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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왜 미술관으로 들어왔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젊은 모색 2025

by 은이은






과천에 가면, 동물원 옆에 미술관이 있다. Y의 집은 김포 쪽이라 과천에 가려면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Y는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면서 '국군수도통합병원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됐는데, 만약 좀 더 일찍 그렇게 되었더라면 미술을 더 좋아하게 됐을까?'하고 생각했다.


학생 시절 교양과목으로 미술사를 들으면서 과천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Y는 작품 하나에 완전히 푹 빠졌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이었다. 결국 그 주제로 기말 리포트를 썼다.



지금 읽어보면 참 풋풋하다. 당시엔 챗GPT도 없고, 심지어 인터넷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랍기도 하다. 당연히 완성도가 놀랍다는 게 아니다. 도서관 서가에서 전산 단말이 아니라 종이로 카드로 책을 찾고,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어서 주석을 달던 그 과정이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다는 거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이 변했다.


상설전 말고는 딱 하나의 전시가 있었다. '젊은 모색 2025'였다. 그 전시실로 가는 길에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보게 된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였는지 작품에 전원을 넣기 전이었다. Y는 그 거대한 작품이 꼭 죽은 공룡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늙어버려 생을 다한 시체.


20250914_125932.jpg 백남준, <다다익선>(198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달팽이관 통로에 맞춤형으로 설치되어 있는 백남준의 작품은 1003개의 모니터로 만들어졌다.


<다다익선>(1988)은 1003대의 TV 모니터로 구성된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1003이라는 숫자는 시월 삼일이 개천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백남준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비디오 예술이 생방송을 활용함으로 텔레비전의 모체 역할을 하였는데, 1960년대와 1970년대 비디오 예술이 TV체제를 해체하는 시기였다면, 1980년대는 TV체제를 재구성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 TV는 대중매체로서, 비디오는 현실을 창조하는데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비디오 예술은 현실을 재현한다기보다 현대인의 ‘담화, 사고, 형태’의 양상을 바꾸어 버리는 이미지를 산출한다. <다다익선 No.I (N.J.P.I)>(1987)은 <다다익선>의 작품의 재료인 레이저 디스크(Laser Disk)이며, 이는 화면의 내용 중 하나이다. 현대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주체로써 새로운 상황을 편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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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몽상가. 브릿G에서 소설을 씁니다. 언젠가, 경주에 정착할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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