳곳에 스민 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악의 이미지는 주먹을 치켜들고 똑같은 목소리로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행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을 결코 이해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감추고 싶었기에 그녀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38.
에드워드 영이 거대한 정신병동이라고 하기 전에 이 세상은 줄곧 지옥에 비유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생이든 세상이든 우리보다 앞선 사용자들이 내린 평가는 박했다. 그렇다, 지옥은 저 지하 아래 악인들의 영혼을 연료 삼아 영원히 들끓는 용광로가 아니다.
39.
"산 자들에게 지옥은 앞으로 다가올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한 곳이 있다면, 그건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지옥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곳이며 또한 함께 만들어온 것입니다. 지옥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그중 첫째는 많은 이들에게 쉬운 길입니다.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더 이상 지옥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는 고난의 길입니다. 끊임없이 깨어있어야 하며 불안에 시달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구하고 배워야 합니다. 이 지옥의 한가운데 누가, 무엇이 있는지 혹은 누가, 무엇이 지옥의 일부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지옥의 일부가 아닌 이들이 지옥을 견딜 수 있도록 돕고, 그들에게 지옥이 아닌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1972
40.
세상이든 인생이든 지옥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악인들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혹은 추한 놈’이 어울려 살아간다. 맞다, 영화 제목 그대로다.
41.
미국 소설가 커트 보네것이 쓴 소설 <실뜨기 놀이(Cat’s Craddle)>에는 가공의 종교가 나오는데, 이 종교의 경전은 <보코논의 서>다. <보코논의 서> 53번째 칼립소는 다음과 같다.
“오, 센트럴파크에 곯아떨어진
술주정뱅이도,
정글 어둠 속에 도사린
사자 사냥꾼도,
중국 야매 치과의사도,
대영제국의 여왕도 -
모두 딱 맞물려있네.
하나의 기계 안에서.
멋져, 멋져, 정말 멋있어.
멋져, 멋져, 정말 멋있어.
그렇게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장치 안에서.”
- 커트 보네것 <실뜨기 놀이> 1963
42.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명왕성 근처에서 지구를 되돌아보았다. 태양계 행성들을 탐사할 목적으로 우주여행을 시작한 지 무려 13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보이저 1호는 이제 막 모든 임무를 완수한 참이었다. 이제 그 아름다운 기계에게 남은 일이란 우주 공간에서 그 생이 다할 때까지 미지를 여행하는 것뿐이었다.
43.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서의 마지막 여정에 있어 지구가 있는 방향으로 자세를 크게 전환하여 사진을 찍는 것은 그 목적에 있어 아무런 이익이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강한 태양빛에 광학 장비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 쓸모없는 한눈팔이, 딴짓에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낸 이는 칼 세이건이었다. 그리고 그 위 누군가가 이 쓸모없는 일을 승인하였다. 그 누군가는 이전에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적이 있던 전직 우주비행사였다.
44.
칼 세이건과 NASA 임직원들이 막대한 돈이 들어간 보이저 1호를 갖고 한 쓸데없는 짓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45.
세상에 그 유명세를 떨친 사진 중 하나지만, 첫인상은 별 볼 일 없기 짝이 없다. 세로로 긴 얼룩은 태양 광선이고 맨 우측 햇살 속에 아주 작은 점이 보인다. 그렇다, 거대한 정신병동이 아니라 아주 작은 점이 보인다. 칼 세이건은 이 작디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를 ‘창백하고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렀다.
46.
“이렇게 멀리 떨어진 시점에서 보면, 지구는 볼품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릅니다. 다시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게 우리들 집입니다. 그게 우리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들어본 적 있는 모든 이들,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인간이 저 위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마다 확신에 찬 수천의 종교가, 이데올로기가, 경제 정책이,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문명 개척자와 파괴자 모두가, 모든 왕과 소작농이,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희망에 찬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들, 모든 도덕적 스승이, 부패한 정치인들 모두가,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 인간 종족의 역사에서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 그곳에 살았습니다. 햇살 속에 떠있는 저 먼지 티끌에서.”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1994
47.
칼 세이건이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로 태양계를 막 벗어나려던 보이저 1호를 돌려 ‘창백하고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를 촬영하려고 했던 사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커트 보네것이 쓴 아래와 같은 글을 떠올린다. 커트 보네것은 조카딸을 데리고 옛 전우를 만나러 가는 길고 긴 여정 중 어느 모텔에 들른다. 그는 잠자라에 들기 전 침대 옆 협탁 서랍에 있는 기드온 성경을 아무 데나 펼쳐 읽는다. 그가 우연히 펼친 대목은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읽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잘 알다시피, 그 두 도시에는 사악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롯의 아내는, 물론, 그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살던 집이 있던 그곳을 돌아보지 말 것을 명령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래서 그녀를 사랑한다. 그 행위는 매우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었다. 그런 식이다.”
- 커트 보네것 <제5도살장> 1969
48.
“이 말 한번 들어봐, ‘저 위에서 보면, 인생은 미쳐가는 과정이고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원이다.’ 어때? 정말 맞는 말이지 않니?”
몰리 선배가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그때로부터 벌써 이십 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다.
49.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넉 달이나 헤맨 것은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대체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편이라고. 비록 이 세상이 거대한 정신병동일지라도.
50.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시인 알렉산더 포프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저는 인간이라 불리는 짐승을 미워하고 혐오합니다. 비록 존과 피터와 토마스 그리고 그 외에도 더 누군가를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요.”
- 조너선 스위프트, 1725
51.
조너선 스위프트 그리고 알렉산더 포프는 세상을 ‘베들렘’에 비유했던 에드워드 영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조지 버나드 쇼, 마크 트웨인, 커트 보네것처럼 위대한 풍자가들이다.
52.
세상이란 거대한 정신병동에서 나는 아마도 미쳐가는 중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한다. 그렇게 느낀다.
53.
그리고 내 나이 든 고양이 까뮈도 사랑한다. 그리고 미치지 않고 삶을 버텨낸, 이젠 세상을 떠난 엄마를, 고향에 있는 나의 외로운 누나를, 지금은 혹시 미쳤을지도 모를 몰리 선배를, 그리고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 같은 내 술친구들을. 그리고 혜성처럼 내 인생을 스쳐간 다정했던 그 누구누군가들을. 나는 사랑한다.
54.
조지 버나드 쇼며 마크 트웨인이며 커트 보네것이며 칼 세이건며 몬티 파이선이며 하는 등등의 미치광이들도.
55.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가 옳았다. 사랑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다.
56.
죄 많은 내가 아직 미치거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모두 그들의 사랑 덕분이다.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하냐고? 맞다, 그건 모를 일이다.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미쳤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앨리스가 말했다.
“틀림없으니까.”
고양이가 대꾸했다.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지 않을 테니까.”
57.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에는 저마다 다른 나의 세 시절이 있다. 어느 한 시절의 시점에서 다른 시절을 살필 때, 그 시절들 모두는 모두 다른 인생처럼 느껴진다.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사진이며 편지며 기념물 같은 것을 종이박스에 넣은 후 다락방이나 창고에 던져 놓듯. 지나온 과거는 그렇게 먼지에 쌓인, 다소 낡은 네모 반듯한 상자 모양이 된다. 그 크기며 종이재질이며 겉면에 인쇄된 상품명이 제각각인.
58.
그러나 그 먼지 쌓인 과거의 상자들 사이에 어떤 일관성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절들 중 하나인 대학시절을 한심하게 보냈다. 회사 생활은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때론 딴짓도 했다. 무엇보다 오늘날 물질문명과 긍정의 힘에 대한 신앙심에 냉담하였기에 생을 마감할 때 빈털터리일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 쓸모없는 글을 쓰느라 귀중한 몇 달을 허비하고 있는 중이다.
59.
그렇다, 나는 쓸모없는 짓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긍정과 믿음의 세계에서 죄악인.
60.
사소하든 중대하든 간에 여왕이 모든 어려움을 바로잡는 방법은 오로지 단 하나였다.
“저 놈의 목을 베라!”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865
61.
어느 날, 아내와 나는 서로 사랑에 빠졌다.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구제불능인 나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이건 내 인생 최대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62.
지난해, 나는 아내를 따라 요가를 배우러 다녔다. 아내가 보기에 아마도 본인에게도 또 나에게도 요가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내 정신 상태는 보시다시피이고 내 몸 또한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탓에 소금 기둥처럼 굳어졌다. 그렇지만 어쩐지 요가를 배우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에서 반항기는 두 번 오는 것 같다. 사춘기 때 그리고 지금이 그런 거 같다. 나는 격렬히 반항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느 순간 다소곳이 고양이 자세를 하고 있었다. 떼쓰며 울어 봤자, 소용없다. 완력 앞에서는.
63.
요가를 배우는 공간은 차디찬 시멘트 벽돌로 둘러 싸인 곳이 아니었다. 아늑한 한옥 공간이었다. 젊은 선생님은 깊고 품위 있는 사람이다.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데 있어 아내는 나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고수다. 선생님은 두 개의 소금기둥을 눕혀 놓고 쩔쩔매셨다. 좋은 선생님이다.
64.
요가 수련은 늘 ‘사바사나’로 끝났다. 아마도 산스크리스트어일 거 같은데, 우리말로 ‘송장 자세’ 또는 ‘시체 자세’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한 시간 여 요가 수련의 끝이 그런 자세로 끝난다는 사실이 썩 흥미로웠다.
65.
사바사나가 끝나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다듬는 시간이 있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은 늘 이렇다.
“숨을 쉬며 느껴지는 몸의 감각, 생각,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봅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그대로를 어떤 편견이나 판단 없이 받아들입니다.”
66.
나는 요가 수업 시간마다 늘 이 말에 어떤 위안을 얻었다. 경쟁을 위해, 우승을 위해, 생존을 위해 최고와 최선이 되길 요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전력투구하라는 얘기도 없었다. 그냥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는 것, 그게 다였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내가 들어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가르침이었다. 다른 곳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67.
앞서 인용한 커트 보네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는 미치광이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그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제5도살장’에 감금된다. 그리고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전쟁 물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던 유서 깊은 한 도시는 지옥이 된다. 이는 작가의 실제 경험으로 한 이야기다.
68.
전쟁이 끝나 살아서 고향에 들어온 그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늙어간다. 아내가 먼저 죽자 그는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종종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꾸 시간에서 이탈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의 딸은 사랑하는 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용의 책이다.
69.
이 책 또한 몰리 선배가 내게 주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 내기 훌라 카드 게임에 내가 이기는 바람에 얻게 된 책이다. 다른 책을 줄 수 있었겠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얼간이에게 이 책을 준 까닭이 따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가난한 나에게 휴대용 가스버너와 냄비를 하나씩 사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결혼하기 전까지 오래도록 잘 사용했다.
70.
커트 보네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는 몇 개의 그림이 있다. 그중 한 그림은 묘지 비석이다. 비석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 커트 보네것 <제5도살장> 1969
71.
그렇다. 그 시절 나에게 이 문장이 쥐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삶을 견디는데 조금 더 곤란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과 술도 있지만.) 어느 날, 아내와의 요가 수업이 끝날 무렵, 사바사나 자세를 하며 나는 눈을 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눈을 뜨고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요가원을 나와 사실 그렇지만은 않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그러자 아내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다정히 감싸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