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다시, 보았다

천군복합문화공간 | 장하윤, 저 너머_여기, 2025.5.29까지

by 은이은

얼른 해야지 하다가 너무 늦어버리는 일들이 있다. 2월 말에 보았던 전시였다. 찾아보니 천만다행으로 '5월 29일까지'라고 하니, 혹시 그 기간 경주를 방문하실 분이라면 한 번 가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른바 '금수저'나 '은수저'는 못 되는 Y는 몸을 누일 제 소유의 아파트를 마련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서울은 꿈도 못 꾸고, 경기도에 30평 아파트를 샀다. 무척 자랑스럽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직후, 미국에 1년 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살 집을 구하다 알게 되었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파트에 대해서, 본디 가졌던 고정관념과 다른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그럼 아파트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Y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차가운 것. 몰개성적인 것, 불평등한 것,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낸 자리에 어김없이 솟아오르는 것, 사람의 점수를 매기는 라벨 같은 것."


누구에겐 다소 공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만큼 Y에게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 큰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겠다.


사실 전시를 보러 간 것이 아니었다. 미술관을 찾아간 것도 아니었다. 경주 보문단지 인근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러 간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 분홍색 네온으로 입구를 밝힌 '천군복합문화공간'은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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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군복합문화공간 (C)은이은


나중에 물어보니 원래 이곳은 흉물처럼 버려져 있던 휴게소 건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건물을 싹 고쳐서 전시 공간 겸 카페로 바꾸었다고 한다. 커피를 주문하고 여유롭고 조형적인 공간에 감동하며 2층으로 올라갔는데, 통창 앞에 무언가 서 있었다. 그곳이 전시 공간이라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Y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어두운 밤이었다. 유리로 경계 지워진 안과 밖은, 조명의 밝기에 따라서 이쪽이 보이기도 하고, 저쪽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빛은 유리의 굴절률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관찰자가 유리창과 향하는 각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사태는 명확하지 않고, 조건 값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상대성을 보인다.


Y가 신경이 쓰였던 건, 자리 옆 통창에 어떤 불빛 - 의미를 담은 부호로서의 불빛 - 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지나쳤던 어떤 육면체로 다가갔다.


그것은 미술작품이었다. 그리고 Y는 '앗!' 하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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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작품을 뒤에서 본 상황, 오른쪽 사진은 작품을 앞에서 본 상황이다. 그런데 Y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건, 작가가 의도한 작품 관람의 포인트가 저 왼쪽 사진도, 오른쪽 사진도 아닌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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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뜨고, 구조물과 구조물 사이, 통창에 반사되고 있는 이미지를 보시라. 작품의 앞면에는 자체적으로 위치를 잡은 불빛들이 있고, 그 불빛들이 통창의 어둠에 반사되면서 관찰자는 마치 어둠 속 불을 밝힌 복도식 아파트의 이미지가 통창 밖에 있는 것처럼 보게 된다. 통창이 일종의 스크린이 되는 것인데, 그냥 스크린이 아니라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비추는 - 환영을 비추는 스크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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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90도 각도로 창문과 거리를 두고 벽에 걸린 작품은 창 위에 실재하지 않지만 저 밖에 서 있는 것 같은 아파트 한 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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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에서 창 밖 가로등 오른쪽에 옆에 보이는 저 창문들도 실재하지 않는다. 다만 실내의 빛-자욱이 유리창의 면에 반사해 우리에게 환영을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작가의 의도가 Y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중요하지 않다고 Y는 생각했다.


사람이 지나가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리라도 하면 집에서 보이는 창의 풍경은 빛이 지나간 흔적이 담긴다. 창에 비친 저 너머의 빛은 시작이 되고, 뒤돌아가는 귀결점이 된다. 창 너머의 풍경은 기억이 누군가의 마음의 빛을 온 앤 오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하윤 <작가 노트 ; 낮과 밤의 중간쯤, 그 사이의 풍경>


Y는 두 번째로 아파트에 대해서, 본디 가졌던 고정관념과 다른 생각을 해 본다. 아파트의 소유주도 있겠지만 전세를 사는 사람도 월세를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유주라고 해도, 아파트 수십 채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세상에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 그 사각의 몰개성 한 구조물은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작은 빛들이 창에서 새어 나와 우리 눈에 맺힌다.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빛이다. 희로애락, 갖가지 색으로 나타나고 흔들리고 희미해지고 꺼지기도 하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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