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의 꿩은 어디에 있을까?

서울시립미술관 | 강명희, Visit

by 은이은


소설가 Y가 봄날의 정동길을 걸었다. 누군가와 같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혼자라도 좋았다. 사람들의 얼굴이 밝았다. 봄은 꽃만 피어나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정동을 특징짓는 붉은 벽돌, 어쩌면 칙칙한 색일 수도 있는데 이조차 화사했다.



한 낮의 태양은 높게 떠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입구는 북쪽을 향해있다. 즉 건물쪽을 향하면 남쪽에서 쏟아지는 빛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정면의 모습을 잡으려 해도 쏟아지는 빛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 건물은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어졌다. 해방 이후 한국 대법원이 되었고, 1995년 법원이 이전하자 시청 건물 등으로 사용되다가 2002년 미술관이 되었다. 원래는 권위적인 건물이었던 터라, 눈이 부셔 자동으로 고개를 숙이라고 자리를 이렇게 잡았을까? Y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서울 시립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 마자 커다란 그림이 정면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강명희 작가의 2002년 작품 <복원>이다. 462X528cm로 굉장히 큰 작품이다. 전시의 이름은 Visit, '방문'이었다. 이번에도 소설가 Y는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작가의 작품들을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Y는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편이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Y는 누군가의, 대개는 비평가의 의도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작업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림에 다가갔을 때, Y에게 전해진 것은 유화 특유의 테레빈유(terpentine)의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묵화의 묵향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산방산(좌), 대평마을(우)
덕수마을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꽉 채워졌다는 느낌보다는 공간과 여백에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가의 붓질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가서서 보면 커다란 캔버스가 매우 꼼꼼한 붓질로 채줘져 있음을 알 수 있다.


Y는 여러 점의 그림을 구경하다가, 작품들의 중요한 특징을 하나 발견했다. 강명희 작가의 그림에는 '선'이 없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아이들이 종이에 색연필로 그린 그림처럼 선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얼굴 선은 경계를 흐림으로써 만들어진다. 스푸마토(Sfumato)기법이다. 과학적으로도 주관적 윤곽선(subjective contour), 또는 암시된 윤곽선(illusory contour)라는 현상 때문에 선이 없어도 사람은 흔히 선을 느낀다. 그런데, 강명희의 그림엔 그 어디에도 선이 없었다.



화폭 안에서, 어떤 대상이 구성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흩어지고 있었다. 우리 눈은 자동초점 카메라처럼 어떤 대상을 보면 구체적인 상으로 망막에 붙잡기 위해 수정체를 두껍게도 얇게 만든다. 그런데, 강명희의 그림은 마치 수정체를 조이는 안구의 근육을 일부러 잘라내거나 풀어놓은 것 처럼 대상의 이미지 요소들을 흩어놓는다.



앞서 보았던 이강소 작가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무제'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어떤 대상을 떠올리게끔 하는 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선을 통해 다소 명백하게 어떤 대상을 떠올리게 하고는, '무제'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관찰자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그 혼란 속에서 자극을 받게 하겠다는 의도다.


강명희의 그림은 정 반대이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제목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그림에서 제목에서 제시된 사물, 혹은 장소, 혹은 그 무엇의 형태를, 하다 못해 어떤 선 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


소설가 Y는 문득 고흐를 떠올렸다.


어떤 연구자들은 고흐의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같은 그림에 나타나는 강렬한 노란색을 두고 어쩌면 황시증(Xanthopsia)을 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본다. 실제로 세상을 노랗게 보았다는 주장이다. 고흐는 질환 치료를 위해 '디지털리스'를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약은 황시증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혹시 강명희는 실제로 세승을 저 그림들과 같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선조차 발견할 수 없는 그림들을 그리기 위해 곳곳을 여행했다는 안내가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업실에서 본 실내외 풍경과 정물을 비롯하여 한라산, 황우치 해안, 대평 바다, 산방산, 안덕계곡 등 제주의 구체적 지역과 장소에서 비롯된 회화가 전시된다. 작가는 한 장소를 반복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방문


전시의 제목이 될 만큼 중요한 작품, 강명희의 '방문'이라는 그림이다.


소설가 Y는 상상했다. 작가 강명희는 창에서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본다. 작은 정원에 꿩이 날아든다. 그 꿩은 정원을 서성인다. 그러다가, 놀랐는지 다른 볼일이 생겼는지 일정 거리를 도약하다가 이륙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낯선 존재가 머물다 떠난 정원. 평소의 정적이 돌아왔지만 그 고요는 오히려 낯설다.


Y는 한참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우리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꿩의 형상, 그렇게 인지하게 만들 '암시된 윤곽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Y는 거기서 꿩이 아니라, 꿩의 흔적을 보았다.



화면의 중심 아래, 좌에서 우로, 그림에서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어떤 시간의 흔적들이 그어져있다. 작가와 대화할 수는 없지만, Y는 그것이 조리개를 열고 셔터스피드를 늦추면 생겨나는 빛의 흐름처럼, 꿩이 도움닫기를 하며 만들어낸 분, 초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정해봤다. 혹시 작가는 추상화를 그리기 위해 어떤 구상화의 스케치를 하고, 그 스케치를 흐트러뜨리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전시실에는 별책부록같은 전시들이 있었다.


하나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갔는지, 편지글들. 그런데 Y는 불어에 까막눈이어서, 아쉽게도 읽을 수는 없었다.



또 하나는 그림을 완성시키는 과정에 어떤 시각적인 시도를 했는지 보여줬다. 과거에 발간되었던 도록들을 진열해놓고, 친절하게도 넘겨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Y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 했다.


강명희 작가의 초기 작품은 구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Y가 그토록 찾았던 선이, 그것도 반듯한 직선이 무수히 들어있었다.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볼 만큼



그렇지만 그림 전체가 주는 분위기 만큼은, 작품이 만들어진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어떤 '연결'이 성립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구상은 추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작품 내에서, Y의 억측처럼 스케치를 해놓고 그걸 뭉개는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화풍이 달라진 것이었다. 직선이 등장하는 구상에서 흩어진 추상이 되는 방향으로 변한 것이었다.


<개발도상국> 시리즈


1960-80년대에 제작된 초기작들은 최근작에 비해 구상적 성격이 짙고 삶과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화하거나 서술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그린 초기 작품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작가의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 제작된 <개발도상국> 시리즈는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이후 그의 작업은 점차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경향으로 변화한다.


지금도 이미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것 같다. 프롬프트에 글자 몇 개를 쳐넣는 것 만으로 위대한 화가들의 화풍을 모방할 수 있는 지금, 회화는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Y는 돌아가는 길, '선이 사라진 꼼꼼한 붓질을 한 번 시도해볼까?'하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자료

https://www.yna.co.kr/view/AKR20250305049100005

https://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2266

https://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의도하지 않을 결심