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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장미가 피어났을까

서울시립미술관 | 천경자,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by 은이은


원래는 덕수궁으로 가려던 길이었다. 길가에 선 나무들이 연두색 파릇파릇한 새 순을 내밀고 있었다. '아 신록이 내렸구나.' 소설가 Y는 감탄했다. 매년 봄을 맞지만, 매년 매번 감탄한다. 잿빛 쓸쓸하고 답답한 겨울을 보며 이처럼 색에 목말라 있었던가? 소설가 Y는 자문했다. 하늘엔 짙은 구름이 걸려있었지만 굵은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쪽빛 하늘이 열리고 밝은 햇살이 내리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진 찍는 사람으로 말하면 노출값이 수시로 바뀌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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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덕수궁 길 (c)은이은

그런데, 웬걸. 갑자기 하늘이 새카매지더니 뭔가 굵은 것이 우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우박이었다. 쫌 그러나 마는가 가던 길을 계속 갔는데 심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덕수궁이라는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산 없이는 더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 길가 처마 아래서 쏟아지는 우박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기로 한 거다.


꽃비로 화려하게 내리지 못하고 비에 섞여 흩어지고 만 작은 벚꽃 꽃잎들이 극지의 칼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무리 지은 펭귄들처럼 올망졸망한 데 뭉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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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서울시립미술관 입구로 가는 길 (중앙) 비를 맞아 떨어진 꽃잎들 (우) 미술관 카페 유리창에 비친 꽃과 신록 (C) 은이은


우박 한 번 내렸다고 오래 고민 않고 바로 행선지를 옮겼던 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벌서 전시물을 싹 갈았을 리는 없고, 지난번에 제대로 보지 못한 천경자 작가의 작품들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전시는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에포케(epoché)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어로 "정지, 중지, 보류"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Y는 이 단어를 학교를 다니면서 철학 과목에서 처음 들었다. 강영안 선생님의 현상학 수업에서였을 것이다.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은 에드문트 후설이 제창한 철학적 방법론이다. 신칸트 학파와 같이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에 서지 않고, 분석철학과 달리 객관의 본질을 진실로 포착하려는 데에 철학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철학 용어를 등장시킨 건, 작가 천경자의 작품들을 보면서 Y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적인 선입관들에 대해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천경자는 Y도 확실히 들어 알고 있는 작가였다. 그런데, 그 '알고 있다.'는 인식의 수준이 매우 천박한 것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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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여인의 시 I(1984), 여인의 시 II(1985)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알 법한 여인의 시 I, 여인의 시 II. 그러나 소설가 Y는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서 이 그림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Y에게 있던 '선입관'이 바로 이 그림들에 집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한다.


가장 먼저 보았던 건 천경자의 방이었다. 공간은 그 공간을 소유한 자의 정신과 마음을 드러낸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왼쪽에, 천경자의 작업실 사진이 있고 그 앞에 그 사진 속 실물인지 아니면 모사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브제들이 놓여있다. 붓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수십 개나 된다. 갖가지 물감이 있고 그 물감을 섞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종지들이 여러 개 있다. 신문지 위에 그것들이 올려져 있다. 작가의 작업공간은 그냥 방이다. 책상에 올려지지 않고, 바닥에 놓여있다. 작가는 무릎을 꿇고, 잡동사니 - 물감, 붓, 책 이런 것들이 가득한 그 방에서 작은 화폭에 그림을 그린다. Y는 생각했다.


'무릎을 꿇고 혹은 엉덩이로 바닥에 앉아 작업을 한다는 건, 수행처럼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냥 들었던 생각은, '아, 천경자라는 사람의 삶은 어쨌거나 예술에 바쳐진 삶이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느낌이 그러했다.

"꿈은 그림과 함께 호흡을 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 천경자, 꿈과 바람의 세계, 1980, 경미문화사.

이어진 그림들은 '여행 풍물화'로 분류되었던 기행 회화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전시의 제목 '영원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는 작가가 1986년 지중해 여행의 제목으로, 한국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바람'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 꿈과 몽상, 그리고 자유로움을 담고자 했던 자신의 깊은 철학을 담았던 천경자의 인생관과 작품 세계를 은유합니다. 전시에는 '환상과 정한의 세계', '꿈과 바람의 여로', '예술과 낭만', '자유로운 여자' 등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됩니다.


'선입관'을 형성했던 여인의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대개 화폭은 가로 세로가 30cm를 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 오밀조밀한 공간을 천경자는 섬세하고 꼼꼼하게 구성하고 붓질해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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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1989), 태국의 무희들(1987), 페루 구스코 시장(1979)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전시여서, 팸플릿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선 Y가 느끼기에 대상의 정서와 특징, 분위기가 잘 포착되고 있고, 전체의 화면을 구성하는데 신경을 쓰면서도 각각의 대상이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 디테일(옷의 무늬, 잎과 꽃의 세부 묘사 등)을 포기하지 않고 전체에 조화시켰다. '자마이카'에서는 강렬한 인물의 의상, 꽃과 나무의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그 하늘과 구름, 쪽빛 바다의 색깔을 놓치지 않는다. 태국의 무희들의 손가락은 매우 정밀하게 묘사가 되었고, 서로 다른 채도와 명도의 색지를 경계 지워 배치하듯 음영을 나타낸 코끼리의 묘사도 생생하다. 페루의 시장에선 남미 특유의 조밀한 문양들이 반복 없이 성실하게 제시되고 있다. 철저히 구상이면서도 디자인적 구성을 보는 듯한 그림. Y는 눈을 작품으로 가까이 가져가서 그 정교한 붓질을 감탄하면서 감상했다. 아, 진짜 성실한 사람이구나. 무릎을 꿇은 채로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자기 신체를 거의 학대하는 수준이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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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뉴올리앙즈 (1987), 키웨스트 테네시 윌리엄스의 집(1983), 뵈로나에서(1970)


높게 솟은 건물의 직선은 직선 대로, 마차의 디테일은 그 마차에 새겨진 숫자까지, 그러나 나무는 정밀하기도 하지만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흐름도 머리에 이고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집 앞에 선 키웨스트 더운 지방의 나무들은 마치 내 눈앞에 그 식물들이 놓여있고 풀벌레 소리를 들을 듯 묘사가 치밀하다.


'뵈로나에서'는 왼쪽의 두 그림과 달리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에서 그린, 줄리엣의 집을 현장에서 스케치한 것이다. 그런데 대충이 아니다. 문과 창틀의 아치에 벽돌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까지 아주 꼼꼼하게 묘사해 두었다. Y는 감탄했다. 아, 역시 화가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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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이과스(1979), 모뉴멘트 벨리(1987), 폭풍의 언덕(1981)


그런 섬세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해서 천경자 식으로 양식화된 대상이 나타난다. 폭포는 셔터 스피드를 늦춘 사진처럼 흘러내리고, 바람에 풍화된 지형은 꼭 인디언의 담요 같다. 폭풍의 언덕은 전체에 디테일을 살린 게 아닌데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의 물결의 움직임을 최소한의 방법으로 최대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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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보올티모어 포우의 묘지(1983), 브로드웨이 나홀로(1997), 캣츠(1988)


'브로드웨이 나홀로'는 참 재미있는 그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Y는 작가가 매우 자유로운 분이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팝아트 같기도 한. 오페라의 포스터들을, 손으로 다시 그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뮤지컬에 등장한 배우들을 그림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었을까?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천경자, 자유로운 여자 1979, 집현전


전시실 벽면에 배치해 놓은 설명을 읽으면서 Y는 깜짝 놀랐다. 천경자 작가는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18권의 저서를 출간한 글작가 이기도 했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 그리기를 더욱 사랑한다. 글 없는 나는 있을 수 있어도 그림 없는 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경자,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1984, 자유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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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백야(1966), 초혼(1965), 여인들(1964)

Y가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전혀 다른 화풍의 커다란 그림들을 만났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작품과 관련하여 천경자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 꿈과 상상의 우물을 파 그걸 표현하는 완숙기에 들어갔다가 죽는다고나 할까?"


Y는 반성했다. 그동안 그는 천경자 작가를 특정 시기, 특정 작품에 가둬놓고 있었다. 화가를, 그 작품세계를 쉽게 안다고 할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미지 안에 화가를, 창조자를 가둬서는 안 되는 거였다.


20250413_134516.jpg 여인의 시 I (1984)


여인은 아마도 거울 앞에 선 자신이었을 것이다. 천경자 작가는 생전에 담배를 즐겨 피웠다고 한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놓인 담배를 보면서, Y는 갑자기 흡연욕구가 솟아올랐다. 나신이면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여자는, 그녀 자신을 보듯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Y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나는 이러하다. 당신은 어떠한가?'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20250413_134313.jpg 꽃무리속의 여인(연도미상) 27x24


"꿈은 그림과 함께 호흡을 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서식을 해왔다."


꿈꾸는 삶. Y는 생각했다.


'나는 무엇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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