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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보는 이유

국립현대미술관 | 론 뮤익 RonMueck 2025.4.11.-7.13.

by 은이은


소설가 Y의 책상은 늘 잡동사니들로 어지럽혀 있다. 가끔은 작심을 하고 싹 치워보기도 하는데 다시 더럽혀지는 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가장 가까이에 론 뮤익의 팸플릿이 있고, 쓰다 말다 하는 A5 사이즈의 일기장이 있고, DSLR 카메라의 배터리들이 있고, '경주 문화재 길잡이'라는 책이 있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있고, 십자드라이버와 전자 손목시계가 있다.


'론 뮤익을 말하면서 왜 자기 책상 이야기를 할까? 만약 첫 문단을 읽으면서 그런 의문을 가졌다면 Y는 성공한 셈이다. Y의 책상은 지금의 Y를 말해주는 단서이다. 누군가의 공간은 그 공간을 점유하는 인간을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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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 주차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게으른 자의 착각이었다. Y가 사설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고 주인아저씨 얘기를 들어보니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미술관 지하 주차장은 개장과 동시에 마감된다고 한다. 그날은 특히 더 심한 것 같았다. 미술관 쪽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Y는 궁금했다. 뭐지? 아이돌 그룹이라도 뜬 건가? 미술관에?


'누구의 작품을 보러'라기보다 미술관 방문을 루틴으로 삼고자 하는 Y는 조금 뒤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나치듯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 '론 뮤익 특별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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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이날, 최초로 작품 관람을 하면서 줄을 서야 했다. 처음엔 '뭐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사람이 몰리나' 했는데, 그럴 가치가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Y는 론 뮤익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한 층 더 내려간 지하에서 볼 수 있는 필름 상영에서 얻은 게 더 많았다. (나중에 보니 유튜브에 일부가 공개되어 있었다. 전체 러닝타임은 48분이다.)


그의 작업이 이뤄지는 공간, 그리고 작업의 설계와 절차들, 그 느리지만 철저한 호흡들을 지켜봤다. 상영이 끝난 뒤에, Y는 론 뮤익을 좋아하기로 결심했다.


이 글에서 Y는 그의 공간인 작업실과 그의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으려 한다.


27.PNG 론 뮤익의 작업실,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중에서


그의 작업실과 작업 과정을 찍은 필름은 진행이 매우 느리다. 대사도 없다. 몇몇 성급한 관객들은 그 느림과 침묵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일어서기도 했다. Y는 그러나 느림과 침묵이야 말로 그 필름이 관객들에게 전하려 했던 핵심이 아니었나 싶다. 제목도 'Sill Life'로 되어있다. 느림과 침묵은 론 뮤익의 작업 과정,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것 같고, 그 키워드를 통해서 우리는 사색과 해석의 기회를 갖는다.


그의 작품은 인간을 모델로 한다. 그런데 그 크기가 일정한 범위 안에 있는 '일반적인 인간의 크기'가 아니다. 아주 크거나 아주 작다.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아래 사진은 미리 만든 작은 조형을 이후의 작업을 위해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장면이다.


12.PNG 론 뮤익의 작업실,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중에서


합판으로 기초 공사를 하고, 그 위에 그물을 씌워 대강의 형태를 구성하고, 접착액에 적신 거즈 같은 것으로 면을 만들고, 그 위에 흙으로 정교한 표면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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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작업실,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중에서


거푸집을 만들고 그 내부에 플라스틱 피부를 정교하게 다듬고 색을 구현하는 과정은 매우 더디고 복잡했다. 론 뮤익은 일부 동료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전 과정을 직접 구현하고 있었다.


Y는 생각을 해야 했다. 론 뮤익은 왜 저러고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그가 유명한 작가인 건 맞지만, 유명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름을 얻기 위해서, 혹은 떼돈을 벌기 위해서 저러고 있다고?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손놀림은 섬세하고 정성스러웠다. 구도자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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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작업실,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중에서


전시장에서 본 작품들은 그 크기(축적)와 관계없이 극사실주의적이다. 피부의 주름은 할 것 없고 잘라낸 수염, 머리카락, 점, 검버섯까지 매우 디테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앉을 때 팬티의 윗부분을 덮을 정도로 내려오는 뱃살('chicken / man'), 심지어 앉아 있을 때 다리와 다리 사이에 위치한 성기('Man in a Boat') 또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심지어 브래지어에 눌린 부분과 그 옆에 살짝 솟아 오른 살까지('Woman with Shopping'). 그런데 그 모든 표현들은 인쇄하거나 3D프린트한 것이 아니라 전부 흙으로 빚고 붓으로 그리고 바늘로 꿰어서 만들어낸 효과였다. 작품들은 때로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이 입혀지기 전의 나신은 관람객이 볼 수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이 빠짐없이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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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작업실,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중에서


인간의 머리카락은 약 8만에서 12만 가닥이 된다. 그 전부는 아니어도 듬성듬성해 보이지 않게 한 땀 한 땀 모발을 조각의 두피에 심고 있었다. 다리털도 마찬가지였다. 그 행위에 대해 론 뮤익은 어떤 의미를 두는 것일까?


론 뮤익은 1958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독일인 부모는 소규모 장난감 제조업을 시작했으며, 뮤익은 어린 시절에 꼭두각시 인형과 다양한 생물 모형을 만들었다. 쇼윈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어린이 영화와 TV 프로그램용 모형 제작 및 인형극 분야로 진출했다. (중략) 그는 레고(Paula Rego)의 피노키오 그림과 함께 전시될 피노키오 조각상을 제작했으며, 이 작품이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이듬해, 자신의 아버지를 소형 나체 조각상으로 표현한 작품 <죽은 아빠>(1996-1997)가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전시에서 주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2001년, 초대형 조각 <소년)(1999)이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팸플릿에서 작가 소개를 읽고 나서 Y는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대를 이은 장인이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가업을 이어받아 모형과 소품을 제작하던 그가 작가로서 작품을 냈다. 첫 작품의 제목은 '죽은 아빠'(Dead Dad)였다. 왜 하필 죽은 아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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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Mueck Dead Dad, 1996–97(20 x 38 x 102 cm)


소설가 Y는 혼이 빠져나간 인간의 몸을 본 일이 있다.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웃고 울던, 온기를 지닌 육체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뒤 남겨진 것은 차가운 푸른 기운이 서린 어떤 낯선 실체였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1902년에 "Does 'Automatisms' Prove Separate Soul?"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문건에서 그는 당시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사람이 사망할 때 평균적으로 21그램이 감소한다고 적었다. 더 나아가 이 21그램이 영혼의 무게라고 주장했다. 물론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이다. 그러나 Y는 그렇게 주장했던 윌리엄 제임스를 이해하고 동조하는 편이다. 뭔가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전과 후가 다를 수 있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아빠'(Dead Dad)라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론 뮤익의 작품세계가 상당히 종교적이라고 Y는 느꼈다. 실제의 인체보다 축소된(20 x 38 x 102 cm) 그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죽음, 그리고 모두의 영혼이 점유하고 있는 작고 나약한 육체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극도로 사실적인 그의 작품은 존재를 둘러싼 시간을 정지시킨다. 생각은 상황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지만 면도칼로 잘라낸 듯 치밀한 묘사는 정지시킨 그 단면의 의미 맥락을 증폭한다. 또한 그의 작품이 실제의 축적보다 크거나 작기 때문에,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효과가 있다. Y가 결론 내린 론 뮤익의 전략이다.


20250427_122758.jpg In Bed, 2005, mixed media, 162X650X395 cm


우리는 여인의 침실에 다가가, 여인의 표정을 읽는다. 원래는 가족이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시점(view point)이다. 관람객은 그녀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녀의 내면을 탐색할 기회를 얻는다. 침구는 깨끗하다. 여자의 속옷도 깨끗하다. 여자는 허공 한가운데를 응시하고 있는데 이마에는 옅게 주름이 파여있고, 그녀의 손은 턱과 입에 멈춰있다. 무언가 드러내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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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II, 2002, mixed media, 77X118X85 cm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씩 가진 얼굴. 그 얼굴은 평소 여러 표정을 짓는다. 진짜 표정이기도 하고 지어낸 것이기도 하다. 잘생기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페르소나, 가면, 껍데기일 뿐이다. 시점을 달리하면 입체감을 갖고 있는 얼굴 상이 거죽에 불과하다는 걸 보게 된다.


20250427_122527.jpg Woman with SticKs, 2009, mixed media, 170X183X120cm


인생은 어쩌면, 생채기가 나도록 거친 나뭇가지를 허리가 휘도록 짊어진 저 여인의 모습과 같은 것이 아닐까? 활처럼 휘어진 허리, 땅을 디딘 발과 힘이 들어간 종아리, 나이 들어 여기저기 피하에 축적된 지방질. 그런데 그녀는 신체의 가장 연약한 부분들, 쓸리고 상처 나기 쉬운 살들을 거칠고 가시가 돋아있을지 모를 무심한 나뭇가지들을 끌어안는 데 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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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with Shopping, 2013, mixed media, 113X46X30cm


품에 안긴 아이는 엄마를 본다. 의지할 유일한 존재이니까. 아끼는 존재라 해서 무게가 0이 되지는 않는다. 엄마는 허리에 무리를 줄 가뜩이나 무거운 아이에 더해, 또 다른 날들을 살아내기 위한 물건들을 양손에 한가득 쥐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인간은 그럴 운명이다.


20250427_124904.jpg Man in a Boat, 2002, mixed media, 159X138X429cm


신화에서 '망각의 강'은 레테(Lethe, Λήθη)이다. 저승에 위치한 다섯 개의 강 중 하나인 레테는 강을 건너는 자에게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게 한다. 레테의 물을 마시면 과거의 삶과 기억들이 사라지며, 영혼은 이승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제야 저승의 삶이 시작된다.


남자는 모든 것을 벗어놓고, 그 강을 건너고 있다. 저 앞 너머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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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 중에서


전시에 초대된 작품은 아니었지만 영상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Y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 있다. 풀장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선글라스까지 끼고 누워있는 남자. 그런데 론 뮤익은 푸른 벽 위에 그 작품을 걸고 조명을 쏘았다. 그의 자세는 딱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역설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인간의 두개골이었다. 벽을 덮을 만큼 높이 올라가 있는 두개골들. 압도적인 크기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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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 2016-2017


Y는 집에 돌아와서 챙겨 온 팸플릿을 꺼냈다. '치킨 / 맨'이라는 제목의 작품 해설을 가장 먼저 읽었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팬티만 입은 노인은 왜 테이블에 올라간 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혹시 작가 스스로 그에 대해 설명을 했을까?


20250427_122709-1.jpg chicken / man, 2019, mixed media, 86X140X80cm


그런데 없었다. 다만 이렇게 나와있었다.


론 뮤익의 모든 작품 중 '치킨 / 맨'은 아마도 가장 분명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데, 정작 어떤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론 뮤익은 지금, 무엇을 응시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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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론뮤익


온라인 팸플릿

https://view.mmca.go.kr/streamdocs/view/sd;streamdocsId=7eLHWrPLvwemSCK9axvtw0XZgoiHSyQQ6ECd5WMlIXM

Ron Mueck - Still Life: Ron Mueck at Work -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g2iPpa4azRc

론 뮤익, <죽은 아빠> (dead dad)

https://ropac.net/artists/63-ron-mueck/works/1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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